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구종오정九宗五正

본문

(산서성 익성현)구종오정九宗五正 경보頃父의 아들 가보嘉父가 수(산서성 개휴현介休縣 동남쪽)에 머물던 진후晉侯 영접하여 악(산서성 향녕현鄕寧縣 남쪽)으로 모셨다. 진나라 사람들은 그를 악후鄂侯로 불렀다. (진세가」와 「연표」에 따르면, 악후는 이미 환왕이 애후를 세우기 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되어 있어, 이 당시 그의 아들 애후와 함께 옹립된 사실과는 맞지 않는다. 『사기』는 별개의 사료에 근거한 것 같다. 『좌전』의 기술에 따르면 애후가 이미 익에서 즉위했기 때문에 악후는 익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1.6.2.  九宗五正頃父之子嘉父晉侯, 納諸, 人謂之鄂侯.


해설

九宗五正頃父之子嘉父晉侯: 이 문구는 단지 가보가 진나라 군주를 수나라에서 영접한 것을 설명하고 있다. 九宗五正頃父之子”는 모두 가보의 내력을 설명한 것이다. 은 지명으로 경보와 가보가 거주하는 곳이다. 九宗五正”은 관직명인데 아마 경보의 관직이었을 것이다. 『좌전·정공4년』의 “당숙에게 회성의 구종과 직관 오정을 나눠 주었다(唐叔懷姓九宗, 職官五正)”라는 기사를 보면, 은나라 이래 대대로 이어 온 관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혹 경보는 당시에 매우 저명하고 명망있는 인물로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들 가보를 서술할 때 그 명위를 앞에 썼는데, 『춘추·환공2년』의 “정후의 손자 난보(靖侯之孫欒寶)”와 같은 예다. 어떤 한 사람을 서술할 뿐인데도 이처럼 거주지, 그의 족, 관직, 부친 등을 상세하게 쓴 것을 보면 그가 진나라의 유력한 가문(强宗)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진후는 곧 익후가 수나라로 도망쳤다에서의 그 사람이다. (두예: “익은 진나라의 옛 도읍이다. 당숙이 처음 봉건할 때 회성 구종과 직관 오정을 받았으므로 이들이 대대로 진나라의 유력한 가문이 되었다. 오정은 오관의 수장이고, 구종은 한 성이 나뉘어 구족이 된 것이다.” 옮긴이)

納諸: 『일통지』에 따르면 악후의 옛 보루는 현재 산서성 향녕현鄕寧縣 남쪽으로 1리 정도 떨어진 곳이다.


춘추좌전 지도 - 악후, 진나라


人謂之鄂侯: 진세가」와 「연표」에 따르면, 악후는 이미 환왕이 애후를 세우기 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되어 있어, 이 당시 그의 아들 애후와 함께 옹립된 사실과는 맞지 않는다. 『사기』는 별개의 사료에 근거한 것 같다. 『좌전』의 기술에 따르면 애후가 이미 익에서 즉위했기 때문에 악후는 익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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