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항헌자中行獻子, 평음平陰 전투(춘추좌전.9.18.3)


평음平陰 전투


가을, 제 양공이 우리 노나라 북쪽 변방을 정벌했다.


진의 중항헌자中行獻子(순언)가 제나라를 정벌하려할 때, 꿈에 여공과 송사를 벌였는데 이기지 못했다. 꿈 속에서 여공厲公이 과로 헌자를 내리쳐 그의 목이 떨어졌고, 헌자는 무릎을 꿇고 떨어진 자신의 머리를 손에 들고 도망가다가 경양梗陽(산서성 청서현淸徐縣)에 사는 무당 고를 만났다. 어느 날 헌자가 길에서 무당 고를 만나 꿈 얘기를 해주자 그 역시 동일한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올해 주군께선 필경 돌아가실 것입니다. 만약 동쪽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곳에서 죽게 될 것입니다.” 헌자는 그의 말에 수긍했다. ( 8.18.1.) 


진 평공이 제나라 정벌에 나서 황하를 건널 때, 헌자는 두 쌍의 옥을 붉은 실로 묶고, 하신河神에게 기도를 드렸다. “제나라 군주 환이 지세의 험함과 많은 백성을 믿고, 우호를 버리고 맹세를 배신하여 신주神主를 능멸했습니다. 신령의 증신曾臣(평공)가 제후들을 거느리고 그를 토벌하고, 표의 관신官臣이 실로 그를 앞뒤로 보좌합니다. 만약 전쟁에서 공을 세워 신명께 수치를 끼치지 않을 수 있다면, 관신 언은 감히 다시 황하를 건너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신명께선 이 기도를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마친 헌자가 황하에 옥을 예물로 바치고 도강했다


겨울 10, 제후들이 노나라 쪽 제수濟水에서 회합하고 취량의 맹세를 재차 확인했다. 함께 제나라를 정벌했다. 제 영공이 평음平陰(산동성 제남시)에서 연합군을 방어하려고 방문防門에 참호를 파고 수비했는데 그 폭이 1리에 달했다. 숙사위夙沙衛가 말했다. “맞서 싸울 수 없습니다. 험한 지세에 의지해 지키는 것이 낫습니다.” 영공은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제후들의 병사들이 성문을 공격했고 많은 제나라 병사들이 전사했다. 범선자가 제나라의 대부 석문자析文子(자가)에게 말했다. “내가 그대를 잘 아니 감히 사실을 속이겠는가? 노나라와 거나라가 각각 천승의 병거를 거느리고 자국에서 출동해 제나라로 쳐들어가겠다고 청하여 이미 허락했다. 만약 그들이 쳐들어오면 귀국 군주는 필경 나라를 잃을 것인데 그대는 왜 이런 상황을 헤아리지 않는가!” 자가가 영공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자 그는 두려움에 떨었다. 안영이 정황을 전해듣고 말하였다. “우리 군주는 실로 용맹이 없는데, 이런 말까지 들었으니 아마 싸움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영공이 무산巫山에 올라 진나라 진영을 바라봤다. 진나라는 사마에게 산택의 지세를 살펴 병사가 도달할 수 없는 곳이라도 반드시 깃발을 듬성듬성 세워 진세를 펼치게 했다. 전차병 중 좌측은 실제로 병사를 배치하되 우측은 가짜 병사를 세웠으며, 깃발을 앞세워 가되 병거에 짚을 매달아 먼지를 일으키며 뒤따르게 했다. 영공이 진나라 진영을 보고 그 수에 겁을 먹고 이내 홀로 진영을 벗어나 도망쳤다. 병인일 그믐, 제나라 군이 어둠을 틈타 도망치기 시작했다. 진의 사광師曠이 평공에게 아뢰었다. “까마귀 울음소리가 음악처럼 들리니 제군은 퇴각한 것 같습니다.” 형백邢伯이 중항백(순언)에게 보고했다. “퇴각하는 말의 울음소리가 들리니 제군이 달아난 것 같습니다.” 숙향이 평공에게 알렸다. “성 위에 새가 앉아 있는 걸 보니 제나라 군사는 도망친 것 같습니다.” 


