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삭告朔 (춘추좌전.6.6.9)

윤월에 고삭을 거행하지 않은 것은 예가 아니다. 윤월을 두어 시를 바르게 하고 때에 맞춰 농사일을 하고 이를 통해 삶을 윤택하게 한다. 백성을 양육하는 방법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윤월에 고삭을 하지 않는 것은 시정時政을 버린 것이니 어떻게 백성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원문

閏月不告朔非禮也. 閏以正時時以作事事以厚生生民之道於是乎在矣. 不告閏朔棄時政也何以爲民.


관련 주석

閏月不告月猶朝于廟: 『좌전』은 “閏月不告朔으로 설명한다. 즉 “告月”은 고삭告朔 같다. 고삭은 매월 초하루에 신께 보고하는 일이다. 『논어·팔일편』의 “자공이 고삭할 때 양을 희생으로 쓰는 예를 없애고자 하였다.”는 말을 보면 고삭에 특양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고삭을 마친 후에는 조정에서 그 달의 정무에 대해 듣는데 이것을 청삭聽朔이라 한다. 『예기·옥조』의 “천자는 남문 밖에서 청삭하는데, 윤월에는 합문의 왼쪽문 가운데에 선다. 제후들은 피변皮弁 쓰고 태묘에서 청삭을 한다.”는 기사가 바로 이를 말한다. 청삭을 또 시삭視朔이라고도 한다. 『좌전·은공5년』의 “시삭을 마치고(公旣視朔), 문공 16년의 『춘추』와 『좌전』의 “네 번이나 시삭하지 않고(公四不視朔)”등이 그 예다. 이 예를 마친 후에 여러 사당에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조묘朝廟라고 한다. 본문의 “猶朝于廟”가 이것이다. 또 이를 월제月祭라고도 하는데, 『예기·제법祭法』의 “그 모든 묘에 월제를 지낸다(皆月祭之)”라는 문구가 그 예다. 이와 똑같이 한 해의 정월에 거행하는 것을 조정朝正이라 한다. 『좌전·양공29년』의 “양공이 정월에 종묘에 제사드리지 못한 이유를 해석한 것이다(釋不朝正于廟)”가 그 예다. 맨 먼저 고삭하고, 시삭(청삭)하며 그 후에 조묘한다. 이 세 가지는 한날에 행한다. 고삭과 시삭은 모두 태묘에서 행한다. 손이양의 『주례·춘관·태사』의 『정의』에선 매우 자세하게 이를 분별하여 설명하고 있다. 참고할 만하다. 또 공영달 본 『소』와 『예기·옥조』의 『소』는 『주례·춘관·사존이司尊彝』의 “조향朝享”을 조묘라고 하는데 따를 수 없다. 조향이란 사계절 사이에 드리는 제사이지 월제가 아니다. 이 역시 손이양의 『주례정의』에 자세하다. 제소남의 『고증』에선 “(본문의) 고삭과 시삭을 하지 않고 단지 조묘의 예만 행한 것을 말하고, 특양은 제사에 사용했음이다. 『춘추』에서 기롱한 것은 고삭의 예를 하지 않은 것에 국한된다.”고 설명한다.

 

閏月不告朔: 고삭은 『춘추』의 “고월”에 해당한다. 경문의 주석을 참조하라.

非禮也. 閏以正時: 달이 지구를 한 번 도는데 걸리는 시간 즉 항성월은 평균적으로 27.32166일이다. 고대에는 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근사치를 얻을 수 있었다. 서주로부터 현재까지 소위 음력이란 초하루()에서 그믐()까지를 한 달의 수로 사용했다. 고대의 삭실朔實 현재 평삭월平朔月이라고 한다. 고대인들은 대략 29.530585일로 한달의 날짜를 계산하여 근대에 측정한 29.53059와 약간의 차이가 있다. 1평삭월을 29.5일로 계산했기 때문에 반드시 대월大月 30일과 소월小月 29일로 나누어 삭일에 부합하게 할 수 있었다. 일식은 반드시 삭일에 발생한다. 『시·소아·시월지교』의 “초하루 신묘일에 일식이 있었다(朔日辛卯, 日有食之)”라는 문구로서 이를 알 수 있다. 만약 매년 12개월로 계산하면 한 해는 354일 혹은 355일이 된다. 그러나 지구가 태양을 한번 공전하는데는 365.24219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회귀년 하는데 차이가 생겨 평균적으로 매년 10 21시간의 오차가 생긴다. 주요 절기인 분·지·계·폐와 사계절은 반드시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것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윤월을 두어 미세한 차이를 보정해야 한다. 그래야 사시가 바르게 된다. 본문의 “윤월을 가지고 사계절을 바르게 한다閏以正時”는 뜻이다.

時以作事: 『수서·경적지』는 “時以序事”로 인용한다. 절기와 기후를 따라서 생산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시·빈풍·칠월』의 “일월엔 쟁기 손질하고(三之日于)”와 “이월엔 밭 가는데(四之日擧趾), “봄날 햇살 따스해지고 꾀꼬리 울기 시작하면 여인네들은 음푹한 대광주리 들고 오솔길 따라 부드러운 뽕잎 따러 가네(春日載陽, 有鳴食庚. 女執懿筐, 遵彼微行, 爰求柔桑)” 등이 이를 말한다.

事以厚生: 생산활동은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의식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

生民之道於是乎在矣: 백성을 부양하는 방법은 바로 여기에 있다는 뜻.

不告閏朔棄時政也何以爲民: 위민은 치민, 백성을 다스린다는 말과 같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