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3. 허나라를 멸하다 - 禮, 經國家, 定社稷

본문

가을 7, 은공이 제 희공 및 정 장공과 회합하여 허나라를 정벌했다. (초하루) 경진일, 허나라 도성으로 접근했다. 영고숙이 장공의 깃발 모호旗蝥를 받아 앞장서 성벽을 올랐는데 공손알이 밑에서 그를 쏴 고꾸라뜨렸다. 하숙영瑕叔盈이 다시 모호를 들고 성벽을 올라 널리 깃발을 휘두르며 외쳤다. “군주께서 성 위에 오르셨도다!” 정나라 군사들이 모두 성에 올랐다. 임오일(3), 마침내 허나라 도성에 입성했다. 허 장공은 위나라로 도망쳤다.

제 희공이 허나라 땅을 은공에게 양보했다. 은공이 말하였다. “군주께서 허나라가 왕실을 공경하지 않는다 말씀하시어 군주를 따라 토벌한 것입니다. 허나라는 이미 그 죄를 받았으니 비록 군주의 명이나 과인은 감히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나라에게 주었다.

정 장공이 허나라의 대부 백리百里에게 허숙許叔을 시종하여 허나라의 동편에 거처하게 하고 다음과 같이 당부하였다. “하늘이 허나라에 재앙을 내리신 것이네. 허나라의 선조 역시 실로 군주를 못마땅히 여겨 과인의 손을 빌린 것이네. 허나 과인은 한 두 명의 부형과도 서로 편안히 지내지 못하는 처지인데 감히 허나라를 차지하여 내 공적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 과인에게 아우가 있지만 서로 화목하지 못해 그로 하여금 사방에 기식하게 만들었는데 하물며 허나라를 오래 소유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허숙을 받들어 이 나라 백성들을 위로하게. 내 장차 획을 보내 그대를 돕게 하겠네. 과인이 죽고 하늘이 혹 예를 생각하여 허나라에 내렸던 재앙을 후회하고 차라리 허군으로 다시 나라의 사직을 받들게 하지 않겠는가? 그저 우리 정나라가 허나라에 부탁할 일이 생긴다면, 마치 오랫동안 통혼했던 관계처럼 화를 누그러뜨리고 서로 잘 지내기를 바랄 뿐이네. 다른 나라로 하여금 이곳을 핍박하여 우리 정나라와 이곳을 다투지 않도록 하게. 내 후손들이 자신의 위급을 구제하느라 겨를이 없게 되면 하물며 허나라의 선조에게 정성껏 제사를 드릴 수 있겠는가? 과인이 이 곳에 그대를 둔 까닭은 꼭 허나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잠시라도 우리 변경을 견고하게 하기 위함이네.

장공은 공손획을 허나라 서편에 주둔하게 하고 그에게 당부했다. “너의 모든 재화를 허나라 땅에 두지 말라! 과인이 죽거든 즉시 허나라를 떠나라! 우리 선군들이 이 땅에 새 나라를 건설했을 때 왕실은 이미 쇠퇴한 뒤였다. 주나라의 후손들은 날로 선조의 공업을 잃어가고 있다. 대저 허나라는 대악大岳의 후예이다. 하늘이 이미 주나라의 덕을 버렸는데 우리가 어찌 허나라와 다툴 수 있겠는가?

군자가 정 장공에 대해 평하였다. “이번 일에 를 갖췄다. 예란 국가를 경영하고 사직을 안정시키며 백성 사이에 질서를 세우고 후대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허나라가 법()을 어겼기에 정벌했고 복종하자 용서했다. 자신의 덕을 헤아려 처신했으며 역량을 따져서 행동했다. 때를 살펴 행동하여 후대에 폐를 끼치지 않았으니, 가히 예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11.3. 秋七月公會齊侯·鄭伯. 庚辰傅于. 潁考叔鄭伯之旗蝥弧以先登子都自下射之. 瑕叔盈又以蝥弧登周麾而呼曰: 君登矣!師畢登. 壬午遂入. 許莊公

齊侯讓公. 公曰: 君謂不共故從君討之. 旣伏其罪矣, 雖君有命, 寡人弗敢與聞.乃與.

