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4. 대戴나라
본문
채나라, 위나라 그리고 성郕나라의 군주들이 왕명을 받고도 회합에 참석하지 않았다. 가을 7월 경인일(5일), (송나라 정벌에서 돌아온) 정나라 군대는 교외로 들어선 후에도 여전히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송나라와 위나라가 정나라로 들어갔고 채나라는 두 나라를 따라 대戴나라(하남성 민권현民權縣 동쪽)를 공격했다. 8월 임술일(8일), 정 장공이 대나라의 국도를 포위했다. 계해일(9일), 정나라가 싸워 이기고, 세 나라의 병사들을 모두 사로잡았다. 송나라와 위나라가 이미 정나라로 들어갔는데도 (정나라를 치지 않고) 대나라를 공격하는데 채나라를 소환하자 채나라가 분노했고 불화가 생겨 패한 것이다.
1.10.4. 蔡人·衛人·郕人不會王命. 秋七月庚寅, 鄭師入郊, 猶在郊. 宋人·衛人入鄭, 蔡人從之伐戴. 八月壬戌, 鄭伯圍戴. 癸亥, 克之,取三師焉(1). 宋·衛旣入鄭, 而以伐戴召蔡人,蔡人怒,故不和而敗.
(1) 『금택문고』본엔 “取”아래에 “其”자가 있다.
해설
▣蔡人·衛人·郕人不會王命: 작년 정 장공이 왕명으로 송나라를 공격할 것을 알렸을 때 각 제후국에 알렸다. 그러나 이 세 나라는 군사를 보내 함께 공격하지 않았다.
▣秋七月庚寅: 경인일은 5일이다.
▣鄭師入郊, 猶在郊: 정나라 군사는 고와 방에서 출발하어 본국의 먼 교외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며 더 이상 진군하지 않았다.
▣宋人·衛人入鄭: 송과 위는 정나라 군사가 그대로 교외에 머물고 있는 틈을 타 정나라로 쳐들어왔다.
▣蔡人從之伐戴: 아래의 『좌전』내용을 보면, 이
여섯 글자는 한 구로 읽어야 한다. 대戴의 음은 재再이다. 『공양』과『곡량』에선 “재載”로 쓴다. 『석문』과 『정의』에서도 역시“재載”로 쓴다. 『설문』에선 “
▣八月壬戌: 임술일은 8일이다.
▣鄭伯圍戴. 癸亥: 계해일은 9일이다.
▣克之,取三師焉: 『금택문고』본엔 “取”아래에 “其”자가 있다. 삼국이 이미 대나라에 들어와 있었고, 정나라 장공이 포위하여 이겼기 때문에 삼국의 군대를 취했다고 쓴 것이다.
▣宋·衛旣入鄭, 而以伐戴召蔡人,蔡人怒,故不和而敗: 이 문장은 정나라 군대가 대나라를 포위한 일을 보충 설명하고 있다. 포위한 지 이틀째에 싸움에서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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