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 괵虢나라

본문

정나라 공숙의 반란 때 공숙의 아들 공손활이 위나라로 도망쳤다. 위나라는 그를 위해 정나라를 정벌하여 늠연廩延(하남성 연진현延津縣 북동쪽)을 탈취했다. 정나라는 왕과 ()괵나라(하남성 섬현陝縣)의 군대를 거느리고 위나라의 남쪽 변경을 공격했다. 정나라가 주나라에 군사를 요청했고, 주나라 군주는 공자예에게 사람을 보냈다. 공자예가 은공에게 군대 파견을 요청했지만 은공은 불허했다. 공자예가 독단으로 가서 주나라 및 정나라와 익(산동성 비현費縣 서남쪽)에서 결맹했다. 『춘추』에 이 결맹을 쓰지 않은 까닭은 은공의 명이공 아니었기 때문이다.


1.1.11. 鄭共叔之亂, 公孫滑出奔. 人爲之伐, 廩延. 人以王師·師伐南鄙. 請師於, 使私于公子豫, 請往, 公弗許. 遂行, ·, 盟于. 不書, 非公命也.


해설

鄭共叔之亂, 公孫滑出奔衛: 공숙은 공숙단이고, 공손활은 공숙단의 아들이다.

人爲之伐, 廩延. 人以王師·師伐南鄙: 정 장공이 주 왕실의 군사와 괵군을 동원할 수 있었던 까닭은 당시 정 장공이 왕실의 경사였고 서괵공 역시 장공과 더불어 왕실을 보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좌전·희공26년』의 군사와 관련된 범례에 따르면, 군대의 좌우를 잘 지휘할 수 있을 경우 라고 말한다(凡師, 能左右之曰以).” 본문의 는 즉 정나라가 능히 왕실의 군대와 괵군을 지휘할 수 있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은 동괵과 서괵 중 서괵이다. 현재 하남성 섬현陝縣 근처에 그 옛성이 있다. 앞서 나온 “괵숙이 죽은 곳”에 대해 공영달은 그의 『소』에서 『좌전』을 잘 살펴보면, 연나라는 두 곳이 있다. 하나는 북연을 가리킨다. 주나라도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소주라고 호칭한다. 본문의 괵나라 역시 두 곳이 있다. 『춘추』와 『좌전』에선 동서를 언급하지 않은 까닭은 당시 이미 동괵은 멸망했기 때문에 서괵을 서라고 굳이 호칭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한다.



괵계자백반의 명문


請師於, 使私于公子豫: 주자는 주자극이다. “私于公子豫는 공자예에게 사적으로 사람을 보내 말하였다는 뜻. 공자예는 노나라 대부이다.

請往, 公弗許. 遂行, ·, 盟于: 은 주나라의 땅이다. 현 산동성 비현費縣의 서남쪽 90리에 있다.

不書, 非公命也: 은공은 이미 공자예의 청을 수락하지 않았다. 즉 공자예익의 결맹은 은공의 명이 아니었다. 그래서 『춘추』에선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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