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처보陽處父 (춘추좌전.6.5.5.)

진의 양처보가 위나라를 예방하고 돌아오는 길에 영(하남성 획가현獲嘉縣 서북쪽)을 지나치는데 그 지역의 대부 영영이 그를 섬기기로 마음먹고 따라 나섰다. 처보를 따라 온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그의 처가 까닭을 물으니 영영이 대답하였다. “성정이 너무 강하오. 「상서商書」에 ‘성정이 차분하여 유약한 사람은 강함으로 보완하고, 성정이 고명하여 강한 사람은 부드러움으로 보완한다.’는 말이 있소. 양처보는 강함 일색이니 죽임을 당하지 않을 수 있겠소! 하늘의 덕은 강건하나 사계절의 순리에 간섭하지 않거늘 하물며 사람이겠소? 또 꽃이 화려하게 만개했으나 과실을 맺지 못하면 원망이 모이는 법이오. 타인을 과하게 비방하면 원망이 모여 몸을 온전히 보존할 수 없소. 나는 이익은 얻지 못하고 그 때문에 곤경에 처할까 두렵소. 그래서 그를 떠난 것이오.( 6.6.6.) 

이해 진의 조성자(조최), 난정자(난지), 곽백(선차거) 그리고 구계(서신)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원문

晉陽處父聘于反過從之. 而還. 其妻問之. : 以剛. 商書: 沈漸剛克高明柔克.夫子壹之其不沒乎! 天爲剛德猶不于時況在人乎? 且華而不實怨之所聚也. 犯而聚怨不可以定身. 余懼不獲其利而離其難是以去之.

晉趙成子·欒貞子·霍伯·臼季皆卒.


관련 주석

晉陽處父聘于反過: 은 진나라 읍이다. 『좌전·정공원년』에서 위헌자가 돌아와 영에서 죽었다고 쓴 것으로 입증된다. 그 땅은 현 하남성 획가현獲嘉縣 서북쪽, 수무현修武縣 동쪽에 해당한다.

從之: 영영에 대해 가규와 공조가 주석한 『국어』의 내용을 보면, 여행객을 대접하는 일을 관장하는 대부라고 쓰고 있고 두예의 주석 역시 같다. 그러나 유현은 여관逆旅 주인이라고 말한다. 공영달의 『소』는 “만약 그가 여객의 주인이라면 그 신분은 서인에 지나지 않아 비천한 사람이다. 마치 중 지역의 여관 주인에 장문중에게 고했던 일이나 중구重丘 사람이 손삭을 꾸짖었던 예처럼 그 사람을 칭할 때 단지 ‘’이라고 하지 어찌 『좌전』에서 씨와 이름을 얻어 기록할 수 있었겠는가? 두예는 『좌전』에 그의 이름과 씨가 기록된 것을 보고 역려를 관장하는 대부라고 풀이한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진어5」에선 “양처보가 위나라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영땅을 지나는데 역려인 영영씨 집에 묵었다. 영이 그 처에게 ‘내가 군자를 찾은지 이미 오래인데 오늘 그런 사람을 얻었네.’라고 말하고서 양처보를 따라나섰다.”라고 쓴다.

而還: 「진어5」는 “양자가 그와 함께 말하며 가는데 산에 이르러서 그가 집으로 돌아갔다.”는 대목에 대해 위소는 “산은 하내의 온산이다.”라고 설명한다. 온산은 현 하남성 수무현의 북쪽 50리 떨어진 곳이다.

其妻問之. : 以剛: 지나치게()의 뜻이다.

商書: 沈漸剛克高明柔克.: 『상서·홍범』의 문구이다. 「홍범」은 현재는 『상서·주서』에 속해 있다. 그러나 『좌전』에서 모두 3차례 「홍범」의 문장을 인용하는데, 성공 6년과 양공 3년을 포함하여 모두 「상서商書」라고 인용하고 있다. 이는 고대에 이 편이 「商書」에 속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침점沈漸 현재의 『상서』에선 “沈潛”으로 쓴다. 반면 『사기·송세가』에선 역시 “沈漸”으로 쓴다. 그리고 『한서·곡영전』에 “장군은 어찌 숨은 뜻을 잊고(意豈將軍忘湛漸之義)”라는 말이 있는데 잠을 점으로도 쓴다. 잠과 점은 소리가 가까워 글자가 통한다. 이 구절에 대해 예로부터 두 가지 해석이 있어 왔다. 하나는 침잠과 고명은 사람의 유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사기·송세가』의 『집해』에선 마융의 주장을 인용하여, “침은 음, 잠은 복의 의미이다. 즉 숨겨진 음모, 말하자면 난신적자란 하루아침에 불쑥 생기는 것이 아니다. 군주와 부모에 대해 시역할 생각이 없어야 한다. 그런 의사가 있다면 즉시 주살해야 한다. 고명한 군자는 덕을 가지고 사람을 품는 것을 말한다.” 즉 침잠은 난신적자로, 고명은 군자로 해석하여 소위 난신적자는 마땅히 강함으로 쳐내야 하고 군자는 부드러움으로 약점을 극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다른 해석은 침잠과 고명을 사람의 본성으로 본다. 두예는 “침잠은 차분하고 유약한 성격(滯溺)과 같고, 고명은 호쾌한 성격(亢爽)과 같다. 각자 강함과 부드러움으로 자신의 본성의 부족한 점을 극복하여 본성을 완성한다는 뜻이다.”라고 풀이한다. 『좌전』의 뜻을 자세히 보면 두예의 해석이 진실에 가깝다.

