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 공손알公孫閼과 영고숙潁考叔
본문
여름, 은공이 정 장공과 래郲(하남성 정주시 북쪽)에서 회합하고 허나라 정벌을 논의했다.
정 장공이 허나라를 토벌하려고 할 때였다. 5월 갑진일(24일), 정나라의 대궁에서 무기를 분출했다. 공손알公孫閼과 영고숙潁考叔이 병거를 두고 다퉜는데 영고숙이 끌채를 가지고 달아났고, 자도子都(공손알)는 창을 빼어 들고 그 뒤를 쫓았다. 대로에 이를 때까지 따라잡지 못하자 자도는 분노했다.
1.11.2. 夏,公會鄭伯于郲(1),謀伐許也. 鄭伯將伐許. 五月甲辰,授兵于大宮. 公孫閼與潁考叔爭車,潁考叔挾輈以走,子都拔棘以逐之. 及大逵,弗及,子都怒.
(1) “래郲”는 『춘추』에선 “시래時來”로 썼다. 해당 주석에 상세한 설명이 있다.
해설
▣夏,公會鄭伯于郲, 謀伐許也.: “래郲”는 『춘추』에선 “시래時來”로 썼다. 해당 주석에 상세한 설명이 있다. 시래는 현 하남성 정주시 북쪽 30떨어진 곳에 있다.
▣鄭伯將伐許. 五月甲辰; 갑진일은 24일이다.
▣授兵于大宮: 병兵은 무기이다. 대大는 태太와 같다. 태궁이란 정나라의 조묘이다. 『좌전·문공2년』의 “정나라의 시조 여왕(鄭祖厲王)”이란 문구가 있다. 즉 정나라의 대궁은 주 여왕厲王의 사당이다. 『좌전·선공12년』의 주석을 함께 참고할 것.
고대에 병기는 국가가 보관하고 있다가 병사가 발발하면 나눠주고 사안이 완료되면 다시 회수한다. 『주례·하관·사병司兵』의 “5가지 병기와 5가지 방패를 관장한다. 각종 병기를 구분하고 그 등급을 구분하여 군사軍事에 대비한다. 병기를 지급할 때는 사마의 규정에 따라 나눠준다. 병기들을 회수할 때도 규정에 따른다. 병기를 사용할 때도 역시 동일하다.” 손이양의『주례정의』에 내용이 상세하다.
▣公孫閼與潁考叔爭車: 알閼의 음은 알遏이다. 공손알은 정나라 대부이다.
▣潁考叔挾輈以走: 주輈의 음은 주舟이다. 수레의 멍에를 메는 부분(수레채)이다. 그 후단과 수레의 축은 서로 이어져 있고, 화물을 싣는 수레에 사용될 때는 두 개 곧은 나무가 좌우에서 소나 말 등을 지지하는데 이를 “원轅”이라고 부른다. 병거에 사용될 때는 한 개의 굽은 나무를 사용하는데 가운데에 있고 이를 “주輈”라고 부른다.
태묘 안에서 병거와 병기를 나눠줄 때, 병거는 아직 멍에를 메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므로 영고숙은 이 병거를 뺏기 위해 끌채(輈)를 잡고 달려간 것이다. 주走는 고대에 내달리다의 뜻이다. 천천히 가는 것을 보步, 급히 걸어가는 것을 추趨, 이보다 더 빨리 가는 것을 주走라 한다.
▣子都拔棘以逐之: 극棘은 곧 극戟이다. 극戟은 과戈와 모矛 두 종류의 병기를 합쳐 놓은 모양으로 자루의 앞은 안전하게 곧은 칼날로 적을 찌를 수 있고, 옆엔 또 가로로 된 칼날이 있어서 적을 휘어 감을 수가 있기 때문에 찌르기와 갈고리 두 가지 기능을 할 수 있다. 『주례·고공기』에 그 형태/형식이 자세하다. 근래 출토된 극은 다수 전국시대에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주례·고공기』에서 말한 것과 부합한다.
▣及大逵: 한번에 아홉 대(九具)의 거마車馬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길을 규逵라 한다. 이런 대로는 이미 사통팔달이기 때문에 『이아』에선 “팔달을 넘어 구규九達의 대로를 규라 한다”고 설명한다. 정나라에는 이런 큰 대로가 있었다. 『좌전·환공14년』에서도 대로大逵라 일렀고, 『좌전·장공28년』에서는 규시逵市라 불렀으며, 『좌전·선공12년』에서는 규로逵路라고 부르고 있어 비록 그 명칭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모두 규逵라는 명칭이 들어 있다. 노나라 역시 이런 대로가 있었는데, 『좌전·장공12년』에 언급된 규천逵泉이 이것이다. 대체로 각 나라의 국도엔 반드시 그 나라에서 가장 넓고 사방으로 열린 도로가 있는데 이를 모두 규라고 부를 수 있다. 공영달의 『소』에선 정나라만이 그런 대로를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이는 옳지 않은 듯하다.
▣弗及,子都怒: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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