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노 혜공의 개장改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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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10월 경신일(14일), 혜공의 장례를 다시 치렀다. 은공이 상주로서 곡을 하지 않았으므로 『춘추』에 쓰지 않았다. 혜공이 서거했을 때 송나라와 전쟁 중이었고, 태자가 어려 장례에 미흡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개장한 것이다.
1.1.9. 冬十月庚申, 改葬惠公. 公弗臨, 故不書. 惠公之薨也, 有宋師, 太子少, 葬故有闕, 是以改葬.
해설
▣冬十月庚申: 경신일은 14일이다.
▣改葬惠公. 公弗臨, 故不書: 임臨은 초상집에 가서 곡을 하다. 상주가 되어 곡을 한다는 뜻이다. 은공은 섭정이기 때문에 감히 상주로서 자처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불임한 것이다.
▣惠公之薨也, 有宋師, 太子少: “有宋師”에 대해 복건은 앞에서 언급한 송군을 황에서 물리쳤던 싸움이라고 한다. 공영달의
『소』는 송나라가 황의 패배를 보복하기 위해 쳐들어온 싸움이라고 말한다. 복건의 주장이 옳은 것 같다. 태자는 환공이다. 이로 보건대 혜공의 생전에 이미 환공을 태자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葬故有闕: 궐闕은 결실 및 부족한
점이 있다는 말이다.
▣是以改葬: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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