11월 정묘일 초하루, 연합군이 평음平陰으로 입성했고 곧이어 제군의 뒤를 추격했다. 숙사위가 큰 수레들을 이어 길을 막고 후위를 수비했다. 식작殖綽과 곽최郭最가 말했다. “환관인 네가 왕군의 후위를 맡는 것은 제나라의 수치이다. 앞으로 가라.” 그리고 대신 후위를 맡았다. 숙사위는 말을 죽여 길을 막았다. 의 주작州綽이 쫓아와 식작에게 화살을 날려 어깨를 적중했는데 두 화살이 목을 사이에 두고 양쪽 어깨를 맞췄다. 주작이 외쳤다. “멈춰라, 그러면 우리 삼군의 포로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네 머리를 쏠 것이다.” 식작이 돌아보며 말했다. “맹세할 수 있는가?” “해를 두고 맹세한다.” 이내 주작이 시위를 풀고 식작의 뒤로 가 포박했다. 거우 구병具丙 역시 병기를 내려 놓고 곽최를 포박했다. 두 명 모두 갑옷은 벗기지 않은 채 포박하여 중군의 북 아래에 앉혔다


진나라는 퇴각하는 제나라 군을 추격하고 싶었지만 노나라와 위나라는 험지의 요새를 공격하기를 청했다. 을묘일(13), 순언과 사개가 중군을 지휘하여 경자京茲(평음현平陰縣 동남쪽)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을유일(19), 위강魏絳과 난영欒盈은 하군을 이끌고 시(평음현平陰縣 서쪽 12)에서 승리했다. 조무趙武와 한기韓起는 상군을 이끌고 로(장천현長淸縣 서남쪽 25)포위했지만 함락하지 못했다. 12월 무술일(2), 진주秦周까지 진격하여 옹문雍門(제나라 국도의 서문) 주변의 오동나무를 벌목했다. 범앙范鞅은 옹문을 공격했고 그의 마부 추희追喜가 창으로 성문에 있던 개를 죽였다. 맹장자孟莊子는 참죽나무를 베어 양공을 위해 거문고를 만들었다. 기해일(3), 옹문과 서쪽의 외성 그리고 남쪽의 외성에 불을 질렀다. 유난劉難과 사약士弱은 제후들의 군사를 이끌고 신지申池(신문은 제나라 도성의 남쪽에 있는 첫 번째 문이고 신지는 신문의 바깥에 있다.) 대숲을 불질렀다. 임인일(6), 동쪽과 북쪽의 외성을 불지르고 범앙이 양문揚門(서북문)을 공격했다. 주작은 동문인 동려東閭를 공격했는데 병거의 좌측 말이 좁은 통로에 끼어 성문 가운데에서 빙빙 돌았는데 그 와중에 그는 문짝에 박힌 쇠못의 숫자를 세었다


제 영공이 수레에 멍에를 메고 우당郵棠(산동성 평도현平度縣 동남쪽)으로 도망치려 할 때, 태자와 곽영郭榮이 말고삐를 당기며 말하였다. “적의 진격이 빠르고 맹렬하니 노략질을 위한 것입니다. 곧 물러갈 것인데 군주께선 왜 두려워하십니까? 또 사직의 주인은 경거망동해서는 안 됩니다. 경솔히 행동하면 대중의 신임을 잃으니 군주께선 반드시 기다리셔야 합니다!” 그런데도 영공은 둘을 짓밟고 도망치려 했다. 결국 태자가 검을 빼어 말의 가슴걸이를 자른 후에야 멈췄다. 갑진일(8), 동쪽으로 유수, 남쪽으로 기수沂水까지 진군이 이르렀다.



원문 (9.18.3.)

齊侯伐我北鄙. 中行獻子將伐夢與厲公弗勝. 公以戈擊之首隊於前跪而戴之奉之以走梗陽巫皋. 他日, 見諸道與之言, . 巫曰: 今茲主必死. 若有事於東方則可以逞.獻子許諾.

晉侯將濟獻子以朱絲係玉二, 而禱曰: 齊環怙恃其險負其衆庶棄好背盟 陵虐神主. 曾臣將率諸侯以討焉其官臣實先後之. 苟捷有功無作神羞官臣無敢復濟. 唯爾有神裁之.沈玉而濟.

