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거莒나라와 향向나라

 

본문

나라(산동성 거현莒縣) 군주가 향나라(산동성 거현의 남쪽 70)에서 부인을 얻었는데, 향강은 거나라의 상황을 불안하게 여겨 돌아갔다. 여름, 거나라가 향나라로 쳐들어가 강씨를 데리고 돌아갔다.


1.2.2. 莒子娶于, 向姜不安而歸. , 人入, 姜氏.


해설


夏五月, 人入: 국명으로 『국어·정어』의 “조성曹姓으로는 추나라와 거나라가 있다”는 기사를 근거로 거나라를 조성으로 보고 있는데 본문의 거와는 별개의 나라로 여겨진다. 본문의 거나라는 춘추시대 이후 50여년 만에 초나라에 멸망된 나라이다. 『사기·초세가』에 그 내용이 전한다. 현재 전해지는 이기로 중자화반中子化盤이 있는데 초의 간왕簡王 거를 공격했다는 기사가 있다. 곽말약郭末若 『양주금문사대계고석兩周金文辭大系考釋』을 참조하라. 『좌전·문공8년』과 『세본世本』에 근거하면 기성己姓이고 옛 도읍은 개근介根으로 현 산동성 교현膠縣 서남쪽이고; 후에 거로 천도하였는데 현 산동성 거현莒縣이다. 「노어하」의 “진나라는 만이를 신뢰했다”는 기사를 따르면 당시 사람들은 만이와 동일시했다




은 국명으로 강성姜姓이다. 『태평환우기』에 보면 거현莒縣의 남쪽 70리에 향성이 있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곳이다. 두예: “초국譙國 용항현龍亢縣 동남쪽에 향성이 있다.” 현재의 안휘성 회원현懷遠縣 서쪽 40리 떨어진 곳이다. 하지만 거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옳지 않다. 회원의 향은 양공 14년의 “오나라와 회합한()” 향에 해당한다. 상세한 것은 강영江永 『춘추지리고실春秋地理考實』과 고염무顧炎武의 『일지록日知錄』권31, 그리고 황여성의 『집석』을 참조하라. 고동고의 『대사표·춘추입국멸국론』: “거나라가 향나라로 쳐들어 갔고, 선공 4년에 거나라를 공격하여 향읍을 탈취했다고 말한다. 향은 이미 거나라의 읍이 되었던 것이다. 은공 2년의 향은 거나라가 멸망시킨 것이 확실하다.” 

莒子娶于, 向姜不安而歸. , 人入, 姜氏: 은 군사를 일으켜 국도까지 깊이 침입한 경우를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쳐들어가 그 땅까지 탈취한 경우와 쳐들어갔지만 땅을 빼앗지는 않은 경우이다. 땅을 빼앗았다는 것은 과 같은데, 예컨대 『민공2년』의 “적인이 위나라를 침입했다()”와 『애공8년』의 “송공이 조나라로 쳐들어갔다(宋公)”가 바로 이 사례이다. 영토는 탈취하지 않은 경우는 예컨대 『은공10년』의 “송나라와 위나라가 정나라로 쳐들어갔다(·人入), 『환공2년』의 “기나라에 침입했다()”등이 그 예다. 본문의 “入向”은 땅의 탈위 여부를 알 수 없다. 『좌전』의 기록, 군사를 동원하여 부인을 탈취하고 도읍으로 쳐들어갔다는 것만 보면 땅을 빼앗은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공양』과 『곡양』역시 얻었지만 거처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희공 26년 희공이 거나라의 자비공, 녕자자와 향에서 회합하고 결맹했고, 선공 4년 노나라가 거나라를 쳐서 향을 탈취했다, 양공 20년 중손속이 거나라외 회합하고 향에서 결맹했다는 기사를 보면 향은 모두 거나라 땅이다. 즉 아마 나라를 멸망시키고 땅을 취한 것 같다. 모기령의 『춘추전』에 근거한 설명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