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복전쟁 후폭풍 - 초나라 성득신 자살 (춘추좌전.5.28.4.)


당초 초나라의 자옥이 몸소 마관馬冠 옥영玉纓(옥으로 장식한 고삐)을 만들어 아직 사용하지 않았을 때였다. 성복전쟁을 앞두고 꿈에 황하의 신이 그에게 말했다. “마관과 고삐를 내게 바쳐라! 너에게 송나라 맹제孟諸(하남성 상구현商丘縣 동북쪽) 땅을 주겠노라.” 자옥은 바치지 않았다. 대심大心과 자서가 영황榮黃을 통해 그 물건들을 신께 바치도록 조언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영계(영황)가 말했다. “목숨을 바쳐 나라를 이롭게 한다면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할 판에 하물며 마관과 고삐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것들은 썩은 흙과 같은 것입니다. 승리에 도움이 된대 해도 그것들을 아끼실 것입니까?” 역시 듣지 않았다. 영황이 물러나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귀신이 영윤을 패전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그가 나랏일을 소홀히 하여 실로 자초한 일입니다.” 패전 후 성왕이 자옥에게 사람을 보내 말했다. “대부가 패전해 귀국한다면 신과 식의 원로들을 무슨 낯으로 보겠는가?” 자서와 대심이 왕께 고하였다. “득신은 자결하려 했지만 ‘왕께서 처벌하실 것’이라고 말해 우리가 제지한 것입니다.” 자옥은 연곡連穀(미상)에 이르러 자살했다

진 문공은 자옥이 죽었다는 소식에 희색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내 걱정거리가 없어졌다. 초나라에선 확실히 위려신蔿呂臣이 다음 영윤이 될 것인데 그는 자신만 알고 백성들은 안중에 없는 사람이다.


원문 (5.28.4.) 

楚子玉自爲瓊弁·玉纓未之服也. 先戰神謂己曰: ! 余賜女孟諸之麋.弗致也. 大心子西使榮黃弗聽. 榮季: 死而利國猶或爲之況瓊玉乎? 是糞土也. 而可以濟師將何愛焉?弗聽. , 告二子曰: 非神敗令尹令尹其不勤民實自敗也.旣敗王使謂之曰: 大夫若入其若·之老何?子西·孫伯: 得臣將死. 二臣止之, : 君其將以爲戮.’” 連穀而死.

晉侯聞之而後喜可知也: 莫余毒也已. 蔿呂臣實爲令尹奉己而已不在民矣.


관련 주석

殺其大夫得臣: 득신의 족씨는 기록하지 않고 있다. 성공 2년 이후로 초나라의 대부들에 대해 비로소 씨족과 이름을 병기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공자영제公子嬰齊 공자측公子側 그 예다.

 

楚子玉自爲瓊弁·玉纓: 경변瓊弁 마관馬冠이다(마관은 말 머리 위, 양쪽 귀 가운데에 장식한 것으로 문헌 기록에서 월제月題라고도 한다. 중국 중원지역, 특히 산동 지역에서 많이 보이는데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 동북지역의 소흑석구 유적에서 한 예만 확인되었다. 손로, 고대 동북아시아 차마구와 기마구의 변천, 전남대. 옮긴이). 말갈기 털이 전면에 있고, 고깔은 경옥으로 장식하기 때문에 경변이라 한다.

은 말고삐이다. 말의 목 부분의 가죽으로 만들고 옥으로 장식하기 때문에 옥영이라 부른다. 이 두 가지 물건을 한나라 때 사람들은 모두 말의 장식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두예는 피변으로 해석하여 말이 아닌 자옥의 장식품으로 여겼는데 그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심흠한의 『보주』, 장총함의 『두주변증』, 이이덕의 『집술』을 참조하라.

未之服也. 先戰神謂己曰: ! 余賜女孟諸之麋.: 맹제孟諸는 송나라에 있는 수택인데, 『상서·우공』의 맹저孟豬, 『주례·하관·직방씨』의 망제望諸이다. 현재의 하남성 상구현商丘縣 동북쪽으로 우성현虞城縣과 경계를 접하고 있어 자주 황하의 물길의 침입을 받는다. 오래 전에 없어졌다. 뜻은 물가()이고 수초가 얽혀있는 것이다.

