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나라의 멸망 (춘추좌전.8.9.10.)



겨울 11, 초나라의 자중子重(공자영제)이 진에서 출발해 거나라를 정벌하고 거구渠丘를 포위했다. 거구의 성벽은 조악했고 백성은 뿔뿔이 흩어져 도성 거로 도망쳤다. 술신일(5), 초군이 거구로 쳐들어갔다. 거나라 병사들이 초나라의 공자평公子平을 사로잡았다. “죽이지 말라. 네 포로들을 돌려 주겠다라고 초군이 말했지만 거나라는 그를 죽이고 말았다. 초군이 거를 포위했다. 거의 성벽 역시 부실했고 경신일(17) 거성이 붕궤되었다. 초나라는 그 길로 운으로 쳐들어 갔는데 거나라에 대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


군자는 말한다. “외진 곳에 있다는 것만 믿고 대비를 하지 않았으니 잘못 중에서도 가장 크다.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는 일은 선 중에서도 가장 크다. 거나라는 궁벽한 지리만 믿고 성곽을 보수하지 않았기에 겨우 열이틀만에 초나라가 세 곳의 성을 점령할 수 있었으니 모두 대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는 말한다. ‘실과 삼이 있더라도 거친 솔새와 기름사초를 버려서는 안 되며, 희성과 강성의 아름다운 여인이 있더라도 박색의 여인을 내쳐서는 안된다. 무릇 군자는 이것이 부족하면 저것으로 대체하지 않음이 없나니.’ 이는 대비는 중지할 수 없는 일임을 말한 것이다.


원문

冬十一月楚子重渠丘. 渠丘城惡衆潰. 戊申渠丘. 人囚楚公子平. 人曰: 勿殺吾歸而俘.人殺之. 師圍. 城亦惡庚申. 遂入無備故也. 君子曰: 恃陋而不備罪之大者也; 備豫不虞善之大者也. 恃其陋而不修城郭浹辰之間克其三都無備也夫! : 雖有絲·無棄菅·; 雖有·無棄蕉萃; 凡百君子莫不代匱.言備之不可以已也.


주석

冬十一月楚子重渠丘: 『청일통지』에 따르면, 거구는 현 거현의 북쪽이다. 그러나 초나라가 거나라를 정벌할 때 무엇하러 길을 돌아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공격하겠는가? 거구는 거현의 동남쪽으로 생각된다.




渠丘城惡衆潰. 戊申: 술신일은 5일이다

渠丘. 人囚楚公子平. 人曰: 勿殺吾歸而俘.人殺之. 師圍. 城亦惡庚申. 遂入無備故也: 주석 없음.

君子曰: 恃陋而不備: 는 지난해 거나라 군주가 “궁벽한 이 땅에 있는”이란 말에 해당한다

罪之大者也; 備豫不虞: 의외의 사태에 대비함.

善之大者也. 恃其陋而不修城郭浹辰之間: 은 “땀이 흘러 등을 흠뻑 적시다(汗流浹背)”의 협으로서 두루(). 에서 까지 12진이다. 여기서는 술신일에서 경신일까지 지지가 한 번 돌 때이므로 12일 사이이다

克其三都: 세 곳의 성은 거구渠丘·거·운이다. 운은 거의 북쪽에 위치하였으므로 초나라 군사가 운에 진입한 일은 당연히 경신일에 거가 붕궤된 후의 일이지만 옛 사람들의 언어는 후대처럼 정밀하지는 못하다

無備也夫! : 雖有絲·無棄菅·: 음은 간, 음은 괴 상성으로서 모두 다년생 식물이다. 고대인들이 자리나 신발 등을 짤 때에 사용했다. 왕인지의 『술문』에선 이 네 가지가 모두 신발을 만드는 재료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회남자·설림훈』의 “큰 영화를 가진 사람도 초췌한 면이 있고, 흰 비단을 소유한 사람도 반드시 마나 괴를 가지고 있다(有榮華者, 必有憔悴; 有羅紈者, 必有麻蒯).”에서 라환은 신발을 만드는 재료가 아니다. 그러므로 왕인지의 설명을 다 믿을 수는 없다. 문구의 뜻은 상등과 중등 하등의 재료가 모두 준비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雖有·無棄蕉萃: 전설에 따르면, 황제의 성은 희이고, 염제는 강이다. 당시 주나라 왕실의 성은 희이고, 제나라는 강이므로 희와 강은 두 개의 큰 성이다. 초췌는 안색이 초췌함이다. “희강”과 “초췌”는 대구를 이룬다. 옛 사람들은 다수 희와 강 미녀를 대표한다고 여겼는데 예를 들면 『시·진풍·동문지지』의 “저 아름답고 정숙한 희성의 여인, 함께 만나 노래부를만 하네(彼美淑, 可與晤歌)”나 「형문」의 “어찌 아내를 얻는데 반드시 제나라의 어여쁜 아가씨여만 하는가(豈其取妻, )” 등의 시구가 그러하다. 본문에서는 아름다운 부인 때문에 어여쁘지 않은 여인을 내칠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凡百君子莫不代匱.: 부족함. 대궤는 혹은 이것이 혹은 저것이 부족함이다. 현재의 『시』에는 이 문구가 없다. 두예는 “잃어버린 시”라고 설명했다

言備之不可以已也.: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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