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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환을 제거하려는 목강과 선백 (춘추좌전.8.16.8.)

삼환을 제거하려는 목강과 선백 7 월 , 성공이 윤무공 尹武公 및 제후들 ( 진 여공 , 제나라의 국좌 , 그리고 주 邾 나라 군주 ) 과 회합하고 정나라를 정벌했다 . 성공이 출행하려고 할 때 , 목강이 또 지난 번처럼 계씨와 맹씨를 축출하라고 명하였다 . ( ☞ 8.16.5.) 성공은 재차 수비를 단단히 당부하고 출발했다 .  제후들의 군대가 정나라의 서쪽에 주둔했고 , 우리 노나라 군은 독양 督揚 ( 정나라의 동쪽 ) 에 주둔하며 섣불리 정나라 영내를 지나가지 않았다 . 자숙성백 子叔聲伯 은 숙손표 叔孫豹 를 보내 진군이 마중오기를 요청했고 정나라 도성의 교외에서 진군을 대접할 음식을 준비했다 . 마중을 나온 진군이 도착했다 . 성백은 나흘간 음식을 들지 않고 진군을 기다렸다가 사자가 먼저 음식을 든 후에야 음식을 먹었다 . 원문 (8.16.8.)  七月 , 公會 尹武公 及諸侯伐 鄭 . 將行 , 姜 又命公如初 . 公又申守而行 . 諸侯之師次于 鄭 西 , 我師次于 督揚 , 不敢過 鄭 . 子叔聲伯 使 叔孫豹 請逆于 晉 師 , 爲食於 鄭 郊 . 師逆以至 . 聲伯 四日不食以待之 , 食使者而後食 . 주석 ⊙ 公會 尹子 · 晉侯 · 齊國佐 · 邾 人伐 鄭 : 주석 없음 . ▣ 七月 , 公會 尹武公 及諸侯伐 鄭 : 윤무공은 경문의 윤자이다 . ▣ 將行 , 姜 又命公如初 : 두예 : “성공에게 계문자와 맹헌자를 축출하라고 다시 요구한 것이다 . ” ▣ 公又申守而行 : 궁궐의 수비를 당부하다 . ▣ 諸侯之師次于 鄭 西 , 我師次于 督揚 : 두예 : “독양 督揚 은 정나라의 동쪽 지역이다 . ” 양공 19 년에 나오는 독양과는 다른 곳이다 . ▣ 不敢過 鄭 . 子叔聲伯 使 叔孫豹 請逆于 晉 師 : 자숙성백은 『좌전·성공 6 년』의 주석 참고 . 숙손표 叔孫豹 는 교여의 동생이다 . 아래 “숙손표를 제나라에서 불러들여 후계로 세웠다”와 『좌전·소공 4 년』의 기사에 근거하면 , 숙손표는 오랫동안 제나라에 머물렀었다 . 이때 혹 제나라의 국좌를 따라서 제나라 군중에 머물고

조나라의 청원 (춘추좌전.8.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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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라의 청원  조나라 사람들이 진나라에 청원했다 . “우리 선군 선공이 타계하신 이후로 국인들이 말합니다 : ‘어찌하면 좋겠는가 ? 우환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구나 . ’ 그런데 또 과군을 치죄하고 조나라 사직의 귀중한 공자 ( 자장 ) 를 떠나게 했으니 이는 조나라를 크게 망치는 일입니다 . 선군께 잘못이 있었습니까 ? 만약 죄가 있었다면 , 군주께선 왜 선군을 회합에서 제후의 반열에 서게 하셨던 것입니까 ? 군주께선 덕과 형벌을 잃지 않아 제후들의 수장이 되셨는데 , 어찌 유독 폐읍에만 상벌을 잃으십니까 ? 감히 이렇게 사정을 말씀드립니다 . ” 원문 (8.16.7.)  曹 人請于 晉 曰 : “ 自我先君 宣公 卽世 [1] , 國人曰 : ‘ 若之何 ? 憂猶未弭 . ’ 而又討我寡君 , 以亡 曹國 社稷之 鎮 公子 , 是大泯 曹 也 , 先君無乃有罪乎 ? 若有罪 , 則君列諸會矣 . 君唯不遺德 · 刑 , 以伯諸侯 , 豈獨遺諸敝邑 ? 敢私布之 . ” (1)   “세 世 ”를 완각본에선 “위 位 ”로 쓴다 . 여기서는 『석경』과 각본을 따라 정정했다 . 조 선공은 성공 13 년에 사망했다 . 주석 ▣ 曹 人請于 晉 曰 : “ 自我先君 宣公 卽世 : “세 世 ”를 완각본에선 “위 位 ”로 쓴다 . 여기서는 『석경』과 각본을 따라 정정했다 . 조 선공은 성공 13 년에 사망했다 . ▣ 國人曰 : ‘ 若之何 ? 憂猶未弭 . ’ : 우 憂 는 선공의 죽음과 태자의 피살을 가리킨다 . 미 弭 는 그침 止 · 息 의 뜻 . ▣ 而又討我寡君 : 지난해에 진나라는 조 성공을 잡아들였다 . ▣ 以亡 曹國 社稷之 鎮 公子 : 두예 : “자장 子臧 이 송나라로 망명한 일을 말한다 . ” 진 鎮 은 중 重 의 뜻 . ▣ 是大泯 曹 也 : 두예는 “민 泯 은 멸 滅 의 뜻”이라고 말한다 . ▣ 先君無乃有罪乎 ? 若有罪 , 則君列諸會矣 : 列諸會 는 列之於會 와 같고 , 여기서 “ 之 ”는 조 선공이다 . 회합은 선공 17 년 단도의 회맹 등을 말함 . 두예

노 성공을 모함한 선백 (춘추좌전.8.16.6.)

