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 등후와 설후의 예방 - 山有木,工則度之

본문

은공 11년 봄, 등나라와 설나라의 군주가 내조하여 앞자리를 다투었다. 설후는 “우리가 등나라에 앞서 봉건 받았다.”라고 말했고, 등나라는 “우리는 주나라의 복정卜正 출신이고 설나라는 혈연 관계가 없는 서성이므로 그의 뒤에 설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은공이 우보를 통해 설후에게 요청하였다. “군주와 등나라 군주께서 과인의 안부를 묻기 위해 오셨습니다. 주나라 속담에 ‘산에 나무는 많지만 장인이 쓸 나무를 선택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예는 많지만 주인이 예를 선택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나라의 회맹에서 이성은 동성의 뒤에 섭니다. 과인이 설나라를 예방하여 감히 임성의 제후들과 동렬에 설 수는 없습니다. 군주께서 과인에게 은혜를 베풀어 등나라 군주가 먼저 예를 차릴 수 있게 청을 드립니다.” 설후가 이를 수락했고 등나라 군주를 앞에 서게 했다.


1.11.1. 十一年春滕侯·薛侯來朝爭長. 薛侯: 我先封.滕侯: , 之卜正也; 庶姓也我不可以後之.” 公使羽父請於薛侯: 君與滕君辱在寡人諺有之曰: 山有木工則度之; 賓有禮主則擇之.之宗盟異姓爲後. 寡人若朝于不敢與諸. 君若辱貺寡人則願以滕君爲請.


해설


나라

임성任姓의 나라이다. 두예는 소국으로서 전기가 없는 관계로 군주의 세계世系 알 수 없다고 한다. 『좌전·정공원년』에 혜중奚仲 설나라에 살고 있다고 하고, 『국어·진어』4에선 황제의 자손 12개의 성이 있는데, 임이 그 중 하나라고 말한다. 즉 설 역시 황제의 후손이다. 뇌학기雷學淇의 『죽서기년의증竹書紀年義證』권38에서 일찍이 설나라의 역사를 추려서 논한 적이 있다. 설은 본래 설성薛城에 위치했는데, 현재의 산동성 등현滕縣 남서쪽 10리이다. 후에 비로 천도했고 하비下邳라고도 한다. 위치는 현 강소성 비현邳縣의 동북쪽에 있다. 그 후 다시 상비上邳로 천도했는데 즉 중훼성仲虺城으로서 설성의 서쪽에 있다. 춘추시대 이후 다시 하비로 천도했다. 염약거閻若의 『사서석지四書釋地』에선 제 민왕3년 전문田文을 설에 봉건했는데 이때 설나라가 멸망한 해이다. 현재 전해지는 이기로 설후이薛侯와 설후정薛侯鼎이 있다. 1973년 산동성 등현의 교공사橋公社 적장대대狄莊大隊가 설성의 유적지에서 설중薛仲 동궤 4건을 발견했다


춘추좌전 지도 - 등나라와 설나라



춘추좌전 지도 - 등나라


에는 몇 가지 뜻이 있다. 신하가 군주를 알현하는 것도 조이다. “맹자가 왕을 알현하려 할 때(孟子將朝王)”가 그 예로서 이는 일상적인 조이다. 제후가 천자를 조견하는 것 역시 조라 하는데, 이는 근견覲見 조이다. 『의례』의 「근례覲禮」에 그에 대한 절차가 소개되어 있다. 또 제후끼리의 상견 역시 조라 한다. 조견의 의전에 대해서는 『대대례기大戴禮記·조사朝事』에 “제후들간 상조의 예”가 소개되어 있다. 설나라가 노나라를 예방한 사례는 이 한 차례이다. 차후 소국이 대국, 더욱이 패주에겐 조견이 아니면 불가능해졌다

十一年春滕侯·薛侯來朝爭長: 상성이다. 쟁장爭長이란 예를 거행하는 순서를 다투다.

薛侯: 我先封.: 설나라의 선조인 혜중은 설에 거주하며, 하나라 때 거정車正이란 관직을 지냈다. 이는 하나라 때에 설나라가 봉건되었다는 말이다.

