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관南冠을 쓴 영인泠人 종의鍾儀 (춘추좌전.8.9.9.)



진 경공이 군부軍府를 시찰하다가 종의鍾儀를 보고, 그에 대해 물었다. (8.7.4.) “남관南冠을 쓴 채 잡혀 있는 자가 누구인가?” 관리가 대답했다. “정나라에서 바친 초나라의 포로입니다.” 경공이 명하여 그를 석방했다. 종의를 불러 위로하자 그는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경공이 그의 족(세관世官)을 물었다. 종의가 대답했다. “음악을 담당하는 영인泠人입니다.”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가?” “선친의 직관인데 감히 다른 일에 종사했겠습니까?” 사람을 시켜 그에게 금을 주니 남방 지역의 음악을 연주했다. “초나라 군왕은 어떤 사람인가?” “감히 소인이 알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경공이 집요하게 묻자, 대답했다. “군주께선 태자 시절에 사와 보가 보좌하여 아침에는 영제(자중)에게, 저녁에는 측(자반)에게 가서 가르침을 받게 했습니다. 그 외는 알지 못합니다.” 

경공이 범문자에게 종의에 대해 말하니, 그가 말했다. “초나라의 포로는 군자입니다. 아뢸 때 선친의 직분을 언급했으니 근본을 배신하지 않았고; 고향의 음악을 연주했으니 고국을 잊지 않았으며; 초군의 태자 때의 일을 언급한 것을 보면 사심이 없습니다; 두 경을 호칭할 때 이름으로 아뢰었으니 군주를 높인 것입니다. 근본을 배신하지 않았으니 인이요, 고국을 망각하지 않았으니 신입니다. 사심이 없으니 충이고, 군주를 높일 줄 아니 총명함입니다. 인으로 업무를 대하고, 신의로 일을 지키며, 충으로 일을 성취하고, 총명으로 일을 실행합니다. 설사 큰 일이라도 반드시 성사시킬 것입니다. 어찌하여 군주께선 그를 돌려보내 양국 간의 우호를 성취하게 하지 않으십니까?” 경공은 그의 조언을 따라, 종의를 후하게 예우하고 초나라로 돌아가 양국의 우호를 구하게 했다.



원문


晉侯觀于軍府鍾儀. 問之曰: 南冠而誰也?有司對曰: 人所獻囚也.使稅之. 召而弔之. 再拜稽首. 問其族. 對曰: 泠人也.公曰: 能樂乎?對曰: 先父之職官也敢有二事?使與之琴操南音. 公曰: 君王何如?對曰: 非小人之所得知也.固問之. 對曰: 其爲大子也·保奉之以朝于嬰齊而夕于. 不知其他.公語范文子. 文子: 君子也. 言稱先職不背本也; 樂操土風不忘舊也; 稱大子抑無私也; 名其二卿尊君也. 不背本仁也; 不忘舊信也; 無私忠也; 尊君敏也. 仁以接事信以守之忠以成之敏以行之. 事雖大, 必濟. 君盍歸之使合·之成.公從之, 重爲之禮使歸求成.


주석

晉侯觀于軍府鍾儀: 종의가 군부에 수감된 일은 『좌전·성공7년』의 기사를 참조.
問之曰: 南冠而誰也?: 『회남자·주술훈』에 초 문왕이 해관獬冠 쓰는 것을 좋아했더니 초인이 그것을 본받았다는 얘기가 실려 있다. 남관이란 혹시 이 해관이 아닌가 싶다. 「주어중」에 “진 영공과 공녕 그리고 의행보가 남관을 쓰고서 하씨의 집으로 갔다”는 기사가 있다. 진나라 사람 역시 이 관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채옹의 『독단』과 『후한서·여복지』의 『주석』에서부터 공영달의 『소』에서 인용한 응소의 『한관의』에 보면, 진이 초를 멸한 후에 남관을 근신 어사들에게 하사했다고 말한다. 『전국책·진책5』에는 “여불위가 초나라 복장을 한 채 알현했다(不韋使服而見)”는 기사가 있는데, 여기서 초복은 초나라 사람들의 복장이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사람들의 관복은 다른 나라와는 달랐음을 알 수 있다.
有司對曰: 人所獻囚也.使稅之: “세”는 “탈”의 뜻이고, 감금을 풀어줬다는 말.
召而弔之: 는 위문함.
再拜稽首: 종의가 진 경공에 대해 재배계수하고 그의 위로에 감사를 표함.
問其族: 『여씨춘추·이보편』의 “그의 명족名族 물었다”에서 족 성씨이다. 그런데 본문은 문맥을 보면 이 족은 성씨로 해석할 수 없다. 『좌전·은공8년』의 “관직에서 대대로 공로가 있다면, 관직 명을 족성으로 삼았다(官有世功, 則有官族)”의 족은 관직에서 유래한다. 본문의 족자는 대대로 잇는 관직(世官)의 뜻으로 보는 것이 옳다.
對曰: 泠人也.: 영인泠人은 악관으로서 “영인伶人”으로 쓰기도 한다. 「주어하」의 “편종이 완성되자 영인을 시켜 화음을 맞추게 했다(鍾成伶人告和)”는 기사로 입증할 수 있다. 혹은 “령” 한 글자로 쓸 수도 있다. 「노어하」의 “령에게 피리를 불어 노래와 「녹명」의 삼장을 연주하게 했다”로 입증된다.
公曰: 能樂乎?對曰: 先父之職官也敢有二事?: 음악은 선친의 직분이었으므로 자신이 감히 어떻게 다른 일에 종사할 수 있겠는가라는 뜻.
使與之琴操南音: 남방 각지의 악조를 모두 남음이라고 한다. 『여씨춘추·음초편』에 남음은 하우 시절에 도산의 여인이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公曰: 君王何如?對曰: 非小人之所得知也.固問之. 對曰: 其爲大子也·保奉之: 초 공왕이 태자였던 시절, 부친 장왕은 그를 위해 사부를 선택했고, 가르칠 학문을 생각했었던 일이 「초어상」에 보인다. 고대 제왕은 태자에 대해 부·사·보 등의 관리들을 동원하여 교육했다. 『예기·문왕세자』는 “태부와 소부를 세워 세자를 가르치고 부자와 군신의 예를 가르친다. 역사를 가르치며 여러 덕과 관련된 일을 암송하게 하고, 몸을 삼가 보좌하고, 올바른 길로 들어서게 한다.
以朝于嬰齊而夕于: 이른 아침에 영윤 자중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저녁에는 사마 자반을 방문한다.
不知其他.公語范文子. 文子: 君子也. 言稱先職不背本也; 樂操土風: 토풍은 본향 본토의 악조로서 남음을 말한다.
不忘舊也; 稱大子抑無私也: 은 발어사. 진 경공이 초나라 군주에 대해 묻자 초 공왕의 태자 시절의 얘기로써 대답하여, 초나라 군주가 어렸을 때부터 현명했음을 말하고, 초군을 칭찬하는 뜻을 표하면서도 아첨하는 말이 없었다.
名其二卿尊君也: 예에 따르면 군주의 면전에선 신하는 부친이라도 바로 그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종의는 자중(그의 이름이 영제)과 자반(이름은 측)의 이름을 불러서 진 경공을 높이는 예를 표시했다.
不背本仁也; 不忘舊信也; 無私忠也; 尊君敏也. 仁以接事信以守之忠以成之敏以行之: 이 세 개의 “”자는 모두 앞의 사 가리킨다.
事雖大, 必濟. 君盍歸之使合·之成.公從之, 重爲之禮使歸求成: 주석 없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