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후계를 둘러싼 조돈과 호야고의 대립 (춘추좌전.6.6.5)

번역

8월 을해일(14), 진 양공이 타계했다. 영공은 어렸고 내외의 난제로 진나라 사람들은 어른을 군주로 옹립하길 원했다. 조맹趙孟이 말했다. “공자옹公子雍을 세워야 합니다. 그는 선한 것을 좋아하고 성인입니다. 선군도 그를 아끼셨고, 또 진과도 가깝습니다. 진나라는 옛 우호국입니다. 선한 이를 세우면 지위가 견고하고, 성인을 섬기는 것이 순리이며, 선군이 사랑한 이를 세우는 것이 효이고, 오랜 우호국과 결속하면 나라가 안정될 것입니다. 현재 상황이 어려우니 어른을 옹립해야 합니다. 이 네 가지 덕을 가진 사람을 세우면 반드시 나라의 어려움이 나아질 것입니다.” 가계賈季(호야고)가 말했다. “공자락公子樂을 옹립하는 것보다 못합니다. 그의 모친 진영은 회공과 문공 두 분께 아낌을 받았으니 그의 아들을 세우면 백성들이 편안하게 느낄 것입니다.

조맹이 말했다. “진영의 신분은 미천하여 서열이 아홉 번째인데 그의 아들이 어떻게 위엄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또 두 명의 군주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음란입니다. 선군의 자식으로서 대국을 얻지 못하고 소국에 머물고 있는 것은 궁벽함입니다. 모친은 음란하고 자식은 궁벽하니 위엄이 없습니다. 나라는 작고 거리가 멀어 밖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으니 어찌 안정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옹의 모친 두기杜祁는 군주를 위해 핍길偪姞에게 지위를 양보하고 그를 섬겼으며 문공께서 적 머물 때의 인연으로 계외季隗에게 지위를 양보하여 그 다음 자리에 섰기 때문에 네번째 반열에 있었던 것입니다. 선군은 이 때문에 그녀의 자식을 아껴 진에서 출사하게 했고 그곳에서 아경이 되었습니다. 진은 대국이며 이웃이니 충분히 그의 조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모친은 의롭고 아들은 선군의 사랑을 받았으니 충분히 백성들에게 위엄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를 세우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조돈은 선멸先蔑과 사회士會를 진나라로 보내 공자옹을 모셔오게 했다. 가계 역시 사람을 보내 공자락을 진에서 모셔오게 하였다. 조돈은 비에서 공자락을 죽였다.


원문

八月乙亥晉襄公. 靈公人以難故欲立長君. 趙孟: 公子雍. 好善而長先君愛之且近於. , 舊好也. 置善則固事長則順立愛則孝結舊則安. 爲難故故欲立長君. 有此四德者難必抒矣.賈季: 不如立公子樂. 辰嬴嬖於二君立其子民必安之.趙孟: 辰嬴班在九人其子何震之有? 且爲二君[1]淫也. 爲先君子不能求大而出在小國辟也. 母淫子辟無威; 小而遠無援將何安焉? 杜祁以君故偪姞而上之; 季隗而已次之故班在四. 先君是以愛其子而仕諸爲亞卿焉. 大而近足以爲援; 母義子愛足以威民. 立之不亦可乎?使先蔑·士會公子雍. 賈季亦使召公子樂趙孟使殺諸.



[1] 각 본에는 “”자가 없다. 유독 금택문고본에만 이 글자가 있는데 「진세가」와 부합한다. 앞에서 “嬖於二君”이라고 말했으므로 여기서 “爲二君嬖”라고 말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 글자를 더했다.


관련 주석

八月乙亥: 을해일은 14일이다.

晉侯驩: 『공양』에선 “환”을 “환”으로 쓴다. 「주어하」는 “삼대를 거쳐 군주가 되고 그 뒤에는 환의 후손에게 넘어가리라(三而之孫)”으로 써서 “”으로 쓴다. 「진어4」는 “나는 양처보를 환 스승으로 삼고 싶다.”고 하여 “환”으로 쓴다. 「진세가」는 “환”으로 쓴다. 이 여러 글자들은 통가할 수 있다.

 

八月乙亥晉襄公: 『사기·편작열전』에선 양공이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고 말한다.

靈公: 이 당시 영공은 갓난아기였다.

