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위 선공의 즉위 - 공자진公子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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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 사람이 형나라에 머물던 공자진公子晉을 맞이하였다. 겨울 12, 선공이 즉위했다. 『춘추』에 “위인衛人이 진을 옹립했다”라고 쓴 것은 다수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1.4.6. 人逆公子晉. 冬十二月, 宣公卽位. 書曰: 人立, 衆也.


해설 

人逆公子晉: 맞이하다. 『사기·위세가』: “환공의 동생 진을 형나라에서 맞이하여 군주로 옹립했다.” 즉 공자진을 위 환공의 동생으로 본 것인데 당연히 근거한 바가 따로 있을 것이다. 이때 진은 난리를 피하여 혹 형나라에 머물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은 국명으로 희성姬姓이다. 『통지·씨족략氏族略2: “주공의 넷째 아들이 형나라에 책봉되었다.” 현재 형후이邢侯彝가 전해지는데, 이 기는 주나라 천자가 형나라 제후를 책봉할 때 제작한 것이다. 명문의 말미에 “주공을 위해 이를 제작하였다(周公)”라고 쓰여 있기 때문에 그가 주공의 후예임을 입증할 수 있다. 『좌전·희공24년』에 관련된 기사가 있는 이유이다. 금문金文에선 “정후井侯, “정백井伯”등이 자주 보이는데, 유절劉節 『고사고존古史考存·고형국고古井國考』에서 금문의 정은 바로 형이라고 고증하고 있다. 현재 하북성 형대시邢台市 경내에 양국襄國 옛 성이 있는데 여기가 고대의 형나라이다. 『태평환우기』권59의 형주邢州 용강현龍岡縣에 대한 설명에서 『북사北史』를 인용하여, 제 무평武平 초에 고분을 발굴했는데 동정銅鼎을 얻었으며 그 명문에, 형후의 부인 강씨姜氏 묘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이 역시 고대의 형나라가 현재의 형대에 해당함을 증명하고 있다.

춘추좌전 지도 - 형나라


冬十二月, 宣公卽位: 선공은 공자진이다. 구례에 따르면 새로운 군주는 이전 군주가 죽은 이듬해를 원년으로 삼는데, 여기서는 바로 그 해에 즉위한 것으로 적고 있다. 이에 대해 공영달의 『소』는 “(군주를 시해한) 도적을 토벌하고 스스로 그 이전 군주를 잇는 것이므로 해를 넘기기를 기다리지 않았다”라고 설명한다.

書曰衛人立, 衆也: 공자진의 즉위는 대다수 위나라 사람들의 뜻임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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