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의신鬬宜申의 반란을 진압한 초 목왕 (춘추좌전.6.10.3.)

애초 초나라 범 땅의 무당 율사矞似가 성왕, 자옥 그리고 자서에 대해 말했다. “세 사람 모두 비명 횡사할 것이다.” 

성복의 전쟁 당시 성왕이 그의 말을 떠올리고 사람을 보내 자옥의 자결을 제지하고 “죽지 말라” 명을 내렸지만 사신이 제때 도착하지 못했다. 자서의 자결도 제지했는데, 자서가 목을 맸지만 끈이 끊어졌고 사자가 때맞춰 도착해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

성왕은 자서를 상(섬서성 상현商顯 동남쪽의 상낙진商洛鎭) 현령으로 삼았다. (얼마 후) 자서가 한수를 따라 내려와서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영(호북성 강릉현江陵縣의 북쪽)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성왕이 저궁渚宮에 머물다 내려가는 길에 자서와 마주쳤다. 자서는 두려움을 느껴 변명하며 말했다. “신이 죽음을 면했으나 신이 도망치려 한다는 참언이 또 돌고 있습니다. 신은 사패司敗에게 저를 죽여줄 것을 청하러 왔습니다.” 성왕은 그를 공윤工尹으로 삼았다

이제 자서가 또다시 자가子家와 함께 목왕을 시해하려 했다. 목왕이 이 사실을 알아챘고, 5월 투의신鬬宜申(자서)과 중귀仲歸(자가)를 죽였다.


원문

, 楚范矞似成王子玉·子西: 三君皆將.城濮之役王思之故使止子玉: 毋死.不及. 子西子西縊而縣王使適至遂止之使爲. 沿將入. 王在渚宮, 見之. , 而辭曰: 臣免於死又有讒言謂臣將逃臣歸死於司敗.王使爲工尹又與子家穆王. 穆王聞之五月鬬宜申仲歸.


관련 주석

, 楚范矞似成王子玉·子西: 은 초나라 읍이다. 범읍에 거주하던 무당의 이름이 율사이다. 『북위서·양고전陽固傳』에서 양고의 「연이부演頣賦」를 인용한, “성왕과 자옥 그리고 자서는 같은 운명이어라, 그 징조는 율사의 말에서 볼 수 있다(識同命於三君兮, 兆先見於矞姒).”라는 문구가 있다. 율사矞似 율사矞姒 썼다. 유문기의 『소증』: “사와 사는 다른 글자이다. 고대 무당은 다수 여인이었는데 양고가 쓴 글자는 고본인 것 같다.” 율의 음은 율 혹은 결이다.

三君皆將.: 공영달의 『소』: “강은 건. 병없이 죽는 것이므로 피살된 것이다.

城濮之役王思之故使止子玉: 毋死.不及: 『좌전·희공28년』의 주석을 참조하라.

子西子西縊而縣: 은 매달다()와 같다. 목을 매단 끈이 끊어져서 죽지 않았다.

王使適至遂止之使爲: 두예의 주석에 따르면, 현 섬서성 상현商顯 동남쪽의 상낙진商洛鎭이다. 그러나 당시 초나라의 강역은 그곳까지 미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沿: 沿은 물의 흐름을 따라서. 한수를 따라 내려가다.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다. 한수를 따라 내려가다가 장강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將入: 초나라 도읍으로 현 호북성 강릉현江陵縣의 북쪽 10리 기남성紀南城이다. 자서가 도읍인 영으로 들어간 일은 상공이 된 후의 일이다. 그런데 영에 간 까닭에 대해서 고염무는 『보정』에서 “도읍으로 가서 반란을 일으킬 생각”이었다고 하는데 아래 글에 근거하면 일리가 있다.

王在渚宮: 『수경·강수주』: “강릉 현성은 초나라 선관지船官地인데, 춘추시대의 저궁이다.” 『명승지』: “저궁은 초나라의 별궁이다. 양나라 원제가 저궁의 옛 터에 대사臺榭 지었다.” 궁은 현재의 강릉현 내에 있다.

, 見之. : 자서는 본래 영으로 들어와 성왕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그를 만나고 말았기 때문에 두려워했다.

而辭曰: 『논어·계씨』의 “그를 위해 변명하다(必爲之辭)”나 『좌전·선공11년』의 “변명을 해도 되겠습니까(猶可辭乎)”의 사로 읽어야 한다. 즉 스스로 변명함이다. 도홍경의 『별소』에 자세하다.

臣免於死: 목을 매었지만 줄이 끊어졌고 또 왕이 죽음을 제지해 준 것.

又有讒言謂臣將逃臣歸死於司敗也.: 『논어·술이』의 “진나라의 사패(司敗), 『좌전·정공3년』에 당나라 사람이 “스스로 사패에게 가서 구금되었다(自拘於司敗)”라고 말한 것이 있다. 즉 진과 초 그리고 당에 모두 사패라는 관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본문의 “歸死於司敗也”는 『좌전·양공3년』의 “사구에게 가서 죽음을 청하려 합니다(請歸死於司寇)”라는 문구와 뜻이 같다. 세 나라의 사패라는 관직은 다른 나라의 사구와 같음을 알 수 있다. 자서는 도읍인 영에 들어온 까닭을 죽음을 청하기 위해서였다고 변명했다.

춘추좌전 지도 - 초나라의 수도와 천도


王使爲工尹: 두예: “장인들을 관장하는 자리이다.『좌전·선공4년』의 “위가가 공정이 되었다(蔿賈爲工正)”에서 공정은 공윤과 유사하다. 『좌전·선공12년』의 “초나라 공윤 제가 오른쪽의 병졸들을 거느리고 하군을 공격했다., 『좌전·소공27년』의 “공윤인 수가 군사를 이끌고 잠에 도달했다.”는 기사를 보면 공윤 역시 때에 따라 군사를 통솔했다.

又與子家穆王: “시”자를 금택문고본에선 “살”로 쓰는데, 즉 살이다.

穆王聞之五月鬬宜申仲歸: 중귀는 곧 자가이다. 자가는 피살되었는데 『춘추』에서 쓰지 않은 이유에 대해 두예는 “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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