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목공 서거와 순장旬葬 (춘추좌전.6.6.3.)

진 목공 임호任好가 타계했고 자거씨의 엄식, 중행 그리고 침호 등을 순장했다. 이들은 모두 나라의 선량한 신하들이었다. 국인들이 그들을 애도하여 「황조黃鳥」를 지어 불렀다

군자는 말한다. “진 목공이 맹주가 되지 못한 것은 마땅하다! 세상을 떠나며 백성을 저버렸다. 선왕은 세상을 떠나면서도 법을 남겼는데 하물며 그는 선량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지 않았는가? 「시」(『대아·첨앙』)에 ‘사람들이 떠나가니 나라가 병들어간다.’고 하였다. 선량한 이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무슨 이유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가? 옛 왕들은 삶이 길지 않음을 알았기에 현자를 등용하고, 교화를 수립하고, 신분을 드러내는 물건을 나눠주며, 귀감이 될 훈계를 남기셨다. 또 율과 도를 제정하고, 준칙을 널리 공포하며, 의표를 세워 민을 인도하셨다. 법제를 주어 사용하게 하고, 선왕의 가르침을 포고하고, 가르침으로 탐욕을 막고, 녹봉을 주고, 예법으로 가르쳐 민을 인도하셨다. 그 지역에 알맞은 법을 제정하고, 백성이 이에 힘입어 살아갈 수 있게 만든 후에 세상을 떠나셨다. 성왕聖王 역시 이와 같았다. 이제 목공은 법을 세워 후손에 남기지는 못할 망정 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니 윗자리에 있기 어렵다.” 군자는 목공의 이 일로 인해 진나라가 다시 동쪽을 정벌하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원문

秦伯任好子車氏之三子奄息·仲行·鍼虎爲殉之良也. 國人哀之爲之賦黃鳥.

君子曰: 秦穆之不爲盟主也宜哉! 死而棄民. 先王違世之法而況奪之善人乎? : 人之云亡邦國殄瘁.無善人之謂. 若之何奪之? 古之王者知命之不長是以並建聖哲樹之風聲分之采物著之話言爲之陳之藝極引之表儀予之法制告之訓典之防利委之常秩道之禮則[1], 使毋失其土宜衆隸賴之而後卽命. 聖王同之. 今縱無法以遺後嗣而又收其良以死難以在上矣.君子是以知之不復東征也.



[1] 각 본에선 모두 “道之以禮則”으로 쓰고 있어서 “이”자가 더 있다. 『당석경』본에는 “이”자가 없는데, 속유가 그 옆에 “이”자를 덧붙여 놓고 있다. 이를 따를 수 없다. 여기서 삭제한다.


관련 주석

秦伯任好: 음은 임이다. 임호는 진 목공의 이름이다. 유문기의 『소증』: “「년표」에 ‘진 목공 39, 목공이 서거했다. 장례를 치를 때 사람들을 생매장했는데 170명에 달했다. 군자는 이 순장을 싫어하여 그의 죽음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춘추』에서 목공의 죽음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한 『좌전』의 옛 설이다.