鄭伯使大夫百里許叔以居東偏: 天禍許國鬼神實不逞于許君而假手于我寡人寡人唯是一二父兄不能共億其敢以自爲功乎? 寡人有弟不能和協而使餬其口於四方其況能久有? 吾子其奉許叔以撫柔此民也吾將使也佐吾子. 若寡人得沒于地天其以禮悔禍于無寧茲許公復奉其社稷唯我鄭國之有請謁焉如舊昏媾其能降以相從也. 無滋他族實偪處此以與我鄭國爭此土也. 吾子孫其覆亡之不暇而況能禋祀? 寡人之使吾子處此不唯許國之爲亦聊以固吾圉也.乃使公孫獲西偏: 凡而器用財賄無寘於. 我死乃亟去之! 吾先君新邑於此王室而旣卑矣之子孫日失其序. 大岳之胤也. 天而旣厭德矣吾其能與爭乎?

君子謂鄭莊公於是乎有禮. , 經國家定社稷序民人利後嗣者也. , 而伐之服而舍之度德而處之量力而行之. 相時而動無累後人可謂知禮矣.


해설

는 강성姜姓의 나라로서 주 무왕이 문숙文叔을 허나라에 봉건했다. 옛성은 현 하남성 허창시許昌市 동쪽으로 36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노 성공 15년에 허나라 영공靈公이 섭으로 천도했는데 즉 현재의 하남성 섭현葉縣 남서쪽으로 약 30리 떨어진 곳이다. 소공 9년 허 도공悼公은 다시 이로 천도했는데 이곳은 성보城父로서 안휘성 박현亳縣의 동남쪽 70리 떨어진 성보집城父集에 해당한다. 1962년 안휘성 숙현宿縣 허촌공사 노고성자蘆古城孜 허나라 제유諸兪의 기를 발견했다. 허나라 군주는 허촌에 매장되었는데 성보집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이다. 소공18년 석으로 천도했는데 이곳은 백우白羽로서 현 하남성 서협현西峽縣이다. 정공4년 허나라 군주 사 용성容城으로 천도했다. 용성고성은 노산현魯山縣 남동쪽 약 30리 떨어진 곳에 있다. 현재 전해지는 이기로는 허자종許子鐘·허자장궤許子妝簋 등이 있다. 이들 명문에서 “허”는 모두 “허”로 쓰고 있는데 『설문』과 부합한다. 시조 문숙文叔에서 장공莊公까지는 11대이고 처음으로 『춘추』에 보인다. 전국 초기 위나라에게 멸망당했다. 『한서·지리지』의 영천군 허에 대한 왕선겸의 『보주』에 그 내용이 자세하다.


춘추좌전 지도 - 허나라의 천도


秋七月公會齊侯·鄭伯. 庚辰: 경진일은 초하루이다.

傅于: 는 붙다. “傅于許란 대군이 허나라 성에 근접하여 공격하다. 『좌전·선공12년』의 “소나라가 군사가 근접하여 공격하다(傅于), 『좌전·양공6년』의 “성가퀴에 접근하다(傅于), 『좌전·양공9년』의 “제나라 군사를 곧 접근한다는 소식을 듣다(聞師將傅), 『좌전·양공25년』의 “초군에 접근하였다가(傅諸其軍)” 등에서의 “부”는 모두 이 뜻이다.

潁考叔鄭伯之旗蝥弧以先登: 모호蝥弧 정 장공의 깃발 이름이다. 제나라 군주의 깃발 이름이 영고피(靈姑)인 것과 같다. 『좌전·소공10년』에 보인다.

子都自下射之: 의 옛 음은 석이다.

: 성 아래로 떨어지다. 『좌전』의 뒷 내용을 보면 그가 떨어져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瑕叔盈又以蝥弧登: 하숙영瑕叔盈은 정나라 대부이다.

周麾而呼曰: 두루. 는 깃발을 흔들어 대군을 부르다.

君登矣!師畢登. 壬午遂入: 정 장공이 허나라 국도 안으로 직접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許莊公: 『춘추』는 허나라 군주가 위나라로 도망친 것을 기록하지 않았는데, 정공 4년에 오나라가 초나라의 수도 영으로 쳐들어갔을 때 역시 『춘추』에선 초 소왕이 도망친 것을 기록하지 않은 것과 같다.

齊侯讓公: 노나라는 본래 허 지역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좌전·은공8년』의 “정 장공이 태산 기슭에 보유한 식읍인 방을 허전과 바꾸고자 했다”라는 기사의 주석을 참고. 이것이 혹 제 희공이 허나라 땅을 노나라에게 양보한 이유인가?

