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나라, 정나라를 정벌하다 (춘추좌전.8.16.4.)

위 헌공이 정나라를 정벌하여 명안 鳴鴈 ( 하남성 기현 杞縣 의 북쪽 ) 에 이르렀는데 진나라의 명령이었다 . 원문 (8.16.4.)  衛侯 伐 鄭 , 至于 鳴鴈 , 爲 晉 故也 . 주석 ▣ 衛侯 伐 鄭 , 至于 鳴鴈 : 명안 鳴鴈 은 현 하남성 기현 杞縣 의 북쪽이다 . ▣ 爲 晉 故也 : 진나라가 정나라를 공격하려고 했기 때문에 위나라가 먼저 출병한 것이다 .

송나라를 침략한 정나라, 작릉汋陵 (춘추좌전.8.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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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나라의 자한 子罕 이 송나라를 정벌했고 , 송의 장서 將鉏 와 악구 樂懼 가 작피 汋陂 ( 하남성 상구 商丘 와 녕릉 寧陵 의 중간 ) 에서 정나라 군을 물리쳤다 . 송군이 퇴각하여 부거 夫渠 에 주둔했는데 경계에 태만했다 . 정나라가 병사를 매복시켜 작릉 汋陵 ( 하남성 영릉현 寧陵縣 의 남쪽 ) 에서 송군을 물리치고 장서와 악구를 사로잡았다 . 송나라가 승리에 자만했기 때문이다 . 원문  (8.16.3.)  鄭子罕 伐 宋 , 宋將鉏 · 樂懼 , 敗諸 汋陂 . 退 , 舍於 夫渠 , 不儆 . 鄭 人覆之 , 敗諸 汋陵 , 獲 將鉏 · 樂懼 . 宋 恃勝也 . 주석 ▣ 鄭子罕 伐 宋 , 宋將鉏 · 樂懼 , 敗諸 汋陂 : 두예는 장서 將鉏 는 악씨의 일족이라고 했고 , 공영달의 『소』는 “출신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 악구 樂懼 는 공영달의 『소』에서 인용한 『세본』을 보면 , 대공의 6 세손이라고 한다 . 작피 汋陂 는 송나라 땅으로서 마종연의 『보주』는 작피와 같고 , 현 안휘성 수현의 남쪽에 있는 안풍당이라고 한다 . 그러나 정나라 군사가 송나라를 정벌할 때 , 멀리 안휘성 수현까지 올 수는 없으므로 그의 주장은 확실히 잘못되었다 . 문맥으로 볼 때 하남성 상구 商丘 와 녕릉 寧陵 의 중간에 있어야 한다 . ▣ 退 : 송나라 군사의 퇴각 . ▣ 舍於 夫渠 : 부거 夫渠 는 작피와 멀지 않아야 한다 . ▣ 不儆 : 경계를 하지 않았다 . ▣ 鄭 人覆之 : 복병으로 습격하다 . 춘추시대 지도. 작릉 汋陵 ▣ 敗諸 汋陵 : 『원화지』에 따르면 , 작릉은 현 하남성 영릉현 寧陵縣 의 남쪽이다 . ▣ 獲 將鉏 · 樂懼 . 宋 恃勝也 : 주석 없음 .

등문공 (춘추좌전.8.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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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4 월 , 등 문공이 타계했다 . 원문 (8.16.2.)  夏四月 , 滕文公 卒 . 주석 ⊙ 夏四月辛未 : 신미일은 5 일 . ⊙ 滕子 卒 : 『춘추』에서 등나라 군주의 죽음을 기록하면서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이 모두 세 차례이다 . 은공 7 년의 “ 滕侯卒 ” , 선공 9 년과 올해의 “ 滕子卒 ” 등이 그러하다 . 자세한 설명은 『춘추·선공 9 년』의 주석을 참조 . 춘추시대 지도. 등나라(滕) ▣ 夏四月 , 滕文公 卒 : 주석 없음 .