子車氏之三子奄息·仲行·鍼虎爲殉: 두예: “자거는 진나라 대부의 씨이다.『시·진풍·황조』의 “자거 엄식子車奄息”에 대해 공영달의 『소』는 “『좌전』에선 ‘자여子輿’으로 쓴다.”고 말하고 있다. 공영달이 근거한 『좌전』은 “자거”를 “자여”로 쓰고 있고, 「진본기」에서도 “자여”로 쓴다. 엄식과 중행 그리고 침호는 세 사람의 이름인데, 정현의 『시전』에선 “중행”을 자로 보고 있지만 옳지 않은듯하다. 상세한 것은 진앙의 『모시전소』를 참조하라. 「진본기」: 39, 목공이 죽었다. 옹에서 장례를 치렀는데 따라 죽인 자가 177명이었다. 진의 양신 자여씨 세 명 즉 엄식과 중행 그리고 침호 역시 순장으로 죽었다.” 즉 순장된 이가 세 명에 그친 것이 아니고 이 세 사람은 특기할 만한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진본기」는 진 무공의 기사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순장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순장은 상고시대부터 있던 관습으로 사마천의 처음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之良也. 國人哀之爲之賦黃鳥: 『시·진풍·황조』의 『서』: “「황조」는 세 명의 선량한 사람들을 애도한 시이다. 진나라 사람들은 목공이 순장한 일을 풍자하여 이 시를 지었다.” 역시 세 명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는데, 목공이 죽였다는 것은 그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진본기」의 『정의』에선 응소의 설명을 인용하여, “진 목공과 군신들이 함께 술을 마실 적에 목공이 ‘살아서도 이 즐거움을 함께하고 죽어서도 이 슬픔을 함께 하자’고 말했는데, 이때 엄식과 중행 그리고 침호가 이를 허락했었다. 공이 죽자 모두 약속을 지켜 따라 죽었다. 「황조」는 이 일을 노래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한서·광형전』에는 광형의 상소문이 실려 있는데, “신이 가만히 「국풍」의 시들을 살펴보니 진 목공은 신의를 중시하여 여러 신하들이 그를 따라 죽었습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정현의 『시전』역시 “세 명의 신하는 스스로 죽어 목공의 뒤를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살했다는 주장은 『좌전』과 『시』의 뜻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사기·몽괄전』에는 몽의의 대답을 싣고 있는데, “과거 진 목공은 세 명의 선량한 신하를 죽였고, 백리해에게 죄를 물었지만 그것은 그의 죄가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시호를 무라고 지었다.”라고 말한다. 즉 선진 시대에는 모두 세 명이 피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살설은 한나라 때에 생겼다.

君子曰: 秦穆之不爲盟主也宜哉! 死而棄民. 先王違世: 이별하다. 위세란 ‘죽다’와 같은 말이다.

之法: 『시·대아·문왕유성文王有聲』의 “후손에게 계책을 남겨주다(詒闕孫謀)”에서의 “이”와 같은 뜻이다. 다음에 나오는 “후대에 남기다(遺後嗣)”의 “유”와 같다.

而況奪之善人乎?: 용법으로 쓰였다. 즉 선량한 백성을 죽였다는 의미이다.

: 人之云亡邦國殄瘁.: 『시·대아·첨앙瞻卬』의 시구이다. 모『전』을 보면 “진은 진, 는 병 뜻”이라고 한다. 정현의 『전』은 “현명한 사람들이 모두 도망갈 생각을 하면 천하 모든 나라가 곤궁하게 될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을 “”으로, ”을 “도망”으로, ”을 “”의 뜻으로 본 것인데 모두 『시』의 뜻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인은 선량하고 현명한 사람을 가리킨다. 人之云亡”의 어법은 『패풍·웅치雄雉』의道之云遠”과 같다. 여기서 “지”와 “운”은 모두 어중조사로서 실제적인 뜻이 없다. 『좌전』의 뜻에 비추어보면 망은 죽음이지 도망의 뜻이 아니다. 역시 『주례·지관·도인』의 “가택은 여름에 물을 이용하여 잡초를 죽이고 솎아낸다(凡稼澤, 夏以水殄草而芟荑之)”에서의 “진”의 뜻으로서 정현은 “병들게 하다()의 뜻”이라고 풀이했다. 『국어·노어상』에서는 “실로 백성들이 고통으로 병들 때를 기다려(固民之殄病是待)”라는 말이 있는데, 진병은 연문으로 같은 뜻의 글자가 연이어 쓰인 것이다.

