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8. 은공을 시해한 우보羽父

본문

우보가 환공을 살해할 것을 청하고 태재大宰의 자리를 요구했다. 은공이 말했다. “내가 즉위한 것은 그가 어렸기 때문이다. 장차 그에게 자리를 넘길 것이다. 도구菟裘(산동성 태안현 동남쪽) 땅에 거처할 집을 짓게 하고 그 곳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이다.” 우보는 두려워 도리어 환공에게 은공을 모함하고 그를 죽일 것을 청하였다

은공이 공자였던 시절, 정나라와 호양狐壤(하남성 허창시의 북쪽)에서 싸우다 포로가 되었었다. 당시 정나라는 은공을 대부 윤씨의 가택에 감금했다. 은공은 윤씨를 매수하고 그가 모시는 귀신 종무鍾巫에게 기도했다. 마침내 윤씨와 함께 귀국했고 종무의 신주를 노나라에 세웠다. 11, 은공이 종무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사포社圃에서 재계하고, 대부 위씨의 집에서 묵었다. 임진일(15), 우보는 천한 이를 사주하여 은공을 그 집에서 시해하고 환공을 옹립하였으며 위씨를 토벌하여 죽은 이가 많았다. 『춘추』에 은공의 장례를 언급하지 않았는데, 군주의 예로 장례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다(1).



(1) 『춘추번로·옥배편』에서 동중서는 역적을 토벌하지 못하면 장례를 거행했다고 쓰지 않으며 그 시해한 역적을 『춘추』에서 다시 거론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한편 선공2, 진나라의 군주를 시해한 조돈이 계속 언급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자문을 하고, 이에 대해 시해는 조천에 의한 실행되었고 조돈은 실상 그를 처벌하지 않은 죄를 물은 것이므로 '사람의 뜻'을 중시하는 『춘추』에서 실질적으로 그를 죄줄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억지다. 범례로 세울 수 없는 것을 범례로 확립한 것에서 비롯된 억지 논리이다. 조돈은 패자 진나라의 집정 대신이며 진나라의 막강한 가문이다. 그를 언급하지 않고 『춘추』의 국제 외교를 기술할 방법이 없다. 한낱 노나라의 대신에 불과한 은공을 시해한 우보와는 지위가 다르다.


1.11.8. 羽父請殺桓公將以求大宰. 公曰: 爲其少故也吾將授之矣. 使營菟裘吾將老焉.羽父反譖公于桓公而請公之爲公子也, 人戰于狐壤止焉. 人囚諸尹氏. 尹氏而禱於其主鍾巫. 遂與尹氏而立其主. 十一月公祭鍾巫齊于社圃館于. 壬辰羽父使賊公于桓公而討有死者. 不書葬不成喪也.


해설

羽父請殺桓公, 將以求大宰: 는 태와 같다. 대재 역시 태재로 쓰기도 한다. 여러 경전에서 보이는 대재란 명칭이 제후국에서 쓰이는 경우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일반적인 관직명이고 둘째, 총재冢宰·집정執政·경상卿相 뜻이다. 『좌전』으로 이를 고찰해보면, 송나라의 대재는 실제 그 지위가 경상의 아래이다. 화보독華父督 대재로서 송나라 상공을 시해하고, 장공을 보좌한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한비자·설림하說林下』에선 “송나라 대재의 지위는 높고, 정무를 주관하고 결정했다”고 말하는데, 「내저설상內儲設上」의 “숙손이 노나라의 재상으로 있었는데 그 지위가 높고 정무를 주관했다”는 말을 근거로 보면 대재는 또한 경상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으므로 이것이 대재의 두 번째 뜻이다. 정나라의 대재 석착 양소良霄 부수副手로서 초나라에 사신을 떠났던 기사가 『좌전·양공11년』에 있는데 내용을 보면 직위가 높지 않다. 하지만 진나라 조무趙武가 정나라 집정 자피子皮 총재라고 불렀던 사례가 『좌전·소공원년』에 보이는데 이것은 후대의 또 하나의 뜻이다. 초나라는 영윤집정令尹執政 있고, 그 아래에 대재 자상子商 대재 백주리伯州 있었다. 그런데 위오는 영윤이었는데도 진나라 수회는 그를 재라고 부른 사례가 『좌전·선공12년』에 보인다. 재는 곧 대재로서 대재는 또한 집정의 통칭이었다. 노나라는 본래 대재의 관직이 없었는데 본문에서 대가로 대재의 지위를 요구했다고 말한 것은 환공을 시해한 대가로 집정인 경의 지위를 요구한 것과 같다. 그래서 『사기·십이제후연표』에선 “대부 휘가 환공을 시해할 것을 청하고 재상 자리를 요구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노세가」역시 “공자휘가 은공을 모함하고 그에 대해 ‘백관이 아첨하면 임금이란 사람이 그를 중용하니 저는 환공을 위해 그를 살해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군주께선 저를 재상으로 삼아 주십시오’”라고 서술한다. 모두 상으로 대재를 해석한 것이니 올바르다.

