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 순우공淳于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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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순우공淳于公이 조나라로 가서는,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을 알고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2.5.6. 淳于公度其國危遂不復.


해설

  강성의 나라로서 순우淳于 도읍이 있었다. 현재의 산동성 안구현安丘縣 동북쪽 순우성에 해당한다. 현재 전해지는 이기로는 『 于公戈』와 不叔』등이 있으며, 라고 불리는 것은 모두 주국州國이다. 서주 강왕 시대의 『주공기』의 명문에 “형후에게 임무를 주고 주인, 중인 그리고 곽인 세 종족의 노예를 하사했다(邢侯, 錫臣三品; 州人·重人·郭人)”라는 기록이 있는데, 명문의 주인州人 이 경문에서 말하는 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만약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주나라는 본래 서주의 기내에 봉건 되었던 나라이다.  

춘추좌전 지도 - 주州

춘추좌전 지도 - 조曹


국명으로 희성의 나라이다. 무왕이 그의 동생 숙진탁叔振鐸 조에 봉건했는데, 도읍은 도구陶丘 있었다. 그 옛성은 현재의 산동성 정도현定陶縣 서남쪽 7리 떨어진 곳에 해당한다. 뇌학기雷學淇 『죽서기년의증·권24』에 설명이 보인다. 노나라 애공 8년 송나라에게 멸망당했다. 『사기』에 「조세가」가 있다. 조는 본래 지명이면서 국명인데 복사에 이미 그 명칭이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은허서계전편』2 5에 “조에 있었다. 점을 쳤다(, ), 『후편』의 상15에 “조를 공격하여 피해를 입혔다(猷伐, )”등의 복사가 있는데 모두 조자이다. 『설문』에선 “ ”로 쓴다. 다만 그 지역이 도구陶丘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淳于公: 순우공은 주나라의 군주州公이다. 는 국명이고 도읍은 순우에 있었다. 현재의 산동성 안구현의 동북쪽 30리 떨어진 곳에 해당하며, 도읍의 이름으로 나라 이름을 삼았는데 고대에는 본래 이런 예가 있었다. 예를 들면, 전국 시대 위나라 혜성왕惠成王 도읍을 대량大梁으로 옮겼는데, 『고본죽서기년』에선 양혜성왕梁惠成王이라 칭했고, 『맹자』에서도 양혜왕梁惠王이라고 불렀다. 나라가으로 천도한 후에 역시 정나라로 불린 것 등이다.  

度其國危遂不復: 나라가 위급하여 스스로 구원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나라를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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