公曰: 君謂不共: 음은 공이고, 뜻은 법이다. 불공은 불법不法 같다. 아래의 “無刑而伐之”에서의 무형無刑 같은 뜻이다. 유월의 『군경평의』에 내용이 자세하다.

故從君討之. 旣伏其罪矣, 雖君有命, 寡人弗敢與聞.: 음은 예이다. 노 은공은 허나라는 이미 죄에 대한 벌을 받았으니 과인은 정 장공이 말한 것을 따를 수 없다(弗敢與聞)라고 말했다. 그의 뜻은 허나라를 멸망시키지 않고 나라를 보존토록 해야하고 사유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乃與: 주석 없음.

鄭伯使大夫百里許叔以居東偏: 두예와 『세족보世族譜』에 따르면, 허숙은 허나라 장공의 동생으로서 이름은 정이고 시호는 환공桓公이다. 반면 요언거姚彦渠 『춘추회요』에선 그가 허나라 목공穆公이며 이름은 신신新臣이라 한다. 東偏은 허나라 국도의 동쪽이다.

: 天禍許國鬼神實不逞于許君: 불령은 불만스러워하다와 같다.

而假手于我寡人: 가수假手란 손을 빌리다. 즉 과인의 손을 빌어 허나라를 토벌하게 했다는 뜻이다. 가수假手는 옛 사람들의 성어로서 『국어·진어』1의 “반드시 무왕의 손을 빌리지 않더라도(無必假手于武王)”라는 문구가 있다. 『후한서·단경전颎傳』에서는 단경의 상소를 인용하며 “하늘이 진노하여 우리 손을 빌어 벌을 내렸다(上天震怒, 假手行誅)”는 문구가 있는데, 이 뜻을 따른 것이다. 허나라를 공격할 때 정나라의 힘이 컸기 때문에 장공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寡人唯是一二父兄不能共億: 왕념손은 공 거성으로 읽었다. 공억共億 양자가 서로 평안한(相安)과 같은 뜻으로서 왕인지의 『경의술문』에 자세하다.

其敢以自爲功乎: 는 어찌 용법이 같다.

寡人有弟不能和協而使餬其口於四方: 이는 공숙단을 가리켜 한 말이다. 『좌전·은공원년』을 참고하라.

호구餬口의 호는 호지餬紙·호창餬窗 호와 같고 비루한 음식이다. 『좌전·소공7년』의 정고보정正考父鼎 의 명문 “이 정에 된 죽과 묽은 죽을 끓여 내 입에 풀칠한다(饘於是, 鬻於是, 以餬余口)”로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다. 호구란 죽처럼 박한 음식으로 배를 채운다는 뜻이다. 餬口於四方於四方은 비로소 여기저기서 빌어먹다는 뜻이 있게 되었다. 『방언』: “호는 기식하다()의 뜻이다.” 『설문』: “호는 빌어먹다(寄食).” 이에 대해 왕균王筠은 『설문구독說文句讀』에서 “『좌전』의 뜻으로 풀이한 것일 뿐이다”라고 설명한다. 그렇지 않다면 정고보正考父의 명문으로도 해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장자·인간세』의 “바느질과 빨래로도 비루하게 먹고 살 수는 있다(挫鍼治, 足以餬口)”역시 해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其況能久有? 吾子其奉許叔以撫柔此民也: 오자吾子는 친근하면서도 상대를 높이는 대칭대사이다. 는 명령부사이다. /의 뜻이다. 무유撫柔는 한 단어로서 편안하게 어루만지다.

吾將使也佐吾子: 다음에 나오는 공손획公孫獲이고 정나라 대부이다. 획자 다음에 “”를 덧붙여서 정중한 어기를 나타낸다.

若寡人得沒于地: 천수를 누리고 죽다.

天其以禮悔禍于: 하늘이 혹 예에 근거하여 더 이상 허나라에 대한 재앙은 철회할 수 있다.

無寧茲許公復奉其社稷: 무녕無寧. 발어사로서 뜻이 없다. 부정사로 볼 순 없다. 使 뜻이다. 즉 허공으로 하여금 다시 허나라의 국정을 맡게 하다.

唯我鄭國之有請謁焉: . 이 문장엔 생략된 내용이 있다. 온전한 문구는 당연히 “唯我鄭國之有請謁而是聽”이 되어야 한다.