夫子壹之: 일지란 양처보의 성격이 고명하고 부드러움이 없이 강함이 더해졌다는 뜻.

其不沒乎! 天爲剛德猶不于時: 「홍범」에 대한 공영달의 『소』: “이 말은 하늘 역시 부드러운 덕을 가지고 있어서 사계절의 질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況在人乎? 且華而不實: 행동이 지나친 것이 마치 꽃은 만개했지만 과실을 맺지 못함과 같다는 뜻.

怨之所聚也: 「진어5」는 “신실하지 않아 사람들의 원망이 모이게 된다(非其實也, 怨之所聚也)”라고 쓰는데 뜻은 같다.

犯而聚怨: 성격이 강하여 타인을 범하고 스스로는 화려하지만 신실함은 없기 때문에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일을 간섭하여 원망을 모은다.

不可以定身. 余懼不獲其利而離其難: 걸리다/만나다()의 뜻이다.

是以去之.: 두예는 “『좌전·문공6년』에 진나라에서 양처보를 죽인 사건의 배경이다.”라고 설명한다. 이 장은 다음 해 “이에서 군사훈련을 했다.”는 『좌전』과 함께 읽어야 한다. “양처보가 온에서 돌아왔다.”는 단락은 이 장과 정확히 상응하는 내용이며 이 단락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晉趙成子·欒貞子·霍伯·臼季皆卒: 조성자는 조최이다. 희공 31년 진나라는 청원에서 군사훈련을 했는데, 「진어4」는 “조최를 신상군의 장수로 삼았다.”라고 말하고, 문공 2년 팽아의 전투에 대한 『좌전』에서는 “선차거가 중군의 장수가 되고 조최가 그의 부장이었다.”는 기사가 있다. 즉 조최는 앞서 신상군의 장수였는데 이어 중군의 보좌가 되었다. 난정자는 난지이다. 『좌전·희공27년』에 “난지가 하군의 장수가 되었다.”라는 기사가 있어 그가 하군의 장수였음을 알 수 있다. 곽백과 선차거는 선진의 아들이다. 희공33, 그의 부친을 대신하여 중군을 지휘하였다. 곽은 그의 채읍이다. 『좌전·민공원년』의 주석에 자세하다. 구계는 서신인데 『좌전·희공33년』의 주석을 함께 참조하라. 『좌전·희공28년』의 “서신이 하군을 보좌했다.”는 기사가 있다. 이 단락은 다음 해의 『좌전』 “6년 봄 진나라는 이에서 군사훈련을 했다.”는 기사와 이어서 읽어야 한다. 「년표」는 이 해에 대해 “조성자와 난정자, 곽백 그리고 구계가 모두 죽었다.”라고 쓰고 있어서 『좌전』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고, 문공 5년의 사건으로 기록한다. 「진어5」의 위소의 주석 역시 “노나라 문공 5년 진나라의 네 명의 경이 죽었다.”라고 기록하여 사마천과 위소가 근거한 『좌전』에 실제로 이 단락이 문공 5년에 기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서한 이후로 『좌전』의 표면적인 배열이 이미 이와 같았다. 문장이 비록 하나의 기세이긴 해도 편년으로 역사를 구성하다 보니 부득이 두 해로 나누지 않을 수 없었다. 「진세가」는 “구계臼季”를 “구계자범咎季子犯”으로 “구”를 “구”로 잘못 쓰고 있다. 그것은 서신을 자범으로 오해하여 『좌전』과 다르다. 이 사건과 양처보와 영영의 일화는 다음해 이에서 펼쳐진 진나라의 군사 훈련 내용은 모두 하나의 연속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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