公曰: 爲其少故也吾將授之矣: 爲其少故也기술에 생략한 바가 있다. 『사기·노세가』에 기록된 것이 비교적 완전한 내용이다. 수지授之 환공에게 군주의 자리를 양위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使營菟裘吾將老焉: 은 『시·대아·영대』의 “터를 측량하고 건설하고(經之營之)”에서의 “영”과 같은 뜻으로서 건축하다 음은 도이다. 『사기·진본기』의 “진나라의 선조는 영성嬴姓이다. 그 후손이 봉건되었을 때, 봉건받은 나라를 따라서 성을 삼았는데, 도구씨菟裘氏 있다.” 『잠부론·지씨성志氏姓』에도 “종리鍾離·운엄運掩·도구菟裘는 모두 영성이다.” 즉 도구는 고대에 영성의 나라였는데, 그 후에 노나라에 병합되었다. 양리승梁履繩의 『좌통보석左通補釋』에서 인용한 장운오張雲의 말을 보면, “산동성 태안현 동남쪽 90리 부근의 양보梁父에 도구성이 있다”고 한다란 늙어 죽다


춘추좌전 지도 - 도구菟裘


羽父反譖公于桓公而請: 소리는 즘이고, 거성이다. 말로 비방하다.

公之爲公子也, 人戰于狐壤止焉: 호양狐壤 정나라 지명이다. 하남성 허창시의 북쪽이다. 두예: “노나라 내부적으로 포로로 잡힌 사실을 숨기기 위해 라고 쓴 것이다(內諱獲, 故言止).” 지 포로로 잡히다.

人囚諸尹氏: 윤씨는 정나라 대부이다.

尹氏而禱於其主鍾巫: 종무鍾巫 귀신의 이름이다. 윤씨 가문에서 제주祭主 삼은 신이다. 초순焦循 『좌전보소左傳補疏』에 그 내용이 상세하다.

遂與尹氏而立其主: 종무의 신주를 노나라에 세웠다.

十一月公祭鍾巫齊于社圃: “공제종무”는 은공이 종무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준비하다. 옛 사람들은 때때로 장자를 생략한다. 는 재 같다. 고인들은 제사 전에 먼저 정결하게 한다사포社圃 정원의 이름이다.

館于: 은 숙박하다. 의 음은 위이다. 위씨는 노나라 대부이다.

壬辰羽父使賊公于: ”는 “위씨의 집”과 같다.

桓公而討有死者: 진례陳澧 『동숙독서기東塾讀書記: “‘有死者’라고 쓴 까닭은 그 원통함을 서술한 것이다.” 위씨에 대해서 그 이름을 쓰지 않았다. 고염무는 “그가 이름있는 지위에 있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不書葬不成喪也: 진례: “환공이 군주의 예로써 장사지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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