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 거백규渠伯糾
본문
여름, 주周나라의 재宰 거백규渠伯糾가 노나라를 예방했다. 그의 부친이 생존해 있었기 때문에 『춘추』는 이름을 썼다.
2.4.2. 夏, 周宰渠伯糾來聘. 父在, 故名.
해설
▣夏, 周宰渠伯糾來聘. 父在, 故名: 재宰는 규糾가 맡은 관직이다. 그의 부친 역시 관직이 있어 부자가 함께 왕실에 출사했다. 진나라의 난서欒書가 정권을 장악했을 때 그의 아들인 염黶 역시 이름으로 불렀던 것과 유사한 예이다. 성공 16년의 “난염欒黶이 사신으로 와서 군사를 요청했다”는 기사가 이 예이다. 여기와 다음 해 잉숙仍叔의 아들이 조정에 출사하지 않은 경우와는 다르다. (두예: “재는 관명, 거는 씨, 백규는 이름이다. 주나라 왕의 관리들의 재는 그 능력에 따라 직위를 수여해야 한다. 그러나 백규는 부친의 직분을 섭하여 열국으로 예방을 갔기 때문에 그 이름을 써서 비난한 것이다.” 『좌전』의 설명과 다르다. 옮긴이) ⊙ 재宰는 관직 명. 『좌전·소공26년』에 따르면, 거渠는 주나라의 지명이다. 거백규는 읍 이름으로 씨를 삼은 경우다. 백伯은 항렬이고 규糾는 이름이다. 백규는 항렬로써 관명(冠名: 사관례를 거행할 때 지은 이름)을 삼은 것인데 『논어』의 백달伯達과 백괄伯适 등의 부류와 같다. 환공의 재위 18년간 元年冬十月, 九年夏四月, 十一年春正月, 十三年秋七月, 冬十月, 十八年秋七月 등은 모두 아무런 사건의 기록 없이 계절과 그 첫달을 기록한 경우다. 이번 4년과 7년의 『춘추』경문을 보면 가을과 겨울에 아무 기록이 없다. “秋七月”, “冬十月”이란 여섯 글자 역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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