人以難故: 고염무는 『보정』: “당시 연이어 진 군사 대치가 있었고 초나라가 여러 나라를 정벌하고 있었다.

欲立長君: 태자를 폐하려고 했다. 그래서 「년표」에선 “조돈趙盾 태자가 어리다는 이유로 새로운 군주를 세우려고 했다.”고 적는다.

趙孟: 조맹은 조돈이다. 조돈 이후로 조씨는 대대로 맹이라 일컬었다. 문공시대 『좌전』의 조맹은 모두 조돈을 가리킨다. 양공과 소공 원년의 『좌전』에서의 조맹은 조무를 가리키고, 소공 29년 이후부터 애공 10년의 『좌전』까지의 조맹은 조앙이다. 애공 20년 이후의 조맹은 조무휼이다.

公子雍. 好善而長先君愛之: 선군은 문공을 말한다. 공자옹은 문공의 아들로서 양공의 동생이다.

且近於: 공자옹은 진나라에 출사했다. 아랫글에 자세하다. 「진본기」는 “양공의 동생 옹은 진나라 출신이다.”라고 말한다. 공자옹의 모친은 두기杜祁인데 『좌전』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만 진나라 출신의 여인이란 말은 없다.

, 舊好也. 置善則固事長則順: 『좌전·소공26년』에 초나라 “영윤 자상이 자서子西 세우려 할 때, ‘자서는 나이가 많고 선한 것을 좋아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을 세우는 것이 순리이고 선한 사람을 세우면 정치가 잘 다스려지는 법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기사가 있다. 뜻이 대략 본문과 비슷하다. 본문에서 연장자를 섬겨야 한다는 것과 인용문의 연장자를 세우다(立長)는 비슷하다. 유월은 『평의』에서 “ 같다.”라고 말하는데, 억지로 같지 않은 것을 같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立愛則孝結舊則安. 爲難故故欲立長君. 有此四德者難必抒矣.: 네 가지 덕이란 ··· 말한다. 같다. 공영달은 『소』에서 복건의 주장을 인용하여 본래 “서”로 쓴다고 말한다. 『설문』은 “서는 느슨해지다(, 緩也).”로 풀이한다. 『좌전·장공30년』의 “사재를 털어 초나라 재정의 어려움을 덜었다(自毁其家, 以紓楚國之難)”와 『좌전·성공2년』의 “당신은 제나라의 보배를 얻었고 우리는 땅을 얻었으며 환란을 완화시켰으니(我亦得地而紓於難)”에서도 모두 서자를 쓴다. 초순의 『보소』를 참조하라.

賈季: 가계賈季 호야고다. 「진세가」의 『정의』에선 『국어』의 위소의 주석을 인용하여, 가계를 가타라고 주장하였지만 이에 대해선 이미 혜동과 전조망이 반박한 바 있다. 황비열黃丕烈 『국어찰기國語札記』를 참고하라.

不如立公子樂: 유문기의 『소증』은 “「진세가」는 ‘가계는 동생 락을 세우느니만 못하다.’라고 전한다. 공자옹에 대한 말을 이었으므로 락은 옹의 동생이다.”라고 설명한다.

辰嬴嬖於二君: 진영辰嬴 『좌전·희공22년』의 태자 어의 처 영씨이며, 『좌전·희공23년』의 회영이다. 그녀를 회영이라 말한 까닭은 당시에는 회공의 처였기 때문이다. 그후 다시 문공에게 출가하였기 때문에 진영이라고 불렀는데, 진은 혹 그녀의 시호가 아닌가싶다. 두 군주란 회공과 문공을 말한다.

立其子民必安之.趙孟: 辰嬴班在九人: 지위位次이다. 즉 문공의 처첩 중 지위가 아홉 번째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 「진세가」는 “지위가 처첩 아홉 명의 아래이다(班在九人下)”라고 적고 있어서 『좌전』의 뜻과는 다르다. 유정섭의 『계사존고癸巳存稿·진부인晉夫人』에선 “문영이 적처이다. 양공의 모친 핍길偪姞 두 번째, 계외季媿 세 번째, 공자옹의 모친 두기가 네 번째, 진영이 아홉 번째라는 말은 모두 『좌전』에서 나왔다. 나머지 네 명을 지위로 따져보면 제강이 다섯 번째 진녀 세 명이 역시 잉첩이므로 그 다음 순서가 되는 것인가?”라고 주장한다.

