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716년) 1.7.1. 등滕나라

본문

은공 7년 봄, 등후가 타계했다. 『춘추』에 그의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은 동맹을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 범례에 따르면 제후가 동맹할 때 이름을 써서 맹세한다. 그러므로 제후가 서거하면 이름을 써서 부고하고 망자와 그 후계를 밝혀 이전의 우호를 계승하여 백성을 안정시킨다. 이것이 예의 큰 줄기이다.


1.7.1. 七年春, 滕侯. 不書名, 未同盟也. 凡諸侯同盟, 於是稱名, 故薨則赴以名, 告終·嗣也(1), 以繼好息民, 謂之禮經.


(1) 본래 “칭”자가 탈락되어 있지만, 『석경石經』·송판본·악본岳本·족리본足利本·금택문고본 등에 근거해서 보충했다.


해설 

滕侯: 은 국명, 주 문왕의 아들 착숙수錯叔繡 무왕이 봉건하여 등 땅에 거하게 했다. 현 산동성 등현滕縣 서남쪽 14리 떨어진 곳에 옛 등성이 있으니 곧 여기가 등나라이다. 숙수로부터 등 선공까지 17세대라는 사실이 『춘추』에 보인다. 등나라 은공은 노나라 애공 11년에 죽었고, 등 은공 이후 6세대의 제후가 있었으며 맹가(맹자)가 등나라 문공을 접견했다. 『전국책·송책』에선 송 강왕이 등나라를 멸망시켰다고 한다. 이에 반해 공영달의 『소』는 『세족보』를 인용하여 제나라가 멸망시켰다고 말한다. 금정위의 『전국책보석』에선 송나라가 멸망시킨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현재 전해지는 이기로는 등후□기滕侯 와 등호기滕虎 가 있다. (이기에 쓰인) “등”자는 모두 주 부수로 하여 “□”으로 쓴다. 『위삼체석경좌전잔석』에서는 등으로 쓴다. 1980년 등현의 장리서촌에서 청동악기 한 습이 발견되었다


춘추좌전 지도 - 등滕나라


七年春, 滕侯. 不書名, 未同盟也. 凡諸侯同盟, 於是稱名, 故薨則赴以名: 결맹할 때 이름을 써서 신에게 보고한다. 그러므로 그가 죽었을 때도 역시 이름을 써서 동맹한 제후에게 부고를 보낸다. 『춘추·성공13년』에 등공이 노공 그리고 여러 제후들과 함께 진나라를 공격했는데, 이때 등나라가 노나라의 동맹국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성공 16년에 등나라 군주가 죽었을 때 이름을 쓰지 않았다.

告終·嗣也: 본래 “칭”자가 탈락되어 있지만, 『석경』·송본·악본岳本·족리본足利本·금택문고본 등에 근거해서 보충했다고종告終 망자의 죽음을 알리다. 칭사 그 뒤를 이은 자가 누구인지를 알리는 것이다.

以繼好息民: 기존 동맹의 우호 관계를 계승하고 각 국의 승인을 얻어 백성들을 안심시킨다.

謂之禮經: 예경禮經 예의 대법大法 같은 말이다. 『좌전·은공11년』의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행동하고, 덕으로 법을 삼는 것이 예의 경이다(恕而行之, 德之則也, 禮之經也), 『좌전·양공21년』의 “회합과 조견은 예의 경이다(會朝, 禮之經也), 그리고 『악기』의 “진심을 드러내고 거짓을 제거하는 것이 예의 경이다(著誠去僞, 禮之經也)” 이들 예경은 “예의 대법禮之經也의 뜻임을 보여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