冬十月會于魯濟之言. 同伐. 齊侯禦諸平陰防門而守之, 廣里. 夙沙衛: 不能戰莫如守險.弗聽. 諸侯之士門焉人多死. 范宣子析文子, : 吾知子, 敢匿情乎? ·人皆請以車千乘自其旣許之矣. 若入君必失國. 子盍圖之!子家以告公. 公恐. 晏嬰聞之, : 君固無勇而又聞是弗能久矣.

齊侯巫山以望. 人使司馬斥山澤之險雖所不至必旆而疏陳之. 使乘車者左實右輿曳柴而從之. 齊侯見之畏其衆也乃脫歸. 丙寅晦師夜遁. 師曠晉侯: 鳥烏之聲樂師其遁.邢伯中行伯: 有班馬之聲師其遁.叔向晉侯: 城上有烏師其遁.

十一月丁卯朔平陰遂從. 夙沙衛連大車以塞隧而殿. 殖綽·郭最: 子殿國師之辱也. 子姑先乎!乃代之殿. 殺馬於隘以塞道. 晉州綽及之殖綽, 中肩兩矢夾脰. : 將爲三軍獲; 不止將取其衷.顧曰: 爲私誓.州綽: 有如日!乃弛弓而自後縛之. 其右具丙亦舍兵而縛郭最皆衿甲而縛坐于中軍之鼓下.

人欲逐歸者·請攻險. 己卯荀偃·以中軍克京茲. 乙酉魏絳·欒盈以下軍克; 趙武·韓起以上軍圍弗克. 十二月戊戌秦周, 雍門之萩. 范鞅門于雍門其御追喜以戈殺犬于門中; 孟莊子斬其以爲公琴. 己亥雍門及西郭·南郭. 劉難·士弱率諸侯之師焚申池之竹木. 壬寅焚東郭·北郭范鞅門于揚門. 州綽門于東閭左驂迫還于門中以枚數闔.

齊侯將走郵棠. 大子與郭榮扣馬, : 師速而疾略也. 將退矣君何懼焉? 且社稷之主不可以輕輕則失衆. 君必待之!將犯之. 大子抽劍斷鞅乃止. 甲辰東侵及南及.



주석

齊侯伐我北鄙. 中行獻子將伐夢與厲公弗勝: 순언이 진 여공을 살해한 일은 성공 17년과 18년의 기사 참조.

公以戈擊之首隊於前: 는 갈고리 형태의 병기이다. 과로 적의 목을 끌어당겨 자를 수 있다. 순언의 꿈에서 목이 떨어진 이유이다. 떨어짐()와 같다.

跪而戴之奉之以走: 떨어진 목을 손에 들고 다시 떨어뜨리지 않게 도망친 것.

梗陽巫皋: 이상은 순언의 꿈을 서술한 것. 경양梗陽 진나라의 읍으로 현 산서성 청서현淸徐縣 내에 있다. 무당의 이름이다.

他日, 見諸道: 길에서 무고를 만난 것.

與之言, : 순언이 꿈을 얘기하자 무고 역시 같은 날 같은 꿈을 꾸었다고 말한 것.

巫曰: 今茲主必死: 금자今茲 금년. 「진어8: 三世仕家君之再世以下主之 이 말은 어떤 대부의 가신을 삼대 이상 한 사람은 대부를 ‘군’이라 부르고, 2대 이하는 대부를 ‘주’라고 부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좌전』에 입각해서 보면 꼭 이와 같지는 않다. 성공 이전에는 대부에 대해서 모두 으로 불렀다. 양공 이후에는 대부에 대해서 라고 호칭한다. 가신이 대부에 대해 주라고 부를 뿐만 아니라 본문의 경우처럼 무고가 순언에 대해서도 또 곡옥 사람이 난영에 대해서도 그리고 성전과 위무가 위서에 대해서, 사흑과 공손표가 조앙에 대해서도 비록 그의 가신이 아니지만 모두 주라고 호칭했다. 심지어는 난기는 사개에게 부이고, 난염에 대해 부이지만 모두 라고 불렀다. 진나라의 의화가 조무에 대해, 위나라의 태자 괴외가 조앙에 대해 모두 타국 사람이지만 역시 주라고 호칭했다. 즉 동렬의 사람 역시 주라고 부른 경우가 있다. 사개가 순언에 대해, 조앙이 순역에 대한 것이 그 예다.