無善人之謂. 若之何奪之? 古之王者知命之不長: 공영달의 『소』: 知命之不長 사람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고 장생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법을 제정하여 후인에게 남기는데 좋은 법은 당대만을 위해 만드는 것은 아니다. 並建聖哲’이하는 즉 자리에 있을 때 평소 실천하는 것이지 죽음에 임박해서 비로소 실행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의 ‘衆隸賴之而後卽命’은 이런 일들을 실행하고 공적을 이룬 후에 세상을 떠난다는 말일 뿐 이런 법을 펴는 일을 죽음에 견준 것은 아니다.

是以並建聖哲: 보편/널리의 뜻. 왕인지의 『술문』에 자세하다. 성철은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을 널리 가리킨다.

樹之風聲: 그들을 위해 교화(풍화성교)를 수립하다.

分之采物: 채물은 『좌전·은공5년』의 “物采”와 같다. 공영달은 『소』: “채물은 채장采章 물색物色, 깃발과 의복 등에 있어서 신분의 귀천이 다르고 명위의 높고 낮음에 따라 각각 품제가 있다. 천자가 소유한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기 때문에 ‘分之’라고 한다. 『좌전·정공4년』의 ‘노공에게 큰 수레(大路)와 용이 그려진 깃발(大旂)을 나누어 주었다’라는 것과 같은 종류이다.

著之話言: 공영달 『소』: “모범이 될만한 좋은 말과 훈계를 죽간이나 비단에 써서 남겼기 때문에 ‘著之’라고 한다.” 화언은 동의사연용이다. 일반적으로 좋은 말을 뜻할 때 사용한다. 『시·대아·억』의 “告之話言”에 대해 모『전』은 “화언話言이란 예로부터 전해오는 귀감이 될 만한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爲之律度: 율도는 법도 혹은 법제의 뜻이다. 과거에는 음율鍾律·도량度量 뜻으로 해석했는데 이것은 『좌전』이 의미한 바가 아닌 것 같다.

陳之藝極: 두예: “예는 준, 극은 중 뜻이다.” 예극 역시 동의사 연용이다. 준칙과 같은 말이다. 각종 표준을 제정하여 널리 사용하다. 두예가 “예극”의 뜻을 해석한 것은 매우 옳지만, “공물(貢獻)의 다소를 정한 법”이라고 한정한 것은 실수로 보인다. 예자의 뜻에 대해선 왕념손의 『광아석고소증』을 참고하라.

引之表儀: 왕념손은 “나무를 세워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을 표, 또 의라고도 한다. 『설문』에선 ‘의는 나무 줄기이다. 목을 부수로 하고, 소리는 의를 따른다(, 幹也. 從木義聲).’라고 설명한다. 『춘추』와 『좌전』에선 이 글자를 의로 쓴다. 표의와 예극의 뜻은 유사하다. 모두 법도를 비유한 말이다. 『관자·형세해편』에선 ‘법도란 만민의 의표儀表이다. 예의란 존비를 나타내는 의표이다.’라고 말한다. 『한시·외전』은 ‘지혜가 샘의 근원처럼 깊고 끊임없다면 그는 표의表儀로 삼을 만하고 다른 사람의 선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혹은 ‘표의’라고 말하고, 혹은 ‘의표’라고 말하지만 사실 같은 말이다.”라고 설명한다. 왕인지의 『술문』에 자세하다.

予之法制: 이 네 구 “율도”·“예극”·“표의”·“법제”는 뜻이 모두 비슷하다. 다만 “위”·“진”·“인”·“여”등의 동사만이 다를 뿐이다. 위는 제정함이고, 진은 그것을 널리 공포함이고, 인은 인도함이며, 여는 그것을 주어 사용하게 함이다.

告之訓典: 두예: “훈전은 선왕의 책이다.” 「초어상」의 “그에게 훈전을 가르쳐(敎之訓典) 그가 일족에게 행동이 의에 부합되도록 알게 하다”, “또 좌사 의상은 훈전으로 인도하여 만물의 등급을 세웠다(又有左史倚相能道訓典以敍百物)”라는 말이 있다. 「진어8」에는 “훈전을 엮다(緝訓典)”란 말이 있다. 훈전이란 전장과 제도를 기록한 책이다.

