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2. 우보羽父
본문
여름 5월, 우보가 은공에 앞서 제 희공, 정 장공과 회합하고 송나라를 정벌했다.
1.10.2. 夏五月, 羽父先會齊侯·鄭伯伐宋.
해설
▣夏五月, 羽父先會齊侯·鄭伯伐宋: 선회先會란 은공에 먼저 가서 군사를 합류(會師)한 것이다. 두예는 등의 결맹에서 본래 약속한 날이 아니라고 설명했는데 옳지 않은 것 같다. ◉ 노나라 희공 이전에는 타국의 군주를 모인某人으로 불렀고, 희공 이후에는 진秦나라와 초楚나라 두 나라의 군주만 진인秦人·초인楚人으로 호칭했으며, 선공 5년 이후로는 진나라와 초나라의 군주 역시 인人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는 시대에 따라 호칭이 다른 것으로서 소위 대언미의와는 무관하다. (언급된 노나라 군주들의 재위 연대는 다음과 같다. 희공 원년은 기원전 659년으로서 진나라 목공穆公 1년, 초나라 성왕成王 13년에 해당한다. 선공 5년은 기원전 604년이고 당시 진나라는 공공共公 5년, 초나라는 장왕莊王 10년에 해당한다. 진 목공은 백리해를 등용하여 내정을 정비하여 진나라 도약의 기틀을 다진 군주였고, 진晉 문공이 귀국하여 즉위할 때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초 장왕은 중원의 진晉나라와 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소위 춘추오패 중의 하나이다. 호칭이 바뀐 것은 나름대로 그 역사적 배경이 있다. 즉 희공 이전에는 기존의 중원 제국 외에 진과 초 등 이른바 문화적 열등국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 혹은 위협을 느끼지 않았을 때이고, 희공 시기 비로소 이들 두 나라가 매우 강력하게 중원의 나라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과 중원제국을 구분하기 위해 두 나라에 대해서만 ‘人’을 붙여 비하한 것이며, 선공 이후로는 초 장왕이 실제로 패권을 장악하며 제후들의 회합을 주관할 정도였기 때문에 비하적인 ‘人’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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