초 공왕 정나라에 강화를 요구하다 (춘추좌전.8.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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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75년. 주 간왕 11년, 진 여공 6년, 초 공왕 16년, 정 성공 10년 성공 16 년 봄 , 초 공왕이 무성 武城 ( 하남성 남양시 南陽市 북쪽 ) 에 머물며 공자성 公子成 을 보내 여음 汝陰 의 땅을 내주고 정나라에 강화를 요구했다 . 정나라는 진나라를 배신했고 , 자사 子駟 는 초 공왕이 머무는 무성으로 가서 결맹했다 . 원문 (8.16.1.)  十六年春 , 楚子 自 武城 使 公子成 以 汝陰 之田求成于 鄭 . 鄭 叛 晉 , 子駟 從 楚子 盟于 武城 . 주석 ▣ 十六年春 , 楚子 自 武城 使 公子成 以 汝陰 之田求成于 鄭 : 무성은 『좌전·희공 6 년』의 주석을 참고 . 공자성은 이미 『좌전·성공 6 년』에 언급 . 고동고의 『대사표』 7-4 에서 초나라의 영역은 여수의 남쪽까지라고 한다 . “여음 汝陰 의 땅”은 그러므로 현 래현 郲縣 과 섭현 葉縣 의 사이여야 한다 . 춘추지도. 여음汝陰 ▣ 鄭 叛 晉 , 子駟 從 楚子 盟于 武城 : 자사는 곧 공자비 公子騑 이다 . 『좌전·성공 14 년』에 보인다 .

허나라, 섭葉으로 천도 (춘추좌전.8.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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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영공이 정나라의 핍박을 두려워하여 초나라에 천도를 요청했다 . 신축일 (3 일 ), 초나라의 공자신 公子申 이 허나라의 국도를 섭 葉 으로 천도했다 . 원문 (8.15.7.)  許靈公 畏偪于 鄭 , 請遷于 楚 . 辛丑 , 楚公子申 遷 許 于 葉 . 주석 ▣ 許靈公 畏偪于 鄭 : 지난해에 두 차례 허나라를 침략했고 결국 허나라는 “숙신이 봉건받은 땅”을 주고서 강화했었다 . ▣ 請遷于 楚 . 辛丑 : 신축일은 3 일이다 . 춘추시대 지도. 섭현葉縣 ▣ 楚公子申 遷 許 于 葉 : 옛 섭성은 현 하남성 섭현 葉縣 의 서남쪽이다 . 허나라가 천도한 후 본토는 정나라 소유가 되었고 정나라는 그 곳을 “ 舊許 ”라고 불렀다 . 이후 허나라는 초나라의 부용국이 되었고 , 진나라가 주도하는 회맹과 정벌 등에 따르지 않고 , 대신 초나라에 일이 있을 경우 동원되지 않은 적이 없다 .