其子何震之有?: 위엄의 뜻. 『좌전·성공2년』의 “군주의 위엄을 두려워하여(畏君之震)”은 “畏君之威”와 같은 뜻이다.

且爲二君嬖: 각 본에는 “”자가 없다. 유독 금택문고본에만 이 글자가 있는데 「진세가」와 부합한다. 앞에서 “嬖於二君”이라고 말했으므로 여기서 “爲二君嬖”라고 말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 글자를 더했다.

淫也. 爲先君子不能求大而出在小國辟也: 은 벽 같다. 「진세가」에서는 “”으로 바로 쓴다. 벽은 궁벽하다()의 뜻이다.

母淫子辟無威; 陳小而遠無援將何安焉?: 가계의 “민심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공자락은 진나라에 있었는데, 『설원·건본편』에선 “락은 총애를 받아 선군이 아끼고 적()을 그에게 붙여 주었다. 적은 충분히 그의 조력자가 될 수 있었다.”고 전하여 『좌전』과는 다르다.

杜祁以君故偪姞而上之: 두기는 공자옹의 모친이다. 는 나라 이름이고 기는 성이다. 전해오는 이기로 두백격이 있다. 그 명문에 “두백이 숙□을 위해 귀한 력을 제작하였다(杜伯)”라는 문구가 있는데, 곽말약은 『대계고석』에서 (첫번째)“□”을 “기”자로 본다. 또 함분루涵芬樓 영인 송본 『소당집고록嘯堂集古錄』에 유공포劉公鋪가 언급되어 있는데, 곽말약은 『금문여역지여석□金文餘醳之餘釋□』에서 그 명문을 “襄公杜祁”로 고쳐 해석하고 있다. 즉 유공포를 진 양공이 두기를 위해 제작한 기로 본 것이다. 두나라의 옛 유적지는 현재의 섬서성 서안시 옛 두릉杜陵에 해당한다. 본문의 군은 진 양공을 가리킨다. 양공은 핍길의 아들로서 양공을 이미 태자를 세웠지만 두기가 핍길에게 양보하여 그를 윗자리에 두었다. 은 나라 이름이다. 성이며 그 옛 지역은 상고할 수 없다. 장병린의 『독』은 『잠부론·지씨성』의 “길씨는 밀수씨密須氏의 별종이다.”라는 말에 근거하여 “핍은 밀수씨의 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참고할만하여 수록한다.

季隗而已次之: 계외는 『좌전·희공23년』에 보이는데 문공이 적에서 취한 여인이다. 적은 진나라의 강력한 이웃이다. 두기는 계외에게 윗자리를 양보했는데 정치적 이해관계가 작용한 결과이다.

故班在四: 진영은 반열이 아홉 번째였다. 조돈은 진영의 신분이 낮다고 말했는데 두기의 서열은 네 번째이다. 그녀 역시 반드시 신분이 높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본문대로 해석하면 원래 그녀는 두 번째 반열이었다. 두기의 현명함을 함께 보여준다.

先君是以愛其子而仕諸秦爲亞卿焉: 공자옹은 진나라의 아경이 되었다. 그의 현명함을 알 수 있다.

大而近: 윗글 “진 작고 멀리 떨어져있다”는 말과 대비된다.

足以爲援; 母義子愛: 윗글 “모친은 음란하고 자식은 비루하다”는 말과 대비된다.

足以威民: 윗글의 “그런 모친의 자식이 어떻게 위엄을 가질 수 있겠는가?”라는 말과 대비된다.

立之不亦可乎?使先蔑·士會公子雍: 선멸과 사회는 모두 『좌전·희공28년』의 기사에 보인다.

賈季亦使召公子樂趙孟使殺諸: 『좌전·양공23년』의 비소인데, 나라의 읍이다. 현재의 하남성 제원현濟源縣 서쪽 1백리 떨어진 곳에 소원진邵源鎭 있다. 마종연은 『보주』에서 “비소는 진 하내에서 하동으로 갈 때 지나는 좁은 길이다. 공자락이 진나라에서 귀국할 때 사람을 시켜 이 곳에서 그를 죽였다.”라고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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