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와옥瓦屋 결맹

본문

제 희공이 마침내 송나라 및 위나라를 정나라와 화해시켰다. 가을, (하남성 온현溫縣 서남쪽)에서 회합하고 와옥瓦屋(온현)에서 결맹하여 동문의 싸움( 1.4.3.)에 대한 앙금을 풀었으니 예에 부합하였다.

1.8.5. 人卒平·. , 會于, 盟于瓦屋, 以釋東門之役, 禮也.


해설

와옥瓦屋, 두예: “주나라 땅이다.『좌전』의 문구에 근거한 것인데 현재의 온현溫縣 서북쪽이다. 혹자는 현 하남성 유천洧川 폐치의 남쪽 와옥리瓦屋里 해당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보면 당시 정나라 땅에 속한다. 이는 오류이다. 또 다른 이는 현재의 청풍현淸豊縣 동쪽 35리 떨어진 곳에 있는 와옥두집瓦室頭集이라고 주장하지만 매우 잘못된 주장이다.


춘추좌전 지도 - 와옥瓦屋


人卒平·: 平宋·衛于鄭”은 송과 위로 하여금 정나라와 강화를 맺게 했다는 뜻이다. 『춘추』의 제나라 군주와 결맹했다는 말로써 보면 제인은 제 희공을 가리키는 것 같다.

, 會于: 은 현 하남성 온현溫縣의 서남쪽 30리 떨어진 곳이다. 會于”은 『춘추』에선 기록하지 않았지만 “와옥에서 결맹했다”고 기록함으로써 그 내용을 포괄한다고 말할 수 있다.

盟于瓦屋: 와옥은 『춘추』의 주석을 참고하라.

以釋東門之役, 禮也 동문의 싸움은 은공 4년의 일이다은 과거사를 잊고 재론하지 않다. 만약 송나라와 위나라가 정나라의 동문을 포위했던 일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면 정나라의 보복을 두려워했을 것이므로 강화를 거론하기 어렵다. 제 희공은 먼저 정 장공과 몸소 만나 이 일을 논의했고, 이에 충분히 정나라를 대표하여 과거의 의심을 모두 버렸다는 표시했다. 그러므로 이 회맹이 비록 송나라와 위나라가 정나라에 대해 우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었지만 정 장공은 이 맹약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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