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서群舒 (춘추좌전.6.12.3.)
초나라 영윤 대손백大孫伯(성대심)이 타계했고, (아우) 성가成嘉가 영윤이 되었다. 서舒의 여러 나라들이 초나라를 배반했다. 여름, 자공子孔(성가)이 서舒나라의 군주 평平과 종宗나라의 군주를 사로잡고, 이어 소巢나라의 국도를 포위했다.
원문
楚令尹大孫伯卒,成嘉爲令尹. 群舒叛楚,夏,子孔執舒子平及宗子,遂圍巢.
관련 주석
⊙夏,楚人圍巢: 『서서』: “소백이 내조했다.
예백이 이 때문에 『려소명』을 지었다.” 소巢는 은상 시대부터 존재한 옛 나라이다. 1977년 4월 섬서성 주원의 유적지에서 주초 시대의 복사가 발견되었는데, 그 중 110호 복갑에 “소나라를 정벌했다”라는 문구가 있어 이를
입증한다. 『수경·면수주』에선 “소는 서나라 중의 하나이다.”라고
했는데, 언성으로 본 것이다. 현 안휘성 소현巢縣의 동북쪽 5리 떨어진 곳에 거소 엣 유적지가 있는데 이곳이
옛 소나라이다. 고사기의 『지명고략』: “성공 7년, 오나라가 처음으로 초와 소를 정벌했고, 17년 서용舒庸이 오나라의 길잡이가 되어 소를 포위했다. 양공 25년, 오나라가
초나라를 정벌하고 소의 성문을 공격했으며 소공 4년, 원계강이
소에 성을 쌓았다. 5년, 초는 심윤 사射를 보내어 소에서 명을 기다리게 했고, 24년, 오나라가
소를 멸했다. 25년, 초는 웅상모를 시켜 소에 외성을 쌓게
했는데, 소는 이미 멸망한 후였기 때문에 초가 그 땅을 취하여 근거지로 삼으려고 한 것이다. 『사기』를 보면 오나라 공자광 6년, 초군을 예장에서 크게 물리치고 초의 거소 땅을 취하여 돌아왔으며 이때부터 소 땅은 오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楚令尹大孫伯卒: 대손백은 성대심成大心이다.
▣成嘉爲令尹: 두예: “약오의
증손인 자공子孔이다.” 정공설의 『춘추분기세보7』: “득신의 후손이 성씨成氏이다. 두 아들을 두었는데, 대심大心과 가嘉이다.” 성가 역시
자옥의 아들이고 손백의 동생이다.
▣群舒叛楚: 군서는 『춘추·희공3년』에
보인다.
▣夏,子孔執舒子平及宗子: 옛 사람들 중 “가嘉”를 이름으로 삼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공孔”을 자로 삼았다. 예를 들면, 『좌전·환공2년』에
송나라에 공보가가 있다. 이에 대해선 왕인지의 『명자해고』에 자세하다.
서자평은 평이 서자의 이름이다. 춘추시대 소위 “만이”의 군주들을 다수 “자”라고 칭했다.
종宗은 나라이름이다. 그러므로 종자는 종의 군주이다. 종국의 위치에 대해 두예는 언급하지
않았고, 고동고의 『대사표』는 현 안휘성 서성현舒城縣과 여강현廬江縣의 동쪽 옛 용서성龍舒城 중간이라고 말한다. 비록 확증은 없지만 군서의 땅은 현 안휘성
서성에서부터 여강현 소현 일대에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종국 역시 그 중에 있었음이 틀림없다.
▣遂圍巢: 소는 경문의 주석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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