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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계靡笄전투와 안鞌전투 - 진나라, 제나라를 제압하다 (춘추좌전.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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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환자 孫桓子 가 신축 新築 ( 하북성 위현 魏縣 의 남쪽 ) 에서 퇴각한 후 도성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 길로 진나라로 가서 출병을 요청했다 . 노나라의 장선숙 역시 진나라로 가서 출병을 요청했다 . 두 사람 모두 극헌자 ( 극극 ) 를 주재자로 삼아 청탁했다 .  진 경공은 700 대의 전차 동원을 허가했다 .  극자가 아뢰었다 . “이는 성복의 전쟁 ( ☞ 5.28.3.) 때 동원된 병력의 규모입니다 . 당시는 선군께서 명철하고 선대부들이 유능했기 때문에 대승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 극은 선대부에 비해 전쟁에 무능하니 800 대의 전차를 허락해 주십시오 . ” 경공이 수락했다 .  극극이 중군을 지휘하고 , 사섭 士燮 이 상군을 보좌하고 [1] , 난서 欒書 가 하군을 지휘하고 , 한궐 韓厥 이 사마 司馬 가 되어 노나라와 위나라를 구원했다 . 장선숙이 진나라 군대를 영접했고 또 길을 안내했다 . 계문자가 군사를 이끌고 이들과 합류했다 . 위나라 땅에 이르러 한헌자가 군법을 어긴 자를 참수할 때 극헌자가 급히 병거를 몰아 그를 구제하려 했지만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참수한 뒤였다 . 극자가 신속히 시신을 진영에 조리돌리게 하고 , 그의 시종에게 말했다 . “내가 이렇게 하여 한궐에 대한 비방을 나누려 한 것이다 . ” 연합군이 제나라 군을 추격하여 신 莘 에 이르렀다 .  6 월 임신일 (16 일 ), 미계산 ( 산동성 제남시 濟南市 천불산 千佛山 ) 기슭에 이르렀다 . 제 경공이 사자를 보내 싸움을 청하였다 . “그대가 군주의 군대를 거느리고 수고롭게 폐읍까지 왔으니 변변치 않은 군사나 내일 아침 전쟁터에서 뵙기를 청하오 . ” 극극이 회답했다 . “진나라는 노나라 및 위나라의 형제입니다 . 저들이 우리에게 와서 ‘대국이 수시로 쳐들어와 폐읍에 유감을 풀고 있습니다 . ’라고 보고했습니다 . 과군께서 더는 참지 못하시고 우리를 보내 두 나라를 침략하지 않도록 대국에 요청하고 , 군사를 거느린 채 군주의 땅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