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부추公子負芻 (춘추좌전.8.13.5.)



조나라는 공자부추公子負芻에게 도성을 수비하게 하고, 공자흔시公子欣時에게 조 선공의 상구를 모셔오게 했다

가을, 부추가 태자를 살해하고 스스로 즉위했다. 제후들은 이에 그를 토벌할 것을 청했지만 진나라는 진 정벌로 인한 피로 때문에 내년까지 기다리자고 청했다

겨울, 조 선공의 장례를 치렀다. 장례를 마친 후 자장子臧(흔시) 망명하려 했는데 국인들은 모두 그를 추종했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성공(부추)이 자신의 잘못을 자장에게 고하고, 또 떠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자장은 돌아왔고 자신의 읍을 성공에게 돌려주었다.


원문

(8.13.5.) 人使公子負芻使公子欣時曹伯之喪. 負芻殺其大子而自立也. 諸侯乃請討之. 人以其役之勞請俟他年. 曹宣公. 旣葬子臧將亡國人皆將從之. 成公乃懼告罪且請焉. 乃反, 而致其邑.


주석

人使公子負芻使公子欣時曹伯之喪: 부추負芻 흔시欣時 모두 조 선공의 서자들이다. 欣時”를 『공양전·성공16년』과 『좌전·소공20년』에선 모두 “희시喜時”라고 쓴다. 『신서·절사편』은 이 사건을 기재하면서 문장은 『좌전』의 것을 채용하고 이름은 『공양』을 따르고 있다.

負芻殺其大子而自立也: 선공의 태자를 살해했다.

諸侯乃請討之. 人以其役之勞: 기역은 진나라를 정벌했던 일이다.

請俟他年. 曹宣公. 旣葬子臧將亡: 자장은 흔시의 자이다.

國人皆將從之. 成公乃懼: 성공은 곧 부추이다.

告罪且請焉: 자장을 억류하고 떠나지 못하게 했다.

乃反, 而致其邑: 자장이 나라로 돌아와서 성공에게 채읍을 주었다는 말. 성공 15년과 16년의 『좌전』에 이에 이어진 사건을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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