弗致也. 大心子西使榮黃: 대심大心은 자옥의 아들이다. 자서子西는 자옥과 같은 족인이다.

弗聽. 榮季: 영계는 영황이다. 은 그의 이름이고 계는 자이다.

死而利國: 만약의 뜻. 利國”은 금택문고본과 돈황의 잔권에선 모두 “國利”라고 쓰는데 실수로 글자 순서가 바뀐듯하다.

猶或爲之況瓊玉乎? 是糞土也: 『논어·공야장』의 “분토를 섞은 담장은 손질할 수 없다.”에서 분토란 옛 사람들이 늘 쓰는 말로써 썩은 흙을 말한다. 『박물지』에선 삼척 이상 솟은 땅을 분, 그 이하를 토라고 해석하는데 억측이다.

而可以濟師: 같고 가설연사이다.

將何愛焉?: 아까워하다.

弗聽. , 告二子曰: 非神敗令尹: 사동용법으로 쓰여, 그를 패하게 하다란 뜻.

令尹其不勤民: 不勤民”은 백성의 일을 중하게 여기지 않다.

實自敗也. 旣敗王使謂之曰: 大夫若入其若·之老何?: 신과 식 두 읍의 자제들은 모두 자옥을 따라 죽었다. 그러므로 자옥이 무슨 낯으로 두 읍의 어른들을 보겠느냐는 뜻. 마치 항우가 강동의 부형들을 볼 낯이 없는 처지에 놓인 것과 같은 뜻이다.

子西·孫伯: 손백은 곧 대심이다.

得臣將死. 二臣止之, : 君其將以爲戮.’”: 이신二臣 곧 자서와 손백의 자칭이다. 뜻은 자옥이 본래 자살하여 사죄하려 했지만 우리가 그를 제지하며 군주가 내릴 처분을 기다리라고 말했다는 것.

連穀而死: 고사기 『춘추지명고략』: “초 성왕이 신으로 들어가 머물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두예는 ‘신 방성의 안쪽에 있었기 때문에 입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자옥이 전쟁에 패한 후 왕이 사람을 보내 ‘대부가 이 곳에 들어와 무슨 낯으로 신과 식 읍의 부형들을 볼 것인가?’라고 말했다. 그를 방성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연곡은 방성의 바깥이고 그곳에서 죽은 셈이다.” 연곡은 어디인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두예: “연곡에 도달했는데 왕이 용서하지 않자 자살했다.” 『좌전·문공10년』의 기사를 보면, “성복의 전투에서 초 성왕은 이를 생각해내고 사람을 보내 자옥의 죽음을 제지했다. ‘죽지 마라!’그러나 사신이 제 시간에 도달하지 못했다. 자서도 목을 맸지만 줄이 끊어졌고, 사자가 제때 도착하여 그를 구했다.” 그러므로 초 성왕은 두 번에 걸쳐 사자를 보냈는데 첫번째는 죽이려고 두번째는 살리려고 한 것이었지만 자옥은 이미 늦은 상태였다. 「초세가」: “성왕이 노하여 자옥을 죽였다.” 「진세가」: “자옥이 자살했다.” 대체로 성왕이 앞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죽이고자 하였으므로 자옥은 명을 따른 것일뿐이다.

晉侯聞之而後喜可知也: 두예: “기쁜 안색이었다.” 지 같다. 『여씨춘추·자지편』: “진 문공은 드러내 놓고 기뻐하진 않았지만 안색으로 보아 알 수 있었다.” 즉 안색이 드러났다고 풀이했고, 『회남자·수무훈』: “술 한 잔을 들었고 안색은 알 수 없었다.” 양리승의 『보석』을 참조하라.

: 莫余毒也已. 蔿呂臣實爲令尹: 위려신蔿呂臣 『좌전·희공23년』에 보이는 숙백이다.

奉己而已不在民矣: 두예: “그는 자신만을 위할 뿐 큰 뜻이 없다.『한시외전7』과 「진세가」는 이 사건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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