若有事於東方則可以逞.: 뜻을 이루다라는 뜻. 순언이 비록 내년 2월에 죽지만 이것은 주나라 달력이고 진나라는 하력을 사용하므로 하력으로는 이해 12월이 된다. 그러므로 “금년 그대가 죽을 것”이라는 말과 부합된다.

獻子許諾: 주석 없음.

晉侯將濟獻子以朱絲係玉二: 음은 각이다. 쌍옥이고 각으로도 쓴다.


중국_섬서_호구폭포
호구폭포


而禱曰: 齊環怙恃其險負其衆庶: 믿다. 중서는 사람의 수가 많음.

棄好背盟 陵虐神主: 두예: “신주神主는 백성이다.

曾臣將率諸侯以討焉: 증신曾臣은 신하의 신하(陪臣배신)의 뜻. 증과 배는 모두 ‘중복(평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천자는 신에 대해 신하이고 제후는 천자에 대해 신하이므로 제후는 신령에 대해 증신/배신이 된다. 제후는 천자에 대해 신하이고 제후의 신하는 천자에 대해 증신이 된다. 장문리의 『루강일기』, 오개생의 『문사견징』이 이 설명과 같다. 는 진 평공의 이름이다.

其官臣實先後之: 관신官臣 『주례·대종백』의 “六命賜官”의 정현 주석에 근거하면, 천자의 명을 받아 스스로 관리를 두어 가읍家邑 관리하는 제후의 신하를 관신이라 한다. 장총함의 『두주변증』과 서효시의 『좌전정전』에 설명이 자세하다. 두예의 “관직이 있는 신하이다”라는 주석은 정확하지 않다. 『시·대아·면』의 “予曰有先後”에 대한 모『전』: “서로 앞뒤로 이끄는 것을 선후라 한다.” 선후는 돕다(贊佐)의 뜻과 유사하다.

苟捷有功: 첩은 곧 유공有功이다. 전공을 말한다. 사어가 중복된 것.

無作神羞: 두예: “수 수치이다.

官臣無敢復濟: 순언은 무고의 말을 신뢰하여 자신이 필경 죽을 것을 알았다. 그래서 다시 강을 건너오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

唯爾有神裁之.: 사두로서 뜻이 없다.

沈玉而濟: 주석 없음.

冬十月會于魯濟: 노나라 쪽에 있는 제수를 노제라 한다.

之言: 취량의 결맹은 양공 16. “한 마음으로 불충한 제후를 토벌한다.”라는 맹세를 했다. 제나라는 본래 진나라와 동맹을 맺었지만 최근 4년간 6번이나 노나라의 읍을 공격했다. 이것이 맹세를 배반한 내용이다.



춘추지도_평음平陰
춘추시대 지도.평음


同伐. 齊侯禦諸平陰: 평음平陰 현 산동성 평음현平陰縣 동북쪽 35리이다.

防門而守之, 廣里: 음은 흠이고 구덩이를 파다. 방문防門은 옛 평음의 남쪽에 있었다. 현 평음현 동북쪽 약 32리 떨어진 곳. 광리에 대해 두예는 판 구덩이의 넓이가 1( 392m)가 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수경주·제수편』에서 경상반의 말을 인용하여 “평음성 남쪽에 장성이 있다.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제수에 이른다. 물길이 발원하는 곳을 방문防門이라 부른다. 평음에서 3리 떨어진 곳인데 제후가 방문에 해자를 판 곳이 바로 이곳이다. 방문의 북쪽에 광리光里 있고 제나라 사람들의 발음으로는 광과 광 음이 같다.” 광리를 지명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防門, 而守之廣里”로 끊어 읽는다. 그러나 제후들의 군사가 노제에서 출발하여 제나라를 향해 갈 때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한다. 광리는 방문의 북쪽에 있어야 한다. 즉 제후들의 군사가 온 방향과는 반대가 된다. 또 방문에서 해자를 파고 평음에서 적을 방어해야 하기 때문에 다음 글에서 평음으로 들어갔다고 말했지 광리로 들어갔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광리가 지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수경주』의 주장은 취하지 않는다.

