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3. 정장공, 고郜와 방防 땅을 노나라에 주다

본문

6월 무신일(6월에는 무신일이 없다), 은공이 제 희공 및 정 장공과 노도老桃에서 회합했다. 임술일(7), 은공이 관(산동성 단현單縣의 북쪽)에서 송나라 군대를 물리쳤다. 경오일(15), 정나라 군대가 고(산동성 성무현成武縣 동남쪽)로 쳐들어갔다. 신미일(16), 빼앗은 고 땅을 노나라에 귀속시켰다. 경진일(25), 정나라 군대가 방(산동성 금향현金鄕縣 서남쪽)으로 쳐들어갔다. 신사일(26), 빼앗은 방 땅을 노나라에 귀속시켰다

군자가 정 장공에 대해 평하였다. “이번 일처리는 공정하다 말할 수 있다. 왕명으로 내조하지 않은 송나라를 토벌하고, 땅을 탐내지 않고 왕사에 참여한 노나라의 수고를 위로하였으니, 이것이 정치의 요체이다.

1.10.3. 六月戊申, 公會齊侯·鄭伯老桃. 壬戌, 公敗師于. 庚午, 師入. 辛未, 歸于我. 庚辰, 師入. 辛巳歸于我君子謂鄭莊公于是乎可謂正矣, 以王命討不庭, 不貪其土, 以勞王爵, 正之體也.


해설

六月戊申: 6월에는 무신일이 없다. 만약 무오일이라고 한다면 6 3일이다

公會齊侯·鄭伯老桃: 두예: “노도老桃 송나라 땅이다.” 혹자는 산동성 제녕시濟寧市 동북쪽에 있는 도취향桃聚鄕 노도라고 주장하는데 노나라와 제나라의 국경에 위치하므로 옳지 않은 듯하다. 여기 회는 맹회의 회가 아니고 아마 우보가 군사를 이끌고 은공보다 앞서 갔고, 은공이 뒤늦게 도착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춘추좌전 지도 - 고郜와 방防


壬戌: 7일이다.

公敗師于. 庚午: 경오일은 15일이다.

師入: 본래는 국명으로 주 문왕의 아들을 봉건한 나라이다. 춘추시대 이전에 송나라에게 멸망당했고, 이로 인해 고나라의 정은 자연히 송나라가 취했다. 그래서 노나라가 고나라의 정 얻게 된 것이다.

辛未, 歸于我. 庚辰: 경신일은 25일이다.

師入防: 여기의 방은 서방西防이다.

辛巳歸于我: 주석 없음.

君子謂鄭莊公于是乎可謂正矣, 以王命討不庭: 은 동사로 쓰이면 내조하다의 의미이다. 『시·대아·상무尙武』의 “서나라가 내조하다(方來庭)”은 서나라가 조견한 것을 말한다. 부정不庭은 곧 조견하지 않음이다. 9년의 『좌전』 “송공이 조견하지 않아서(宋公不王)”라는 명분을 내세웠기 때문에 여기서 부정不庭을 토벌했다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부정은 명사로서 조견하지 않은 나라를 의미한다. 즉 『시·대아·한혁韓奕』의 “조견하지 않는 나라들(不庭方)”과 『모공정』의 “조견하지 않는 나라들(不延方)”과 같다. 『관자·명법해明法解: “공법公法을 폐하고 오로지 중신들의 말만 듣는다. 이로 인해 여러 신하들은 모두 자신들의 무리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고, 중신들은 그 주인을 망각한다. 중신들의 집 대문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왕실에 조견하는 이는 없다(趨重臣之門而不庭). 그런 까닭에 「명법明法」에서 ‘많은 사람들이 중신들의 집에 모여들지만 조견하는 이는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즉 이를 보면 명백히 조정에 조견을 오지 않는 것을 부정不庭의 뜻으로 풀이했음을 알 수 있다. ‘정’은 ‘녕’으로도 쓴다. 『역·비괘比卦』의 “不寧方來”의 뜻은 이전에 조견하지 않았던 나라들이 이제 조견 옴을 말한 것이다. 『역』의 “不寧方”은 즉 『주례·고공기·재인梓人, 『대대예기·투호편投壺篇, 『백호통의·향사편鄕射篇』 그리고 『설문·시부矢部』에서의 “후”자의 “不寧侯”와 같은 의미이다. 『설문·시부矢部』의 설명에 보이는 축사祝辭에서 “왕실을 조견하지 않는 제후들처럼 되지 말라. 왕의 처소를 조견하지 않는다면 활을 들어 너희를 쏘리라(毋若不寧侯, 不朝于王所, 故伉而射女)”는 불녕不寧과 부정不庭의 뜻이 조견하지 않음不朝임을 더욱 확연하게 알려준다. 두예는 『춘추·성공12년』의 “조견하지 않는 제후들을 토벌하다(而討不庭)”에 대해 “배반하고 왕정에 조견하지 않는 자”로 해석했는데 부합한다. 혜동과 홍량길은 옛 설에 근거하여 부정을 정직하지/옳지 않음不直으로 해석했는데 옳지 않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중국어문』1963년 제4기의 『부연부정설不廷不庭說』에 있다.

不貪其土, 以勞王爵, 正之體也: 는 거성으로 위로慰勞, 음식을 하사하여 수고를 위로함(犒勞호로)의 뜻이다. “정”은 “정”의 뜻이다. 정 장공은 주나라 왕의 좌경사로서 왕명을 받아 송나라를 토벌한 것이므로 이 땅을 취하는 것은 옳지 않아 노나라에게 귀속시킨 것이다. 그래서 『좌전』은 왕작王爵을 위로하고 정치의 대체를 얻었다고 말했다. 두예는 주석을 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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