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 환왕과 장공의 땅 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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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왕이 정나라에게서 오(의 서남쪽)·류(하남성 언사현 남쪽)·위(하남성 맹진현 동북쪽)·우(하남성 심양현 서북 우대현) 의 땅을 받고, 정나라에는 소분생蘇忿生의 땅을 주었다. 즉 온(하남성 온현 서남쪽)·원(하남성 제원현의 북서쪽 원향)·치(하남성 심양현 서남쪽)·번(하남성 제원현 동남쪽)·습성(하남성 무척현 서남쪽)·찬모欑茅(하남성 수무현 대륙촌)·향(하남성 제원현 남서쪽)·맹(하남성 맹현 남서쪽)·주(하남성 심양현 동남쪽)·형(하남성 심양현 서북쪽)·퇴(하남성 획가현 북쪽)·회(하남성 습성의 북쪽) 등이다

군자는 이 때문에 환왕이 정나라를 잃을 것을 알았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행동하는 것, 그것이 덕의 법이요 예의 큰 줄기이다. 자신의 소유도 아닌 것을 남에게 주었다. 감복하여 오지 않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1.11.5. 王取···之田于而與鄭人蘇忿生之田 - ·····欑茅······君子是以知桓王之失. 而行之德之則也禮之. 己弗能有而以與人. 人之不至不亦宜乎? 


해설

王取···之田于: 의 음은 오이다. 읍은 하남성 언사현偃師縣의 남쪽이고, 는 유의 서남쪽이다. 의 음은 위이다. 위읍은 하남성 맹진현孟津縣의 동북쪽이다. 의 음은 우로서 우읍은 하남성 심양현沁陽縣 서북의 우대현臺鎭 있는데, 여기가 옛 우성이다.

而與鄭人蘇忿生之田 - ·····欑茅······: 『좌전·성공11년』의 “옛날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망시킨 후, 제후들을 봉건할 때 소분생蘇忿生에게 온 땅을 주고 사구司寇 삼았다”라는 기사로 보면 소분생은 주 무왕 당시 사구로서 온 땅에 봉건된 인물이다. 온은 은공 3년의 “온 지역의 보리를 탈취하여”에서의 온을 가리킨다. 온의 옛성은 현재 하남성 온현의 서남쪽 30리 떨어진 곳이다. 『좌전·장공19년』의 기사를 보면, 온은 장공 19년에도 소씨의 식읍이었다. 이는 금문金文으로도 증명되는데, 어기 의 명문에 “왕이 어 에게 50을 하사하고, 에게 50을 하사했다”는 문구가 있다. 이로써 미루어보면, 여기서 말하는 온전은 왕전王田이 또한 온에 있었는데, 정나라에게 그 식읍 전부를 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온은 소씨의 읍이었다.


춘추좌전 지도 - 원,치,번,습성,향,맹,찬모


, 현재 하남성 제원현濟原縣 북서쪽에 원향原鄕 있는데 이곳에 해당한다. 한편 고동고의 『대사표』는 제원濟原의 원은 장공 18년의 기사에 보이는 원장공原莊公이며, 여기서 말하는 지명은 별개의 곳이라고 주장하는데, 분명하지 않다.

, 읽는다. 하남성 심양현沁陽縣 서남쪽 30리 떨어진 곳에 옛 치성이 있다.

, 번은 양번陽樊이라고도 한다. 제원현濟原縣 동남쪽 약 20리 떨어진 곳에 고양성古陽城 있는데 여기에 해당한다.

습성, 왕인지의 『경의술문』고증에 따르면, 본래는 습성隰成으로 쓰고, 즉 습성濕城이다. 후인이 실수로 성자로 바꿔썼다. 하남성 무척현武陟縣 서남쪽이다.

찬모欑茅, 음은 鑽營이다. 찬모는 하남성 수무현修武縣 있는 대륙촌大陸村 해당한다.

, 현재 하남성 제원현濟原縣의 남서쪽 20여리 떨어진 곳에 옛 향성向城 있다.

, 음은 맹이다. 하남성 맹형孟縣 남서쪽으로 몇 리 정도 떨어진 곳이다.

, 하남성 심양현沁陽縣 동남쪽 50리 정도 떨어진 곳으로 『좌전·소공3년』의 주석에 자세하다.

, 음은 형이다. 하남성 심양현沁陽縣 서북쪽 30리 떨어진 곳이다.

, 음은 퇴이다. 하남성 획가현獲嘉縣 북쪽으로 약 20리 떨어진 곳이다.

, 하남성 무척현武陟縣 서남쪽에 있는 습성의 북쪽이다.

두예의 주석에 따르면 모두 12개읍이다. 심흠한沈欽韓 『지명보주地名補注』는 『정의』에서 인용한 『괄지지括地志』를 근거로 찬모는 두 개의 읍이며, 두예가 실수로 하나로 본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여기서는 두예의 주석을 따른다.

君子是以知桓王之失: 여기 “是以”는 연사로 사용되는 “是以”와는 다르다. 여기의 “시이”는 개사와 빈사가 도치된 것을 나타내고, 以是 즉 이 때문에(因此)의 뜻이다. 시는 대명사이고, 다음 글을 가리킨다.

恕而行之德之則也禮之經也. 己弗能有而以與人. 人之不至不亦宜乎: 두예: “소씨가 왕을 배반한 것을 보면 12개 읍은 왕이 소유한 읍이 아니다. 이것이 환왕 5년 제후들이 왕을 따라서 정나라를 공격하게 되는 배경이다.” 『논어·위영공』의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의 뜻을 설명한다. 즉 주 환왕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정 장공에게 줌으로써 의 도리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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