之防利: 방은 제방의 방자이다. 『주례·지관·도인』의 “제방을 쌓아 물을 막는다(以防止水)”와 같다. 방리防利는 『좌전·양공28년』의 “폭리幅利”와 비슷한데 즉 만족함을 알고 더 많은 탐욕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委之常秩: 두예: “위 위임함이다. 상질常秩 관사의 상직常職이다.” 즉 일정한 직분을 맡겨서 책임지고 공적을 이루게 한다는 뜻. 죽첨광홍의 『회전』에선 “질이란 녹봉이다. 즉 일정한 녹봉이 있다. 위는 『유행편儒行篇』의 ‘재물을 주다(委之以貨材)’에서의 위의 뜻이다.”라고 설명한다. 즉 봉록을 준다는 뜻으로 본 것이다. 두 가지 주장이 모두 통한다.

道之禮則: 각 본에는 모두 “道之以禮則”으로 써서 “이”자가 더 있다. 그러나 『당석경』에는 본래 “이”자가 없는데 속유가 글자를 옆에 덧붙여 놓았다. 이를 따를 수 없다. 여기서 바로잡는다. 혹자는 “道之以禮”에서 끊고 “”을 뒷 구에 잇는데 역시 뜻이 통하지 않는다. 여기서 도는 가르쳐서 인도한다는 뜻으로서 앞의 “”자와는 구별이 된다.

使毋失其土宜: 『주례·지관·대사도』의 “지역에 따른 법을 가지고 12가지 땅의 명물을 구분한다(以土宜之法, 辨十有二土之名物).”에 대해 손이양은 『정의』에서 “각 지역의 사람과 동물 그리고 초목에게 적절한 법에 따라서 분별한다”라고 풀이한다. 즉 지리에 근거하여 그에 알맞은 법을 제정함이다.

衆隸賴之而後卽命: 명은 천명이다. 천명(수명)이 이미 다한 후에 떠나갔고, 『좌전·성공13년』의 “卽世”와 앞의 “違世 와 같은 말인데 모두 죽음의 다른 표현이다.

聖王同之. 今縱無法以遺後嗣而又收其良以死難以在上矣.君子是以知之不復東征也: 이 단락의 앞에 “군자가 말하길”이란 언급이 있었는데, 여기 말미에 다시 “군자는 이 때문에 진나라가 다시는 동쪽을 정벌하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라는 언급이 있다.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닌가싶다. 「진본기」는 “군자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진 목공은 나라의 땅을 더욱 넓히고 동쪽으로 진을 굴복시켰으며, 서쪽으로는 서융의 패권을 잡았다. 그러나 제후의 맹주가 되지 못한 것 역시 마땅하지 않은가! 죽으면서도 백성들의 목숨을 빼앗고, 현량한 신하들을 자신을 따라 죽게 만들었다. 또 선왕은 죽으면서 덕과 모범이 될 만한 법을 남겨야 하거늘 오히려 백성들이 애도할 만한 선량한 신하를 죽여 데리고 가지 않았는가? 이 일로 인해 진은 동쪽을 다시 정벌하지 못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즉 이 기사는 『좌전』의 문장을 취한 것인데 다만 두 명의 군자가 한 명으로 바뀌어 있다. 「십이제후연표」는 “군자는 (목공의 이런 행위를) 기롱하여 그의 죽음을 적지 않았다.”라고 적고 있다. 『논형·무형편』은 “『좌전』에서 또 말하기를 진 목공은 밝은 덕이 있어 상제가 그에게 19년을 주었는데(「복허편」은 90년이라고 적었는데 오류이다. 왕충의 이 말은 『묵자·명귀편』에 근거했는데 현재의 『묵자』에는 ‘진’이 ‘정’으로 쓰여 있다), 이 말은 허구이다,”라는 기사가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