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706년) 2.6.1. 순우공
본문
환공 6년 봄, (주州나라의 순우공이) 조나라를 떠나 우리나라로 와서 예방했다. 『춘추』에 “식래寔來”로 쓴 까닭은 그가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2.6.1. 六年春, 自曹來朝. 書曰 “寔來”, 不復其國也.
해설
▣六年春, 自曹來朝. 書曰 “寔來”, 不復其國也: 이 구절은 전년도 마지막 구절과 한 문장이다. 자세한 내용은 경문의 주석을 참조할 것. ⊙寔來: 이 구절은 전년도 경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온전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冬,州公如曹. 六年春正月, 寔來.” 경문을 년도에 맞춰 분리한 후(언제부터 경문을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공양전』과 『곡량전』을 보면, 매우 일찍부터 분리되었다), 한 가지 일인데 두 해로 나뉘었다. 그래서 이 문구에선 주어가 없다. 식래寔來에서 식寔은 실實로도 쓸 수 있는데 즉 허실 혹은 확실에서의 실과 같은 뜻이다. 「근례」의 “실은 백부가 왔다(伯父實來)”, 『좌전·성공2년』의 “사실은 공백이 왔다(而鞏伯實來)”, 『좌전·성공18년』의 “실은 지백이 왔었다(知伯實來)”, 『좌전·소공3년』의 “이제 실은 귀국의 오긴 했지만(今子皮實來)”등이 모두 이 확실함의 실實의 의미로 쓴 예이다. 또 『좌전·소공30년』의 “실제로는 우리의 선대부 인단이 대신 가셨다(我先大夫印段實往)” 역시 이와 같은 부류이다. 『좌전』에선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로 “식”자를 풀어서 그 서법을 해석했는데, 훈고로 풀이한 것은 아니다. 가현옹家鉉翁은 『춘추상설春秋詳說』에서 “‘식래’ 두 글자는 당시의 상용어로서 현재로선 그 뜻을 알 수 없으므로 지나치게 해석할 필요없다(二字乃當時之常言, 似不必過求)”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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