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정 장공 - 평왕의 경사卿士

 본문 


정나라의 무공과 장공은 평왕의 경사였다. 평왕이 경사의 직을 괵공과 나누려 하자 장공은 왕을 원망했다. 왕이 말하였다. “그런 사실이 없다.” 이 때문에 주나라와 정나라는 인질을 교환했다. 왕자호가 인질이 되어 정나라로 가고, 공자홀이 주나라로 갔다. 평왕이 붕어했고, 주나라는 괵공에게 정사를 맡기려고 했다. 4, 정나라의 채족祭足이 군대를 이끌고 온(하남성 온현)의 보리를 빼앗아갔다. 가을, 다시 성주成周(하남성 낙양시 동쪽)의 벼를 탈취했다. 두 나라는 악행을 서로 주고받았다

군자는 말한다. “약속이 진심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인질은 소용이 없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행동하고, 예로써 약속을 지킨다면 설사 인질이 없더라도 누가 이간질할 수 있을까? 진실로 참된 믿음이 있다면, 골짜기와 늪지 같은 비루한 곳의 산물과 개구리밥··수초 같은 보잘것없는 것도 대바구니에 담고 솥에 삶아 길가의 고인 물과 함께 신령에게 바칠 수 있고, 왕공에 진상할 수도 있다. 하물며 군자들이 나라 간에 약속하고 예로써 이를 실행한다면 인질을 어디에 쓸까? 『풍』의 「채번」과 「채빈」(『소남』), 「행료」와「동작」(『대아』) 등의 시는 충신忠信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1.3.3. 鄭武公·莊公平王卿士. 王貳于. 鄭伯怨王. 王曰: 無之.·交質. 王子狐爲質於, 鄭公子忽爲質於. 王崩, 人將虢公. 四月, 鄭祭足帥師取之麥. , 又取成周之禾. ·交惡.
君子曰: 信不由中, 質無益也. 明恕而行, 要之以禮, 雖無有質, 誰能間之? 苟有明信, ·谿··沚之毛, ··薀藻之菜, ···釜之器, ··行潦之水, 可薦於鬼神, 可羞於王公, 而況君子結二國之信, 行之以禮, 又焉用質? 采繁·采蘋, 行葦」·「泂酌, 昭忠信也.


해설

鄭武公·莊公平王卿士: 『춘추』에 “경사卿士”라는 단어가 자주 보이는데 그 뜻은 같지 않다. 『상서·홍범洪範』의 “다음으로는 경사와 논의하고, 그 다음으로는 서민들과 논의하여(謀及卿士, 謀及庶人), 「고명顧命」의 “경사와 방군들은 마면에 의상을 입고 들어와 제 자리에 서고(卿士邦君麻冕蟻裳, 入卽位)” 등의 사례에서의 경사는 폭넓게 조정의 경대부를 가리킨다. 이것은 광의의 경사로 쓰인 경우이다. 「목서牧誓」의 “이에 도망친 노예들을 대부와 경사로 삼아(是以爲大夫卿士)”에선 경사에 대부가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경사의 뜻은 『시·소아·시월지교』의 “경사인 황보와 사도인 번씨(皇父卿士, 維司徒)”나 『상송·장발長發』의 “훌륭한 경사를 내려주시니 그가 바로 아형이었네(降予卿士, 實維阿衡)”에서의 “경사”로서 이는 협의의 경사이다. 두예는 “본문의 경사卿士 왕의 경사들 중에서 집정을 말한다”라고 풀이했는데 옳다. 『좌전』에선 모두 8차례 “경사”를 사용하고 있는데 모두 협의의 뜻이다.
王貳于: 은 서西 괵공으로 역시 주 왕실의 경사로 있었다. 王貳于의 뜻은 왕이 정백에게만 정치를 일임한 것이 아니라 짝으로서 괵공에게도 정권을 나누었다는 의미다. 서괵에 대해서는 『좌전·은공원년』의 주석에 자세하다.


