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서거 (춘추좌전.8.18.11)

성공의 서거 기축일 (7 일 ), 『춘추』에 “ 성공이 노침에서 서거했다 .” 라고 쓴 것은 도리에 맞았음을 언급한 것이다 . 원문 (8.18.11)  己丑 , 公薨于路寢 , 言道也 . 주석 ▣ 己丑 , 公薨于路寢 , 言道也 : 『춘추·장공 33 년』의 주석에 자세한 설명이 있다 .

유원지 조성 (춘추좌전.8.18.10.)

유원지 조성 노나라가 녹 鹿 에 유원지를 조성했다 . 『춘추』에 기록한 까닭은 공사가 때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 원문 (8.18.10)  築 鹿 囿 , 書 , 不時也 . 주석 ⊙ 築 鹿 囿 : 『춘추』에선 세 번 “ 築囿 ”를 언급한다 . 본문과 소공 9 년의 “ ( 築 郞 囿 ) ” , 정공 13 년의 “ ( 築 蛇淵 囿 ) ”가 있다 . “낭”과 “사연”은 모두 지명이므로 본문의 “록”역시 당연히 지명이다 . “록유”는 사슴을 기르는 공원은 아닐 것이다 . ▣ 築 鹿 囿 , 書 , 不時也 : 주나라의 8 월은 하력으로 6 월이므로 농사일로 바쁠 때이다 . 토목공사에 힘쓸 때가 아니다 .

주邾 선공이 내조했다 (춘추좌전.8.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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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선공이 내조하다 8 월 , 주 邾 선공이 내조했는데 , 즉위하여 우리나라에 와서 조견한 것이다 . 원문 (8.18.9.)  八月 , 邾 宣公 來朝 , 卽位而來見也 . 주석 ▣ 八月 , 邾 宣公 來朝 , 卽位而來見也 : 지난해 12 월의 『춘추』에서 “주나라 군주 확차가 죽었다”고 적었다 . 주 선공이 올해 즉위했다 .  춘추시대 지도. 주나라

송나라, 팽성을 포위하다 (춘추좌전.8.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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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성을 포위한 송나라 7 월 , 송나라의 노좌 老佐 와 화희 華喜 가 팽성 彭城 ( 강소성 서주시 徐州市 ) 을 포위했지만 노좌가 팽성에서 전사했다 . 원문 (8.18.8.)  七月 , 宋老佐 · 華喜 圍 彭城 , 老佐 卒焉 . 주석 ▣ 七月 , 宋老佐 · 華喜 圍 彭城 : 노좌는 당시 사마였음이 『좌전·성공 15 년』의 기사에 보인다 . 춘추시대 지도. 팽성 彭城 ▣ 老佐 卒焉 : 두예 : “팽성의 전투을 이기지 못한 사실을 말한 것이다 . ”

진나라에 성혼을 요청하는 기나라 (춘추좌전.8.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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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에 성혼을 요청하는 기나라 가을 , 기 杞 환공이 내조하여 성공의 노고를 위로하고 , 또 진나라의 상황을 물었다 . 성공이 진 도공에 대해 얘기했다 . 기 환공은 이 때문에 급히 진나라를 예방하고 혼사를 청했다 . 원문 (8.18.7.)  秋 , 杞桓公 來朝 , 勞公 , 且問 晉 故 . 公以 晉 君語之 . 杞伯 於是驟朝于 晉 而請爲昏 . 주석 ▣ 秋 , 杞桓公 來朝 , 勞公 , 且問 晉 故 . 公以 晉 君語之 : 두예 : “진 도공의 덕정에 대해 얘기했다 . ” 춘추시대 지도. 기 杞 나라 ▣ 杞伯 於是驟朝于 晉 而請爲昏 : 취 驟 에는 빠름과 자주의 두 가지 뜻이 있다 . 당시 기 환공은 즉위한 지 64 년이 되는 해였으므로 매우 연로했다 . 그러므로 자주의 뜻보다는 신속하게 뜻으로 보는 것이 옳다 .

진나라의 범선자가 노나라를 답방하다 (춘추좌전.8.18.6.)

범선자가 답방하다  성공이 진나라로부터 돌아와 종묘에서 음지를 거행했다 . 진의 범선자가 와서 빙문했고 , 또 성공의 조견에 사례했다 . 군자는 이 때문에 진나라가 예를 갖췄다고 말했다 . 원문 (8.18.6.) 公至自 晉 . 晉范宣子 來聘 , 且拜朝也 . 君子謂 晉 於是乎有禮 . 주석 ▣ 公至自 晉 . 晉范宣子 來聘 , 且拜朝也 : 노 성공이 진 도공을 예방한 것에 대한 답방이었다 . ▣ 君子謂 晉 於是乎有禮 : 소국의 군주가 대국을 예방하면 대국의 경이 예방에 대해 답방하는 것이 나라 간 왕래의 예이다 .

초 공왕이 팽성彭城을 탈취해 어석에게 주다 (춘추좌전.8.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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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성을 탈취해 어석에게 준 초나라 여름 6 월 , 정 성공이 송나라를 침략하여 조문 曹門 ( 서북문 ) 밖에 이르렀다 . 이어 초 공왕과 회합하여 송나라를 정벌하고 조겹 朝 郟 ( 하남성 하읍현 夏邑縣 ) 을 빼앗았다 . 초나라 자신 子辛 과 정나라 황신 皇辰 이 성고 城郜 ( 안휘성 소현 蕭縣 ) 를 침략하여 유구 幽丘 ( 안휘성 소현 蕭縣 ) 를 탈취했다 . 함께 팽성 彭城 ( 강소성 서주시 徐州市 ) 을 공격해 송나라의 어석 , 상위인 , 인주 , 향대 그리고 어부 등을 그곳으로 들여보냈으며 300 대의 전차로 팽성을 수비하게 하고 돌아왔다 . ( ☞ 8.15.4.) 『춘추』에선 “부입 復入 ”으로 썼다 .  범례에 따르면 , 군주 및 신하가 나라를 떠났다가 국인들이 그를 영접하여 옹립하는 경우 “입 入 ”으로 쓰고 , 과거 그의 지위를 회복하는 경우 “복귀 復歸 ”라고 하며 , 제후들이 호위하여 들여보내는 경우 “귀 歸 ”로 쓰 고 , 국인의 동의없이 들어오는 경우 이를 미워하여 “부입 復入 ”으로 쓴다 .  송나라 사람들은 어석 등이 팽성으로 들어간 것을 걱정했다 . 서서오 西鉏吾 가 말했다 . “왜 걱정하십니까 ? 만약 초나라가 우리와 함께 어석 등을 미워하고 덕으로 우리를 대한다면 진심으로 초나라를 섬기고 감히 두 마음을 품지 않으면 됩니다 . 그러나 대국이 만족을 모르고 우리를 그들의 읍으로 삼더라도 오히려 유감으로 생각한다면 우리의 우환이 될 것입니다 . 그렇게 하지 않고 우리가 미워하는 이들을 거두어 그들을 사주하여 국정에 간섭하고 틈을 엿본다면 이 역시 우리의 근심거리입니다 . 현재 초나라는 제후들의 간신들을 높이고 땅을 떼어 교통의 요지를 막고 있습니다 . 간신들의 뜻을 만족시키고 기왕에 복종했던 나라들을 이탈케 하며 , 길이 막힌 제후에게 해를 끼쳐 오나라와 진나라를 두렵게 만들고 있으니 우리에겐 이익이 많은 일이지 근심거리는 아닙니다 . 우리가 무엇 때문에 진나라를 섬겼습니까 ? 진나라는 필시 우리를 도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