夙沙衛: 不能戰莫如守險.: 두예: “방문은 지세가 험한 요새가 아니어서 방어하기에 적당하지 않다.『관자·경중정편』: “장성의 남쪽은 노나라이고 북쪽은 제나라이다.” 심흠한의 『보주』는 『관자』에서 말한 장성은 즉 태산을 경계로 한 것이라고 말한다. 숙사위의 뜻은 아마 태산의 험난한 지세를 의지해서 수비하려는 것이고 방문에 참호를 파서 거점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

弗聽. 諸侯之士門焉: 문은 방문을 공격하다.

人多死. 范宣子析文子: 두예: “석문자는 제나라 대부 자가子家이다.

: 吾知子: 이해하다.

敢匿情乎? ·人皆請以車千乘自其: 은 향 같고 지금은 향으로 쓴다. 노나라는 제나라 도읍 임치에서 서남쪽에 있고, 거나라는 제나라의 도읍에서 동남쪽에 있다. 자기향인自其 두 나라의 군사가 하나는 서북쪽으로 다른 하나는 동북쪽으로 진격하여 함께 제나라 도읍을 공격함이다.

旣許之矣. 若入: 2천승의 병력이 제나라 도읍을 공격해 들어가다.

君必失國: 국은 국가. 국도가 파괴되면 각국의 병사가 모두 국경을 넘어 들어가니 필경 나라가 멸망할 것.

子盍圖之!: 何不 합음자. 위협하는 말이다.

子家以告公. 公恐. 晏嬰聞之, : 君固無勇而又聞是弗能久矣.: 두예는 “진나라를 오랫동안 적으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곧 항복할 것).”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안영의 본뜻은 제나라 영공의 명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뜻으로 생각된다.

齊侯巫山以望: 무산巫山은 산동성 비성현肥城縣 서북쪽 60(즉 평음현의 동북쪽) 떨어진 곳에 있고 일명 효당산孝堂山이라고도 부른다.

人使司馬斥山澤之險: 은 개척/배제의 뜻.

雖所不至必旆而疏陳之: 지세가 험한 곳을 골라서 비록 군사들이 갈 수 없는 곳이라도 큰 깃발은 꽂을 수 있기 때문에 듬성듬성 깃발을 세우라는 것.

使乘車者左實右: 전차에 올라타는 사람은 셋이다. 중앙과 좌우. 좌측은 실제로 병사가 타고 우측은 사람을 태운 것처럼 가장하다.

: 큰 깃발을 세워 먼저 나아가게 하다.

輿曳柴而從之: 흙먼지를 일으켜 마치 대군이 달려가는 듯이 보이게 하다. 희공 28년 성복의 전쟁 때도 진나라는 이 계략을 써서 초나라 군사를 유인했다.

齊侯見之畏其衆也乃脫歸: 탈귀는 제나라 군사들로부터 혼자 도망쳐 돌아감이다.

丙寅晦: 10월은 작은 달이다. 회는 29일이다. 회를 쓴 까닭은 달빛이 없는 틈을 타서 도망간 것을 말한 것.

師夜遁. 師曠晉侯: 鳥烏之聲樂: 조명鳥烏은 그저 새의 뜻. 『예기·예운』의 다랑어(魚鮪어유)가 그저 다랑어 가리킨 것과 같다. 『손자·행군편』: “새가 모여 있다는 것은 그곳이 비어있다는 것이다(자를 명으로 잘못썼다).” 『좌전·장공28년』의 “초나라 막사에 새가 앉아 있다.”는 기사나 다음에 나오는 “성 위에 새가 앉아 있다.” 등 옛 사람들은 새의 동태를 보고 적진의 상황을 예측했다.

師其遁.邢伯中行伯: 두예: “형백은 진나라 대부 형후邢侯이다. 중항백은 헌자이다.

有班馬之聲師其遁.: 반마班馬는 심흠한의 『보주』에서 『역·둔괘』六二 「효사」 “乘馬班如”는 말이 돌기만 하고 머뭇거리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음이다. 혜동의 『보주』와 풍등부의 『십삼경고답문』에선 반 두 글자는 고대에 통한다고 말한다. 반마는 즉 돌아가다(還馬)라는 뜻이다. 후자의 설명이 비교적 낫다.

