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인권 문제와 '라이시테laïcité (중국이야기)

프랑스는 불가분의, 정교분리적, 민주적 및 사회적 공화국이다….”

(현행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 제1)

 


공화국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다. 공화국은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보장하며, … 공화국은 어떠한 종교도 인정하지 않고,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는다.”(프랑스 제3공화국 1905년 법률 제1장의 원칙의 장)

 

역사적 맥락의 망각


마빈 해리스의 수수께끼시리즈는 세계 도처에 잔재한, 현대인으로서는 잘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의 출생 배경에 대해 쉽고 간결한 설명을 제공하는데 그의 풀이가 정답이라 할 수는 없지만 풀이 과정이 명쾌한 이유는 모든 문화의 생성 배경에 그 사회가 처했던 지리적, 경제적 맥락에서 출발해 차근차근 접근해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30년 전쯤 학교 강의 과제 때문에 그의 책을 읽었을 때 느낌은 이랬다. 쉽네. 그러니까 인간의 행동은 결국 경제적, 물질적 요인에 있네~.

 

마빈 해리스


한 사회의 관습과 제도 등 총체적인 문화는 애초 그런 것이 형성될 때의 원인과 당위가 있게 마련이지만 장구한 세월이 흐르면 애초의 그 장본은 잊히고 껍데기만 남게 된다. 외롭게 남겨진 그 껍데기는 시대에 뒤떨어진 도대체 쓸모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구속이라는 구박과 비난만 얻고, 상당수는 대체 왜 이런 관습과 법이 생겼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


 

자유로운 종교 활동의 보장과 부르카 금지


 

모순이다. 2011년 프랑스의 이른바 부르카 금지법은 자유로운 종교 활동의 보장과는 거리가 멀다. 공공 장소에서 여성의 얼굴을 가리는 베일을 벗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한다는 법의 시행은 이슬람 신자들의 종교 활동을 명백히 침해하고 있다. 세계인에게 상당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한 선입견들, 즉 토론과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들, ‘똘레랑스라는 칭찬을 듣기에 충분한 시민들, 앙시앙 레짐에 저항해 자유, 평등, 박애를 천명했던 18세기 말의 시민들…. 그런데 왜?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보장하며, … 공화국은 어떠한 종교도 인정하지 않고,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는다.”(1905년 법률 제1장의 원칙의 장)

 

어떠한 종교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프랑스 제3공화국의 법률 제1장은 자유로운 종교 활동의 보장과 부조화를 보인다. 또 당시의 어떠한 종교는 이슬람을 염두에 둔 것인가? 전혀 아니다. 여기서 겨냥한 종교는 카톨릭이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기 카톨릭 탄압의 시기


 

대혁명 이전 프랑스는 스페인과 함께 카톨릭 세계의 적자의 자리를 다투며 이 세계의 수호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비록 30년 전쟁에선 종교는 내일도 존재하겠지만 국가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국익이라는 실리를 추구한 리셜리외가 카톨릭을 배반하고 신교의 편을 들었던 역사도 있지만.

 

대혁명의 시기 프랑스는 1790년 헌법제정국민의회 성직자 민사기본법제정했는데 여기서 교구의 재편과 주교 선출에 비카톨릭 신자까지 포함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했다. 또 교황청에 결과를 통지할 뿐 어떤 간섭도 용인하지 않았다. 3공화국 초기의 공화파들은 종교로부터 정치권력의 완전한 독립성을 쟁취하고, 정치적 및 사회적 생활에 있어서 가톨릭의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해서 일련의 법률을 가결한 것이다. 예를 들면, 의회가 개원할 때 기도의 폐지, 묘지의 탈종교화, 이혼의 재인정을 위한 일련의 법률을 제정했으며, 특히 교육의 탈종교화와 수도회에 대한 공격을 수행한 것이다.

 

이제 법률 제1장에 명시한 어떠한 종교도 인정하지 않는다의 종교란 명백히 카톨릭을 겨냥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프랑스 가톨릭 내부에는 심각한 종교적 분열이 발생했고 이 같은 분열은 오랜 동안두 개의 프랑스”(deux France) - 하나는 우파로서 왕당파와 가톨릭 세력을 대표하고, 다른 하나는 좌파로서 공화파와 종교분리주의자들을 대표했다 - 라는 이름으로 이후의 프랑스 헌정사에 깊이 자리잡게 된다.

 

프랑스는 불가분의, 정교분리적, 민주적 및 사회적 공화국이다….”(현행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 제1)

 

프랑스 헌법 제1조는 통합, 분리, 조화를 누비옷처럼 아슬아슬하게 꿰매고 있다. ‘불가분은 두 개의 프랑스를 겨냥하고, 정교분리는 가톨릭으로부터 양심의 자유와 정교 분리를, 마지막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적절한 조화를 추구한 것이다. 자 이제 처음 제기한 문제로 돌아가보자.

 

자유로운 종교 활동 보장을 보장한 프랑스가 부르카 금지를 제정할 수 있었던 법적 근거는 아마 어떠한 종교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는 것처럼 볼 수 있는데 여기에 또 하나 추가된 20세기 후반의 국제 정치 흐름이 있다. 1640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로 유럽 세계에서 한 나라의 주권은 외교의 기본 근거가 되었는데 이 주권조차 제약하고 간섭할 수 있는 주권 위에 있는 새로운 지침이 등장한다. 인권이다. 인권의 탄압에는 주권도 소용없다. 미국이 중국을, 북한을, 이란을 맹비난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헨리 키신저와 저우언라이


당신이 언급한 세 가지 부문에 관해서 우리는 인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국 사이의 커다란 차이 때문에 의미 있는 진척이 가능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인권이란 개념에는 전통과 도덕 가치 및 철학적 가치 등이 담겨 있습니다. 이들은 중국과 서구에서 서로 다른 것이지요.” (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 559)

 


199212월 막 당선한 클린턴 행정부의 중국의 인권 문제 제기에 대해 리펑이 키신저에게 솔직하게 대답한 말이다. 우리도 솔직히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된 것은 아닌가, 인권이 모든 것을 초월한 최상위의 가치인지, 더구나 특정한 전통과 도덕 가치와 철학적 가치를 지닌 특정한 문화권에서 규정한 인권의 개념이 전세계 어느 곳 그 누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최상위의 가치가 될 수 있는지 말이다.

 

(참고 논문: 한동훈, 「프랑스 헌법상 정교분리의 원칙」, 헌법재판연구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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