滕侯: , 之卜正也: 복정卜正 관명으로서 복관의 수장이다. 『주례·춘관』에 태복太卜이란 관직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다.

庶姓: 서성庶姓이란 주나라와 동성이 아니다. 뒤에 상세하다.

我不可以後之: 주석 없음.

公使羽父請於薛侯: 君與滕君辱在寡人: 은 경의를 표시하는 부사이다. 안부를 묻다(存問존문)의 뜻이다. 왕인지의 『경의술문』에 자세한 설명이 있다.

諺有之曰: 山有木工則度之: 음은 탁이다(입성). 『이아·석기』곽박의 주석에서 인용할 때는 “탁”으로 쓴다. 나무를 베는 것을 이라 한다. 또 길고 짧은 것을 잰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서·율력지』의 소위 “분···· 등은 길이를 재는 척도이다.

賓有禮主則擇之: 과 택은 운을 이룬다. 고음에서 모음이 같다.

之宗盟: 종맹宗盟은 병렬 결구이다. 『주례·대종백』의 “빈례를 통해 방백들의 친목을 다진다. 봄에 보는 것을 조, 여름엔 종, 가을엔 근 그리고 겨울에 보는 것은 우 한다. 계절에 맞춰 찾는 것을 회 하고, 사방의 각 제후가 조견하러 올 때 사계절에 맞춰 분배한 은견殷見이라 한다”를 보면, 종 역시 회동의 의미이다. 『상서·우공』의 “장장과 한수가 합류하여 바다로 흐른다(江漢朝宗于海)”에서도 역시 조와 종은 같은 뜻(만남)으로 쓰였다. 종맹은 회맹과 같다. 옛 주소가들은 이 뜻을 알지 못했다.

異姓爲後: 도홍경陶鴻慶의 『좌전별소左傳別疏: “『주례·추관·사의직司儀職』에 보면 ‘(왕이 제후를 접견할 때) 서성의 제후에겐 토읍의 예를, 이성의 제후에겐 시읍의 예를, 동성의 제후에겐 천읍의 예를 취한다(土揖庶姓, 時揖異姓, 天揖同姓)’이라 한다. (강영江永: “옛 사람들도 읍을 할 때 지금처럼 손을 모아 예를 취하는데, 공수한 손을 높이 드는 것을 천읍, 손을 지면과 나란히 뻗는 것을 시읍, 공수한 손을 낮게 하는 것을 토읍이라 한다.) 정현은 이에 대해 ‘서성庶姓이란 혈연관계가 없는 것이고, 이성異姓이란 혼인으로 맺어진 관계이다’라고 설명했다. 가의의 『소』를 보면, 土揖庶姓 이하는 관계가 먼 이를 먼저 우대하고 친한 이를 뒤로 하는 것이 순서이다라고 한다. 『좌전·애공24년』에는 주공周公과 무공武公이 설나라에서 부인을 취했으므로 설나라는 노나라에 대해 혼인으로 맺어진 관계이다. 그래서 등나라 군주는 (설나라는) ‘서성庶姓’이라고 말했고, 은공은 (설나라를) ‘이성異姓’이라고 말한 것이다. 에는 존비가 있지만 이에는 상호 지위가 동등하여 상하 존비의 구분이 없다. 등나라 군주의 뜻은 남의 허물을 지적함(指斥)에 있고, 은공의 뜻은 사리를 분별하여 공평하게 하는 것에 있다. 말 한마디의 차이가 어조에서 확연이 드러난다. 좌씨의 수사가 정밀함이 이와 같다.

寡人若朝于不敢與諸: 여러 임이란 임성을 가진 여러 군주들이다. 『정의』는 『세본성씨편』을 인용하여 임씨 성을 가진 제후국이 10곳이 있다고 하는데, ·장·설·서·여·축·종·천·필·과 등이다.

는 서다의 뜻이다. 不敢與齒는 감히 한 자리(동렬)에 서지 못한다는 뜻이다.

君若辱貺寡人: 은혜를 더하다.

則願以滕君爲請: 청컨대 등후의 요청을 받아주라는 뜻.

薛侯許之乃長滕侯: 은 상성으로서 동사의 사동용법으로 쓰였다. 등후를 설후의 앞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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