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정장공, 송나라를 토벌하다

본문

송 상공이 왕을 조견하지 않자 정 장공은 주 환왕의 좌경사로서 왕명을 받들어 송나라를 토벌했다. 송나라는 정나라가 외성에 침입했을 때, 사신의 거짓말로 은공을 분노케 한 적이 있어 아예 통보를 하지 않았다. ( 1.5.8.) 은공은 격분했고 송과의 사신 교류를 끊었다.


1.9.3.  宋公不王, 鄭伯爲王左卿士, 以王命討之. . 以入之役怨公, 不告命. 公怒, 使.


해설

宋公不王: 제후가 천자를 알현하는 것을 “왕”이라 한다. “宋公不王은 송나라 군주가 천자를 조견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과 같다. 두예는 왕실에 쓰일 물품을 제 때에 공급하지 않음(不供王職)이라고 해석했는데 옳지 않다. 왕인지의 『경의술문』에 상세한 설명이 있다. 그러나 춘추시대에 왕을 조견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노나라의 사례로 보자. 12명의 군주 약 240여 년에 걸쳐서 『춘추』에 기록된 것을 근거로 하면, 희공이 진 문공의 패업으로 인해 두 번 왕소王所(경사에 가서 직접 조견한 것이 아니라 회맹 등 천자가 행차하여 머문 곳에서 조견. 옮긴이)에서 조견을 했고, 성공 때 진나라 토벌 때문에 경사에 가서 한 번 조견했으며, 은공과 환공 29년 동안 주나라 왕은 사신을 보낸 것이 끊이지 않았지만 두 군주는 한번도 조견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정 장공이 송 상공의 조견하지 않음을 이유로 송나라를 토벌한 것은 마치 제 환공이 초나라를 토벌하면서 주나라 왕실의 제사에 쓰일 물품을 보내오지 않은 것을 이유로 삼은 것과 같아 그저 토벌의 명분을 찾기 위함일 뿐이다.

鄭伯爲王左卿士, 以王命討之. . 以入之役怨公, 不告命: 송나라가 정나라의 외성을 공격했던 사건은 은공 5년에 있었던 일이다. 은공은 7년에 송나라를 위해 주나라를 공격하여 송나라를 기쁘게 하려했지만 오히려 송나라는 마음을 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공격당하는데도 노나라에 사신을 보내 알리지 않았다.

公怒, 使: 宋使”는 내력을 알아본 연후에 말한 것이다. 즉 차후로 은공과 송 상공은 다시 서로 사신을 왕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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