춘추좌전 지도 - 괵나라



鄭伯怨王. 王曰: 無之.: 沈彤『춘추좌전소증春秋左傳小疏: 無之 대략, 정권을 나눈 것에 대해 원망하지 말라의 뜻이다.” 즉 “무”를 금지를 표시하는 부사로 봤지만 이 뜻으로 쓰인 아래에 대명사 따른 예는 고문의 어법에는 없다. 여기서 무는 “없다(無有)”의 뜻이다.
·交質: 인질이다. 사람을 압류품처럼 취급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성행했다. 서로 간의 뜻.
王子狐爲質於, 鄭公子忽爲質於: 왕자호 평왕의 아들이다. 공자홀 정 장공의 태자이다.
王崩: 평왕이 서거했다. 평왕의 죽음은 이 해 3월에 있었다. 앞에 내용이 있다.
人將虢公: 음은 비이고 거성이며 주다()의 뜻이다. 두예: “주나라가 결국 평왕의 본래 뜻을 성취했다.
四月, 鄭祭足帥師取之麥: 여기서 4월은 하나라의 역법을 따른 것이다. 하력 4월이 되어야 보리가 익고, 그래서 정나라가 군사를 이끌고 가서 탈취한 것이다. 조익趙翼 『해여총고陔餘叢考』권2에서 이를 두고 “정나라는 하나라 역을 따랐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두예는 주력 4, 즉 하력 2월로 보고 보리가 익기 전에 정나라 군사들이 가서 짓밟은 것으로 풀이했지만 옳지 않다.
채족祭足 정나라 대부로서 은공 원년의 기사에 나온 채중祭仲이다.
주나라 왕의 기내에 있는 소국으로서 현재의 하남성 온현溫縣에서 남쪽으로 30리 떨어진 곳이다.
, 又取成周之禾: 가을 역시 하력 가을이다. 성주成周 『상서·낙고서洛誥序』에서 언급한 “소공이 터를 살피고 주공이 가서 성주를 조성했다”는 곳이다. 그후 은나라의 유민들을 이 곳에 이주시켰다. 그 옛성은 현재 하남성 낙양시 동쪽으로 약 40, 언사현偃師縣에서 서쪽으로 약 3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첫째는 백곡의 통칭이고, 둘째는 기장 등의 작물을 가리킨다. 여기선 두 번째의 뜻으로 쓰였다. 『시·토원』의 『소』에서는 이를 “성주의 곡식을 취했다(成周之粟)”라고 인용하고 있다. 공영달은 “속”을 가지고 “화를 해석했는데, 근거한 본이 다른 것은 아니다. “속 역시 두 가지 뜻이 있다. 널리 곡식을 모두 “속”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통칭이고, 기장의 알곡을 속이라고도 하는데 오늘날의 “소미小米”로서 이는 전칭이다
·交惡: 주석 없음
君子曰: 信不由中: 사람의 말은 곧 신이다. 같다. 『좌전·희공28년』의 “이제 하늘의 뜻이 우리에게 있으니(今天誘其衷)”에 대해 두예는 “충이라고 풀이했다. 모두 중심을 가리킨다. 뜻은 말이 충심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 성실함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質無益也. 明恕而行, 要之以禮: 음은 요이고, 지키다()의 뜻이다. 『논어』에 누차 “約之以禮”라는 말이 나오는데 본문의 요 역시 약속의 뜻이다
雖無有質, 誰能間之?: 이간질하다
苟有明信, ·谿··沚之毛: ·곡谿 모두 산의 도랑물이다. 谿자는 오늘날 “계”로 쓴다. ·지 모두 연못이다. 땅에서 나는 것을 널리“모”라 한다. 보다 상세한 설명은 진립의 『공양·선공12년』의 “아무 것도 자랄 수 없는 땅을 하사했다(錫之不毛之地)”의 『의소』에 자세하다
··薀藻之菜: 연못 같은 낮은 물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흰쑥으로 국화과의 다년생 초본식물이다. 쌓다. 물 속에 사는 식물이다. 그러므로 온조薀藻 이 수초가 쌓인 것을 말한다. 이 세 종류의 식물은 아랫글의 황·오·행료行潦 등 세 가지의 물과 대구를 이룬다. 홍량길의『좌전고』에선 “온 역시 수초의 이름”이라 설명하지만 오류인 듯하다. 앞에서 “·谿··沚之毛”라고 말하고, 여기서는 “··薀藻之菜”라고 말하는데, 는 곧 채와 같은 뜻이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지만 위에서는 식물이 나는 산지의 비루함을, 여기서는 생산물의 질낮음을 의미하고 있어 채택한 의미가 다르다
···釜之器: 음은 거. 모두 대나무로 만들고, 네모난 것은 광이라하고, 둥그런 것을 거라 한다. 본래 음식을 담는 도구이지만 여기서는 번과 조 등의 풀을 담는 용기의 의미로 쓰였다. 의 음은 기이고, 의 음은 보이다. 모두 익히고 삶는 용기로서 발이 달린 것을 기, 발이 없는 것을 부라 한다
··行潦之水: 음은 황이고, 의 음은 오이다. 모두 물이 모여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큰 것을 황, 적은 것을 오라 한다. 행료行潦에서 행은 길/도로의 뜻인데, 행료에서의 행자는 “길의 이슬行露(행로)”와 “길가의 갈대行葦(행위)”의 행과 뜻이 같다. 의 음은 로인데, 빗물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행료란 큰 비가 와서 길에 고여 있는 물을 말한다. 『시·동작洞酌』의 모씨전에선 행료를 흐르는 빗물流潦 풀이했는데 옳지 않은 듯하다
可薦於鬼神, 可羞於王公: 는 모두 진헌의 뜻이고, 천수는 연이어 쓸 수도 있다. 『주례·태재太宰의 “제사에 쓰이는 계구와 제물을 담당한다(掌祭祀之戒具與其薦羞)”와 『주례·포인庖人』의 “진상할 물품(與其薦羞之物)”등이 이같은 예다
而況君子結二國之信, 行之以禮, 又焉用質? 采繁」·「采蘋: 두 시는 모두『시·소남』에 있다
▣『行葦」·「泂酌: 『시경·대아』에 있는 시들이다. 『석문』: “의 음은 동이다.”
昭忠信也: 는 밝히다의 뜻. 명나라 하량준何良俊 『사우제총설四友齋叢說』권2: “『좌전』에서 인용하고 있는 『시』 중 그 본 뜻에 합치되는 것도 있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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