叔向晉侯: 城上有烏師其遁.: 성은 평음성을 가리킨다.

十一月丁卯朔平陰遂從. 夙沙衛連大車以塞隧而殿: 끌다()의 가차이다. 여기서는 동사로 쓰였다. 수레를 끌다. 산속의 좁은 길이다. 『장자·마제편』의 “산 속에 좁은 길이 없다(山無蹊隧)”는 말로 입증할 수 있다.

殖綽·郭最: 子殿國師之辱也. 子姑先乎!乃代之殿. 殺馬於隘以塞道: 『수경·제수주』와 『원화군현지』에 따르면, 현 산동성 장청현 동남쪽이 위가 길을 막은 곳이며 격마산隔馬山이라고 부른다.

晉州綽及之: 추격하여 그곳에 이르다.

殖綽, 中肩兩矢夾脰: 음은 두이고 목을 말한다. 주작이 두 발의 화살을 쏴 하나는 왼쪽 어깨에 하나는 오른쪽 어깨를 적중시켰다. 모두 목과 가까운 부분이다. 그래서 화살들이 목을 끼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 將爲三軍獲; 不止將取其衷.: 은 중심. 즉 만약 다시 도망치지 않으면 우리 삼군의 포로로 삼겠지만 다시 도망치면 내 화살이 너의 목을 적중시킬 것이다.

顧曰: 爲私誓.: 개인간의 맹세를 사서라고 한다. 식작은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했다.

州綽: 有如日!乃弛弓而自後縛之: 활시위를 내려 놓다. 그리고 뒤로 돌아가 식작의 손을 묶었다.

其右具丙亦舍兵而縛郭最: 기우는 주작의 거우이다. 거우는 창과 방패를 많이 사용한다. 사병舍兵 병기를 내려 놓다.

皆衿甲而縛: 두예: “금갑은 갑옷을 벗기지 않음이다.” 이박은 스스로 손을 묶다.

坐于中軍之鼓下: 주석 없음.

人欲逐歸者·請攻險. 己卯: 기묘일은 13일이다.

荀偃·以中軍克京茲: 경자는 현 평음현平陰縣 동남쪽이다.

乙酉: 19.

魏絳·欒盈以下軍克: 음은 시이다. 『청일통지』는 시산은 평음현平陰縣 서쪽 12리 떨어진 곳이라고 말한다.

趙武·韓起以上軍圍: 현 장천현長淸縣 서남쪽 25리 떨어진 곳. 『좌전·은공3년』을 참조.

弗克. 十二月戊戌: 무술일은 2일이다.

秦周: 『여씨춘추·권훈편』: 달자가 나머지 군사를 이끌고 진주에 주둔했다. 혜동의 『좌전보주』는 혜사기의 설과 양옥승의 『여자교보』를 인용하여 진주는 옹문의 근처라고 말했는데 신뢰할 만하다. 제후들의 군사는 이미 제나라 도읍 임치에 도착해서 외곽을 포위했다.

雍門之萩: 곧 오동나무()이다. 개오동나무()으로도 쓴다. 『안자춘추·외편』: “경공이 청실에 올라 바라보니 옹문 근처에서 오동나무()를 베는 사람이 보였다.” 낙엽수이며 교목이다. 목질이 단단하여 여러 기구를 만들 수 있다. 옹문은 『전국책·제책』1과 『회남자·관명훈』의 주석에서 모두 제나라 서문의 이름이라고 한다.

范鞅門于雍門其御追喜以戈殺犬于門中; 孟莊子斬其以爲公琴: 음은 순이고 (참죽)나무의 이름이다. 거문고나 수레바퀴를 만들 수 있다. 혹은 춘으로도 쓴다. 호위의 『우공추지』7에 설명이 있다. 여기서 공은 노 양공을 말한다. 혜사기는 공금公琴이란 『좌전·양공2년』에 나오는 송금頌琴이라고 설명한다. 은 고자가 통한다.

己亥: 3일이다.

