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 진나라(秦)
본문
가을, 진秦나라 군대가 예芮나라를 침략했다가 패전했다. 적을 가볍게 봤기 때문이다.
2.4.3. 秋,秦師侵芮,敗焉,小之也.
해설
▣秋,秦師侵芮,敗焉,小之也: 『좌전』에서 진秦나라의 사적을 처음 기록했다. 『춘추』에선 희공 15년, 한원韓原의 전투가 최초의 기록이다.
춘추좌전 지도 - 진나라 |
진秦나라는 영성嬴姓의 국가로서 주나라 효왕孝王이 백익伯益의 후예인 비자非子를 부용국으로 진秦에 봉건했는데, 현재의 감숙성 천수天水시가 옛 진성이다. 한편 고동고顧棟高의 『춘추대사표春秋大事表』는 현재의 청수현淸水縣이 옛 진성이라고 설명한다. 진나라 양공이 서융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워 평왕이 기岐와 풍豊의 땅을 하사하여 제후의 반열에 올랐으며 견수汧 근처 지역으로 옮겼는데 현재의 섬서성 농현隴縣의 남쪽 3리 정도 떨어진 곳에 성이 있다. 문공 때 견수와 위수의 중간 지역을 선택하여 도읍을 옮겼는데, 현재의 미현眉縣의 동북쪽으로 15리 정도 떨어진 곳이 옛 미성이다. 영공 2년 즉 노나라 은공9년 평양平陽으로 옮겼으며 그 옛성은 현재의 미현의 서쪽으로 46리 떨어진 곳이다. 덕공원년 즉 노나라 장공 17년에 다시 옹雍으로 도읍을 옮겼다. 이곳은 현재의 봉상현鳳翔縣 안에 있다. 1973년 봉상현 남쪽으로 4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 때의 궁전과 유적지 그리고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헌공 12년 역양櫟陽으로 옮겼는데 그 옛성은 현재 섬서성 임동현臨潼縣의 북쪽 50리 떨어진 곳에 있다. 효공이 다시 도읍을 함양으로 옮겼으며, 현재의 섬서성 함양시 동쪽이다. 왕국유의 『관당집림·진도읍고秦都邑考』를 보면 그 여러 주장들이 옳은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어서 모두 신뢰하기는 어렵다. 『대사표』: “진 문공 44년에 춘추 시대로 들어섰다. 그 후 260년(501년의 오류. 역자) 뒤에 진시황이 천하를 병탄했다.” 『사기』에 「진본기」가 실려 있다. 현재 전해지는 이기로는 진공기秦公旣, 진공종秦公鐘, 진자과秦子戈, 진자모秦子矛 등이 있다. 『양서梁書·유지린전劉之遴傳』에 『진객성후존秦客成侯尊』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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