종리鍾離의 회합, 오나라와의 첫 통교 (춘추좌전.8.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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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월 , ( 숙손교여 가 진나라의 사섭 , 제나라의 고무구 , 송나라의 화원 , 위나라의 손림보 , 정나라의 공자추 , 주 邾 나라 군주와 ) 종리 鍾離 ( 안휘성 봉양현 鳳陽縣 동북쪽 ) 에서 오나라와 회합을 가졌는데 중원의 나라들이 처음으로 오나라와 통교한 것이다 . 원문 (8.15.6.)  十一月 , 會 吳 于 鍾離 , 始通 吳 也 . 주석 참고  『춘추』원문.  冬十有一月 , 叔孫僑如 會 晉士燮 · 齊高無咎 · 宋華元 · 衛孫林父 · 鄭公子鰌 · 邾 人會 吳 于 鍾離 . 『춘추』에서 두 개의 “회”자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 , 두예는 오나라가 이의 나라이고 그 이전에 중원의 나라들과 왕래한 적이 없었으며 이때가 처음이다 . 그래서 진나라가 제후의 여러 대부를 이끌고 그들과 회합했기 때문에 두 개의 “회”자를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 명대 왕초의 『춘추집전』에선 제후들의 대부들끼리 먼저 회합한 후 오나라와 회합을 가졌기 때문이며 , 『춘추』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고 주장했다 . 추 鰌 의 음은 추 秋 이다 . 종리 鍾離 는 『노사』에선 국명이라 한다 . 상세한 내용은 『좌전』의 주석을 참조 . 춘추시대 지도. 종리鍾離 ▣ 十一月 , 會 吳 于 鍾離 : 두예 : “종리 鍾離 는 초나라 읍이다 . ” 그러나 제후들과 오나라가 서로 초나라 경내에서 만난다는 것은 자못 이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 두예의 그런 주석은 『좌전·소공 4 년』의 “초 함윤 의구가 종리에 성을 쌓았다”는 말에 근거한 것인데 이 성은 오나라를 대비했던 일이다 . 종리는 본래 소국으로서 『수경·회수주』와 『사기·오자서열전』의 『색은』에서 『세본』을 인용하여 종리는 영성의 나라로 ( 『통지·씨족략 3 』에선 희성이라 말하는데 믿기 어렵다 ) 서 이 당시 존속했는지 멸망당했는지는 상세하지 않다 . 또 종리는 오나라와 초나라의 경계에 위치한 적도 있는데 , 『곡량전·소공 4 년』의 “경봉을 오나라 종리에 봉했다”는 기사를 보면 종리는 이미 멸망하여 오와...

백종伯宗과 백주리伯州犁 (춘추좌전.8.15.5.)

진 晉 의 극기 , 극주 그리고 극지 가 백종 伯宗 을 해치려고 참소하여 죽였는데 난불기 欒弗忌 까지 화가 미쳤다 . 백 주리 伯州犁 는 초나라로 망명했다 . 한헌자가 말한다 . “극씨는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 선인은 하늘과 땅을 잇는 벼리인데 빈번하게 그 벼리를 끊어내니 죽음이 아니면 달리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 ” ( ☞ 8.17.10.)  애초 , 백종이 입조할 때마다 그의 처가 경고했었다 . “‘간악한 자는 주인을 증오하고 백성은 위정자를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 당신은 직언을 좋아하시니 필경 곤경에 빠질 것입니다 . ” 원문  (8.15.5.)  晉 三 郤 害 伯宗 , 譖而殺之 , 及 欒弗忌 . 伯州犁 奔 楚 . 韓獻子 曰 : “ 郤 氏 其不免乎 ! 善人 , 天地之紀也 , 而驟 絕 之 , 不亡 , 何待 ? ” 初 , 伯宗 每朝 , 其妻必戒之曰 : “ ‘ 盜憎主人 , 民惡其上 . ’ 子好直言 , 必及於難 . ” 주석 ▣ 晉 三 郤 害 伯宗 : 삼극은 극기 , 극주 그리고 극지를 말한다 . 백종은 『좌전·선공 15 년』의 주석을 참조 . ▣ 譖而殺之 , 及 欒弗忌 : 「진어 5 」의 위소의 주석에 난불기는 백종의 무리라고 한다 . 『좌전』은 백종을 참소한 일의 피해가 난불기까지 이어졌다고 하는데 , 「진어 5 」에선 “난불기가 난을 일으켜 여러 대부가 백종을 해쳤다”고 하여 주장이 다르다 . ▣ 伯州犁 奔 楚 : 백주리 伯州犁 는 백종의 아들이다 . 「진어 5 」에 따르면 , 백주리를 보호하여 초나라로 도망칠 수 있게 한 사람이 필양이라고 한다 . 백주리가 초나라로 망명한 후 태재가 된 일은 다음해의 『좌전』과 『좌전·소공원년』등에 보인다 . ▣ 韓獻子 曰 : “ 郤 氏 其不免乎 ! 善人 , 天地之紀也 : 한궐은 백종과 난불기 모두 선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 ▣ 而驟 絕 之 : 취 驟 는 여러 번이다 . 앞뒤로 두 사람을 해쳤기 때문에 취라고 말했다 . ▣ 不亡 , 何待 ? ” : 성공 17 년에 진나라가 삼극을 죽인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