如舊昏媾: 마치 통혼 관계인 나라처럼 서로 친함의 뜻이다.

其能降以相從也: 는 어기부사로서 불긍정을 표시한다. 은 심기를 누그러뜨리다(降心).

無滋他族實偪處此: 같고, 使.

以與我鄭國爭此土也. 吾子孫其覆亡之不暇: 은 『시·생민生民』의 “새가 날개로 덮어주고(鳥覆翼之)”의 “복”의 뜻으로서, 인신되어 구제하다의 뜻이다. 복무覆亡는 나라를 멸망할 위기에서 구제하다. 覆亡之不暇 뜻은 정나라 스스로도 위기에서 구제하기에 바빠 누구를 구할 겨를이 없다. 이 문구는 앞글을 이어 즉 만약 다른 나라로 하여금 이곳에 가까이 오게 하고 거주하게 되어 정나라와 서로 다투게 되면 정나라 입장에선 (스스로 방어하는 일에 급급해 허나라를) 구제하기에 매우 바쁜 상황임을 의미한다.

而況能禋祀: 의 음은 인이다. 공경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제사를 올리는 것을 인이라 한다. 만약 정나라가 스스로 구제하는데도 바쁘다면 허나라 땅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寡人之使吾子處此不唯許國之爲: 다만 허나라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亦聊以固吾圉也: 잠시(姑且). 음은 어이다. 변경지역이다.

乃使公孫獲西偏: 凡而器用財賄無寘於: ()와 같다. 재회財賄 재화이다. 기용재회器用財賄 당시의 상용어로서 『좌전』에 수차례 보인다. 는 금지를 나타낸다.

我死乃亟去之: 급하게.

吾先君新邑於此: “이 곳에 새 나라를 세우고新邑於此의 지역은 신정新鄭 일대이다. 정나라가 서주시대 처음 봉건하였을 때의 영역은 섬서성 화현華縣 동북쪽 20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주나라의 동천 후 정나라 환공이 괵나라와나라를 공격하여 그 토지를 병합하여 현재의 이곳에 나라를 세웠다.

王室而旣卑矣之子孫日失其序: 처음의 공업緖業 가리킨다. 즉 이어받은 공업이다. 『시·주송·열문烈文』의 “유지를 계승발전 시키기를(繼序其皇之), 『민여소자閔予小子』의 “끼치신 일 잊지 않고 계승하겠나이다(繼序思不忘)”등에서의 “서”가 바로 이 뜻이다. 왕인지의 『경의술문』에 그 설명이 자세하다. 정나라 역시 주나라의 후손이다. 이는 주나라 희성姬姓 역량이 점차 쇠퇴해지고 있음을 말한다.

大岳之胤也: 는 태와 같다. 대악은 곧 사악으로서 『국어·주어하周語下』의 “공공의 종손인 사악이 우 보좌하니, (그에게 姜姓 내렸다.) 신나라와 여나라는 비록 쇠퇴했지만, 제나라와 허나라는 여전히 건재하다(之從孫四岳左之, ·雖衰, ·猶在)”와 『국어·주어중』의 “제··· 태강太姜으로부터 유래했다”는 내용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 구설에선 허나라는 요 임금 당시 사악이었던 백이의 후손이라고 하나 신뢰할 수는 없다. 고힐강의 『사료잡식史料雜識·사악여오악四岳與五岳』에 그 내용이 자세하다. 의 음은 인으로서 후손이란 의미이다.

天而旣厭德矣: 싫어하여 버리다.

吾其能與爭乎: 용법으로 쓰였다.

君子謂鄭莊公於是乎有禮. , 經國家定社稷序民人, 利後嗣者也: 나라를 경영하고 다스리다. 안정시킴. “서민인序民人은 백성들에게 일정한 질서와 서열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 無刑而伐之: 무형無刑은 불법不法과 같고, 법도를 어기다.

服而舍之: (버리다)와 같다.

度德而處之: 옛 소리는 탁이고 헤아리다. 이 일을 처리하다.

量力而行之. 相時而動: 거성(살펴보다)이다. 여기서는 “과인이 죽거든 급히 떠나라”는 말을 가리킨다.

無累後人: 용법은 불 같다. 거성이며 두려워하다/근심하다란 의미이다. 후손에게 우환을 남기지 말라는 뜻이다.

可謂知禮矣: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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