노 성공을 모함한 선백 가을 , ( 성공이 진 여공 , 제 영공 , 위 헌공 , 송나라의 화원 그리고 주 邾 나라 군주 와 ) 사수 沙隨 ( 하남성 영릉현 寧陵縣 의 북쪽 ) 에서 회합하고 정나라의 정벌 문제를 논의했다 .  선백이 사람을 보내 극주 郤犨 에게 말했다 . “노후는 괴퇴 壞隤 ( 산동성 곡부현 曲阜縣 부근 ) 에서 머무르며 승패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 ” 극주는 신군의 장수이고 또 공족대부로서 동방 제후들의 업무를 주관했다 . 그는 선백에게 뇌물을 받고 성공을 진 여공에게 참소했다 . 진 여공은 성공을 접견하지 않았다 . 원문 (8.16.6.)  秋 , 會干 沙隨 , 謀伐 鄭 也 . 宣伯 使告 郤犨 曰 : “ 魯侯 待于 壞隤 , 以待勝者 . ” 郤犨 將新軍 , 且爲公族大夫 , 以主東諸侯 . 取貨于 宣伯 , 而訴公于 晉侯 . 晉侯 不見公 . 주석 ⊙ 秋 , 公會 晉侯 · 齊侯 · 衛侯 · 宋華元 · 邾 人 · 于 沙隨 : 사수 沙隨 는 송나라 땅으로 고대에 사수국이 있었다 . 현 하남성 영릉현 寧陵縣 의 북쪽이다 . ⊙ 不見公 : 주석 없음 . ▣ 秋 , 會干 沙隨 , 謀伐 鄭 也 : 정나라는 아직 진나라에 복종하지 않았다 . ▣ 宣伯 使告 郤犨 曰 : “ 魯侯 待于 壞隤 , 以待勝者 . ” : 두예 : “진나라와 초나라간의 승부를 지켜보았다 . ” 노 성공을 모함한 것이다 . ▣ 郤犨 將新軍 , 且爲公族大夫 , 以主東諸侯 : 제나라와 노나라 같은 동방의 제후들의 초대와 접대 등의 사무를 주관하였다 . ▣ 取貨于 宣伯 , 而訴公于 晉侯 : 소 訴 는 『논어·헌문편』의 “공백료가 계손씨에게 자로를 훼방놓았다 ( 愬 ) ”에서의 “소 愬 ”와 같다 . ▣ 晉侯 不見公 : 『공양전』은 “성공이 어리다는 이유였다”고 말한다 . 양옥승의 『폐기』에선 이 당시 성공의 나이는 이미 30 여 세로서 진 여공이 성공을 접견하지 않은 것은 참언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언릉전쟁鄢陵 (춘추좌전.8.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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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여공이 정나라를 정벌하려고 했다 . 범문자 范文子 가 말했다 . “만약 우리가 원하는 바를 만족시키려면 모든 제후들이 우리를 배반해야 진은 우환을 풀 수 있을 것이다 . 만약 정나라만 배신한다면 진의 우환은 즉시 찾아올 것이다 . ” 난무자가 말했다 . “우리 당대에 제후들을 잃을 순 없으니 반드시 정나라를 정벌해야 한다 . ” 이에 진은 군을 동원했다 . 난서 欒書 ( 난무자 ) 가 중군을 지휘하고 사섭 士燮 ( 범문자 ) 이 그를 보좌했다 . 극기 郤 錡 가 상군을 지휘하고 순언 荀偃 이 그를 보좌했다 . 한궐 韓厥 이 하군을 지휘하고 , 극지 郤 至 가 신군을 보좌했다 . 순앵 荀罃 은 국도를 수비했다 . 극주 郤犨 는 위나라로 갔다가 이어 제나라로 갔으니 모두 출병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 난염 欒黶 은 우리 노나라로 와서 군사를 요청했다 . 맹헌자가 말했다 . “진나라가 승리할 것이다 . ” 무인일 (12 일 ), 진나라는 군사를 일으켰다 . 정나라가 진나라의 출병 소식을 듣고 , 초나라에 사자를 파견하여 보고했고 , 요구이 姚句耳 가 사자와 함께 갔다 . 초 공왕은 정나라를 구원했다 . 사마 자반이 중군을 지휘하고 영윤 자중이 좌군을 지휘했으며 우윤 右尹 자신 子辛 이 우군을 지휘했다 . 신 申 땅을 지날 때 , 자반이 신숙시를 접견하고 물었다 . “이번 출정이 어찌 될 것 같습니까 ? ” 신숙시가 대답했다 . “덕 德 ·형 刑 ·상 詳 ·의 義 ·예 禮 ·신 信 은 전쟁을 수행하는 수단이다 . 덕으로 은혜를 베풀고 , 형으로 잘못을 바로잡고 , 순종으로 귀신을 섬기고 , 의로움으로 이익을 세우고 , 예로써 때를 따르고 , 신뢰로 만물을 지킨다 . 민생이 넉넉하면 덕이 바르게 되고 , 유리한 시기를 활용하면 일이 절도에 맞고 , 계절을 어기지 않으면 생산이 성취를 이루어 상하가 화목하고 행동에 어김이 없게 되어 구하여 갖추지 못하는 것이 없고 각자 지켜야 할 준칙을 알게 된다 . 그러므로 『시』 ( 『주송·사문』 ) 에 ‘우리 백성을 일으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