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씨甲氏, 류우留吁, 탁진鐸辰 (춘추좌전.7.16.1.)

선공 16년 봄, 의 사회가 군사를 거느리고 적적의 갑씨甲氏, 류우留吁, 탁진鐸辰을 멸망시켰다

3, 의 포로를 정왕에게 바쳤다. 진 경공이 왕께 사회의 포상을 요청했다. 술신일(27), 왕이 사회에게 불과 면관을 하사하며 중군의 장수로 임명하고, 또 태부大傅로 삼았다. 이때 진나라의 도적들이 진나라로 도망쳤다. 양설직羊舌職이 말한다. “‘우 임금이 선인을 등용하자 불한당들이 멀리 도망쳤다.’고 들었는데 바로 이번 일을 두고 한 말이다! 『시』(『소아·소민』)에 ‘전전긍긍하여 깊은 못 가에 서 있듯 살얼음 위를 걷듯이 한다.’고 하니, 선한 이가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이 윗자리에 있으면 나라에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이 없어진다. 속담에 ‘요행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나라의 불행이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나라에 선인이 없는 것을 가리킨 말이다.


원문

十六年春晉士會帥師滅赤狄甲氏留吁·鐸辰.

三月. 晉侯請于王戊申以黻冕命士會將中軍且爲大傅. 於是晉國之盜逃奔于. 羊舌職: 吾聞之, 稱善人不善人遠’,此之謂也夫. : 戰戰兢兢如臨深淵如履薄冰’,善人在上也. 善人在上則國無幸民. 諺曰民之多幸國之不幸也’,是無善人之謂也.


관련 주석

十有六年春王正月: 작년 윤12 27일 기묘일이 동지였고 건축이다.

人滅赤狄甲氏留吁: 두예: “갑씨와 류우는 적적赤狄 한 부류이다. 진나라는 이미 로씨를 멸했고 이제 다시 그 나머지 잔당을 모두 병탄했다.

갑씨甲氏에 대해 고동고의 『대사표5』는 현 하북성 계택현溪澤縣 부근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를 알 수 없어 확신할 수는 없다. 서문청의 『관성석기』권11에선 『수경주』를 근거로 현 기현祁縣 후갑侯甲 있는데 후갑수侯甲水는 후갑산에서 발원한다고 한다. 그 산은 현 무향현武鄕縣 소재한다. 이에 따르면 갑씨는 혹 현 둔류屯留의 북쪽 100리 근방에 소재했을 수 있다.

류우留吁는 진나라가 멸망시킨 후에 다시 순류純留로 이름을 고쳤는데, 『좌전·양공18년』에 진나라 사람이 “손괴를 순류에서 사로잡았다”고 말한 것이 그 예다. 현 산서성 둔류현屯留縣 남쪽 10리 떨어진 곳이다.

 

춘추좌전 지도 - 갑씨甲氏류우留吁탁진鐸辰

十六年春晉士會帥師滅赤狄甲氏留吁鐸辰: 두예: “경문에서 탁진鐸辰을 쓰지 않은 까닭은 류우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두예의 설명을 따르면, 탁진은 현 산서성 노성현潞城縣과 둔류현屯留縣 부근에 거주한 셈이다.

三月: 두예: “왕에게 포로를 바친 것이다.

晉侯請于王戊申: 술신은 27일이다.

以黻冕命士會將中軍: 의 음은 불이고 불면黻冕은 고대의 예복 중의 하나이다. 불은 의이다. 『시·진풍·종남』에 “불무늬 저고리에 수를 놓은 아랫도리를 입었네(黻衣繡裳)”란 시구가 있다. 『예기·예기禮器: “천자는 용포龍袞, 제후는 도끼를 수놓은 보, 대부는 불무늬의 불, 사는 검은저고리와 분홍빛 바지를 입는다.” 김악의 『예설』: “용곤은 저고리이지 아랫도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보와 불 역시 모두 상의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설명이 옳다. 『시·종남』을 보면 “불의”와 “수상”이 서로 대구를 이룬다. 또 『대대례기·오제덕편』역시 “황제는 상의로 보불, 허리띠인 대대 그리고 수놓은 바지繡裳 입었다”라고 쓰고, 『안자춘추·간상편』역시 “경공은 보불을 입고 하얗게 수놓은 아랫도리를 입었다”고 쓰고 있다. 이런 예문들은 보불이 모두 저고리를 말한 것임을 더욱 입증할 수 있다. 불의黻衣 상의를 청색과 흑색 두 가지 색으로 아 모양의 꽃무늬를 수놓은 것으로서 『좌전·환공2년』의 주석에 상세하다. 공영달의 『소』는 불을 필 보고 무릎을 덤는 폐슬(『좌전·환공2년』의 주석 참조)이라고 설명했지만 옳지 않다. 유리순劉履恂 『추차잡기秋槎雜記』는 공영달의 잘못된 설명으로 인해 억지로 해석했는데 옳지 않다.

은 예모禮帽이다. 이 불면은 당시 경대부의 예복으로서 『논어·태백』에서 우 임금이 “의복은 검소하게 하시되 제복인 불면은 아름답게 하셨다(惡衣服而致美乎黻冕)”의 제복祭服과는 다르다.

且爲大傅: 『좌전』에 근거하면, 문공 6년 양처보가 태부가 되었고, 성공 18년 사악탁이 태부가 되었으며, 양공 16년 양설힐이 태부가 되었다. 진나라에서 태부大傅는 대체로 법(禮刑)을 주관하는 관직에 가까운 것 같은데 여기서는 중군의 장수를 겸하게 한 것이다.

於是晉國之盜逃奔于: 『열자·설부편』에 극옹이 도적을 만난 고사가 있는데, 그 말미에 “이때 수회가 집정이 되자 도적들이 진나라로 도망갔다”는 말이 있다.

羊舌職: 吾聞之, 稱善人: 뜻으로서 인재를 선발하여 등용하다.

不善人遠’,此之謂也夫. : 戰戰兢兢如臨深淵如履薄冰: 『시·소아·소민편』의 구절이다. 전전긍긍은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조심하는 모양이다. 여림심연은 혹 실추할까 두려워하다. 여리박빙은 함정에 빠질까 조심함이다.

善人在上也: 위에 선한 이가 있으면 백성들이 모두 스스로 두려워하고 삼가 경거망동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善人在上則國無幸民: 행민幸民이란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이다. 『관자·칠법편』: “조정에서 정치가 잘 시행되지 않으면 상벌이 분명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백성들은 요행을 바라며 살게 된다(民幸生). 상벌이 분명하면 사람들은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용사들을 권면할 수 있게 된다.” 또 「정편」: “그 지의를 끊어 막음으로써 요행을 바라지 않게 한다(遏之以絶其志意, 毋使民幸).” 「명법편」: “사사로운 은혜를 베풀어 공적이 없는데도 상을 내리면 이는 백성들에게 요행을 탐내어(則是使民偸幸) 윗사람만 쳐다보게 만드는 것이다.” 여러 “행”자가 모두 이 뜻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양설직은 “무행민”을 “선한 이를 윗자리에 두는 일”과 관련지었고, 『관자』는 “법을 분명하게 하는 일”에 관련지었다는 것이다.

諺曰民之多幸國之不幸也’,是無善人之謂也: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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