雍門及西郭·南郭. 劉難·士弱率諸侯之師焚申池之竹木: 유난과 사약은 진나라 대부이다. 신지申池 신문申門 바깥에 있다. 경상번京相 두예는 모두 신문은 제나라 도성의 남쪽에 있는 첫 번째 문이라고 했다. 『진서·모용덕재기』의 “서인 중 연장자들에게 신지申池에서 연회를 베풀었다”는 기사의 신지가 이곳이다. 신지에는 대나무가 많다.

壬寅: 6일이다.

焚東郭·北郭范鞅門于揚門: 원나라 때의 우흠의 『제승』에 따르면, 양문은 제나라 도성의 서북문이다.

州綽門于東閭: 동려는 제나라의 동문이다.

左驂迫: 은 좁다. 전차들로 막히고 도로가 넓지 않아서 왼쪽의 말이 밀려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다.

還于門中: 본래는 “東門中”으로 쓰여 있지만 여기서는 『교감기』를 따라 “동”자를 삭제했다. 주작의 병거가 동문에서 선회하다.

以枚數闔: 『좌전·양공21년』: “주작이 말했다: ‘동문의 싸움에서 소신의 병거 좌측 말이 밀려서 문안으로 되돌아가 쇠못의 숫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매자의 뜻이 같다. 『주례·고공기·부씨鳧氏: “종대鍾帶이라 하고, 사이를 매라 부른다.” 정중은 이에 대해 “매는 종유鍾乳이다.”라고 설명했다. 초순의 『좌전보소』: “문짝 위에 쇠못을 박아 놓은 것이 마치 종유같기 때문에 매라고 한 것이다. 매수합枚數闔이란 문짝에 박혀 있는 못의 수를 센 것이다.” 후대의 성문과 궁문에는 청동으로 종유를 만들었다.

齊侯將走郵棠: 우당郵棠『좌전·양공6년』의 당이다. 현 산동성 평도현平度縣 동남쪽으로 생각된다. 해당 주석을 참조하라.

大子與郭榮扣馬: 대자는 태자 광이다. 곽영은 제나라 대부이다. 『설문』은 구 말을 끄는 것이라고 했다. 『이아·석고』는 구는 붙잡다. 왕념손의 『소증』: “구는 굳게 지키다(堅持)의 뜻이다.

: 師速而疾略也: 은 제후들의 군대의 행군이 매우 빠르다는 의미. 『좌전·성공16년』의 “其行速”으로 입증할 수 있다. 은 공격이 매우 맹렬하다. 『좌전·양공11년』의 기사 참조. 은 물자를 노략하다.

將退矣: 이렇게 빨리 행군하면 지구전으로 땅을 취할 수 없다.

君何懼焉? 且社稷之主不可以輕: 경은 엄중하게 지탱하다의 반대말. 경은 경거망동하여 도주하다.

輕則失衆. 君必待之!將犯之: 제 영공은 이 두 사람 앞을 돌진하여 밟고 지나가려 했다. 『소이아·광언』: “범은 돌파함이다.” 「단궁하」의 “다른 사람의 벼를 밟고 지나가다(犯人之禾).”에 대해 “(범은) 밟음이다.”라고 풀이했다.

大子抽劍斷鞅: 음은 앙이다. 말의 목을 거는 가죽끈. 태자는 이 가죽끈을 베어버려 중앙의 두 말과 병거를 분리시켜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乃止. 甲辰: 갑진일은 8일이다.

東侵及: 유수 본래 산동성 거현莒縣 서북쪽 유산에서 발원하여 땅 밑으로 흐르다가 기옥산에서 다시 지표로 나온다. 동쪽으로 흘러 제성현 동북을 경유하여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다가 창읍을 지나 바다로 흘러간다. 유수에 도착했다는 것은 군대가 유수의 서안과 북안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南及: 음은 의이다. 수는 곧 대기하大沂河이다. 산동선 몽음현의 북쪽과 기원현의 서쪽에서 발원하여 기수와 기남 그리고 임기를 지나 강소성 비현에 이르러서 황하로 흘러 들어간다. 급기란 군대가 제나라 국경의 기수 유역에 도착했음을 말한다. 나머지 설명은 『춘추·애공2년』의 “沂西”의 주석을 참조. 「진세가」와 「제세가」에서 이 일을 기재하고 있는데 『좌전』과 다른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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