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나라의 멸망과 불거不舉 (춘추좌전.6.4.6.)

초나라가 강나라를 멸하였다. 목공이 강나라를 위해 소복을 입고 정침에 머물지 않았으며 식사의 찬을 줄이고 음악을 연주하지 않았다. 목공의 애도가 법도보다 과했기 때문에 대부가 간언했다. 목공이 말했다. “동맹이 멸망했는데 구원하지는 못할 망정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스스로 두려워하고 삼가는 것이다.

군자가 말했다. 『시』(『대아·황의』)에 ‘하와 상은 정치가 민심을 얻지 못했다. 천하의 제후들은 살 방법을 궁리하고 또 궁리하였다.’라고 말한다. 아마도 진 목공을 두고 한 말이다.


원문

人滅秦伯爲之降服出次過數. 大夫諫. 公曰: 同盟滅雖不能救敢不矜乎? 吾自懼也.君子曰: “『, ‘惟彼二國其政不獲; 惟此四國爰究爰度’,秦穆之謂矣.


관련 주석

人滅: 『좌전·문공15년』의 “범례에 따르면, 승국을 멸이라 한다(凡勝國曰滅之)”는 기사에 대해 두예는 “승국이란 그 나라의 사직을 절단내고 영토를 소유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좌전·양공13년』에서도 “대규모 군사를 투입한 것을 일러 멸이라 한다(用大師焉曰滅)”란 말이 있는데 대체로 『좌전·문공15년』에서 말한 뜻을 취한 것이다.

 

춘추좌전 지도 - 강나라

人滅秦伯爲之降服出次過數: 강복降服 소복素服이다. 『좌전·성공5년』에 상세하다. 출차는 정침正寢에서 거처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불거는 성찬을 물리치고 음악을 연주하지 않다. 『좌전·장공20년』의 주석에 자세하다. 과수過數 법도에 정해진 예의 등급(禮數)보다 더하다. 타국의 멸망을 애도하는 것에도 일정한 예의 등급이 있다. 『좌전·애공11년』의 “제나라에서 도공을 시해하고 부고를 전해오자 오왕은 군문의 밖에서 사흘간 곡을 했다.”는 기사는 타국의 군주가 피살되었을 경우의 예수를 적고 있다. 그렇다면 타국이 멸망당했을 때 취하는 예수는 어떠한가? 비록 이에 대해 잘 알 수는 없지만, 『좌전』의 본문에 근거하면 진 목공은 “소복을 입고 정침에서 거처하지 않았고, 성찬을 들 때 음악을 곁들이지 않았다.”라고 했으므로 더욱 예의 등급이 심했다. 『좌전·애공20년』 월나라가 오나라를 포위하여 오나라의 멸망이 눈 앞에 다가오자 (부친 조간자의 상중에 있던) 진나라의 조맹趙孟 역시 “상중의 음식의 가짓수를 내렸다(降於喪食).”고 한다.

大夫諫. 公曰: 同盟滅: 진과 강은 동성의 나라이면서 동맹국이었다.

雖不能救敢不矜乎?: 슬퍼하다.

吾自懼也.: 주석 없음.

君子曰: “『,’惟彼二國其政不獲; 惟此四國爰究爰度: 『시·대아·황의』의 시구이다. 모전은 두 나라를 “은나라와 하나라”라고 설명한다. 불획에 대해 두예는 “인심을 얻지 못함”으로 풀이했다. 우성오는 『택루거독시찰기澤螻居讀詩札記(『문사』제1)에서 “”은 “치 혹은 “□”로서 법도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불획은 법도에 부합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두 설명 모두 통한다. 하지만 앞글 “求民之莫()”으로 보면 두예의 해석이 더 적절하다. 사국은 사방의 국가들이다. 은 언의 용법과 같고 이 때문에(於是)의 뜻이다. 『좌전』에서 시를 인용한 뜻은 하나라와 은나라의 정치가 인심을 얻지 못하여 결국 멸망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천하의 제후들은 이를 거울로 삼고 여기에서 교훈을 얻어 잘 도모해야 해야 함을 말한다. 진 목공이 스스로 자중하고 두려워했다는 말이 이것이다.

秦穆之謂矣: “의”를 금택문고본에선 “호”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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