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극郤克과 소동숙자蕭同叔子 (춘추좌전.7.17.1.)

선공 17년 봄, 경공이 극극을 제나라에 파견해 회합에 소집했다

제 경공이 곁방에 휘장을 두르고, 모친이 그 뒤에서 극극을 엿볼 수 있게 했다. 극극이 계단을 오를 때 곁방에 있던 부인이 웃고 말았다. (극극은 절름발이였다.) 극극이 분노했고 밖으로 나오며 맹세했다. “만약 이 수모를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면 황하를 건너지 않으리라!” 

극헌자(극극)는 먼저 귀국하고 부사 난경려欒京廬에게 이곳에 머물며 제나라의 결정을 기다리게 했다. “이곳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돌아와 복명할 필요 없다.” 극자가 귀국해 제나라 정벌을 청했다. 경공은 이를 수락하지 않았다. 극자가 자신의 사병을 거느리고 제나라를 치겠다고 요청했지만 역시 허락하지 않았다

제 경공이 고고高固, 안약晏弱, 채조蔡朝, 남곽언南郭偃 등을 회합에 파견했다. 염우斂盂(하남성 복양현濮陽縣)에 이르렀을 때 고고가 도망쳐 돌아갔다

여름, 단도斷道(제원현濟源縣의 서남쪽)에서 회합하고 두 마음을 품은 나라를 토벌하기로 했다. 권초卷楚(단도 혹은 그 부근)에서 결맹할 때 진나라는 제나라 대부들의 참석을 거절했다. 진나라는 야왕野王(하남성 심양현沁陽縣)에서 안약을, (하남성 제원현의 북서쪽 원향)에서 채조를, (하남성 온현 서남쪽)에서 남곽언을 각각 잡아들였다. 묘분황苗賁皇이 사신 길에 안환자를 접견한 적이 있었다. 귀국 후 경공에게 아뢰었다. “안자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과거 제후들이 우리 선군을 섬길 때는 모두 남보다 못할까 걱정했는데 지금은 진의 신하들이 신의가 없어 제후 모두 딴 마음을 품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나라 군주는 회합에서 무례를 당할까 두려워 참석치 않고 대부 네 사람을 보냈습니다. 근신들 중에는 그마저도 말리며, ‘군주께서 가지 않으시면 반드시 우리 사신들을 억류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자는 염우까지 왔다가 도망쳤습니다. 나머지 세 사람은 ‘군주간 우호를 단절시키느니 차라리 회합에 가서 죽자.’라는 각오로 위험을 무릅쓰고 왔습니다. 우리가 저들을 잘 대접하여 찾아오도록 회유하는 것이 마땅한데 오히려 그들을 잡아가두어 이번 행차를 만류한 신하들의 말대로 되었으니 이미 과오를 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실수를 범하고도 고치지 않고 오히려 저들을 이처럼 오랫동안 구금하여 후회할 일을 만든다면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도중에 도망친 고고에게 변명거리를 만들어주고 끝내 참석한 이들에겐 해를 입혀 제후들을 두렵게 하였으니 장차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진나라는 일부러 감시를 느슨하게 했고, 그들은 그 틈에 도망쳤다

가을 8, 진나라 군사가 돌아왔다.


원문

 十七年春晉侯使徵會于. 齊頃公帷婦人使觀之. 婦人笑於房. 獻子出而誓曰: 所不此報無能涉!獻子先歸使欒京廬待命于: 不得無復命矣.” 

請伐. 晉侯弗許. 請以其私屬又弗許.

齊侯使高固·晏弱·蔡朝·南郭偃. 斂盂高固逃歸. 會于斷道討貳也. 盟于卷楚. 人執晏弱野王蔡朝南郭偃. 苗賁皇使晏桓子. , 言於晉侯: 晏子何罪? 昔者諸侯事吾先君皆如不逮言群臣不信諸侯皆有貳志. 君恐不得禮故不出而使四子來. 左右或沮之: 君不出必執吾使.高子斂盂而逃. 夫三子者曰: 君好寧歸死焉.爲是犯難而來. 吾若善逆彼以懷來者. 吾又執之以信吾不旣過矣乎? 過而不改而又久之以成其悔何利之有焉? 使反者得辭而害來者以懼諸侯將焉用之?人緩之.

秋八月師還.

관련주석 

十七年春晉侯使徵會于: 극극에 대해선 『좌전·선공12년』의 주석 참조. 은 부르다()이다. 진나라가 극극을 보내 제나라를 단도의 회맹에 참석하게 하려 했다.

齊頃公帷婦人使觀之: 베나 비단으로 둘러싸 스스로를 가림이다. 여기서 부인은 제 경공의 모친 소동숙자蕭同叔子이다. 그래서 성공 2년 안의 전쟁 후에 진나라는 그녀를 인질로 데려가려고 했다.

婦人笑於房: 극극은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그가 계단을 오르는 모양을 보고 부인이 웃었다. 소동숙자는 다른 문헌에서 소동질자姪子 쓰기도 한다.

, 『설문』: “좌우에 있는 방이다(室在旁也).” 단옥재: “당을 보면, 중앙에 정실이 있고, 좌우에 방이 있는데 동방과 서방이라고 한다.” 『공양전』: “진의 극극과 노나라의 장손허가 동시에 제나라를 예방했다. 소동질자는 제 경공의 모친으로서 도약판을 딛고 올라서서 사신들을 쳐다보았는데, 한 사람은 절름발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애꾸눈이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절름발이에겐 절름발이를 보내고, 애꾸에겐 애꾸를 보내 맞이하게 하였다.” 『설원·경신편』: “진나라와 노나라 사신들이 예방을 왔는데 사신을 희롱했다.” 『곡량전』: “계손행보는 대머리이고, 진의 극극은 애꾸눈이며, 위 손량부는 절름발이이고, 조 공자수는 꼽추였는데, 그들이 동시에 제나라에 예방을 왔다. 제나라는 각각 그들과 꼭 같은 외모의 사람들을 보내 각각 맞이하게 했다. 소동질자는 대 위에서 그 모습을 보고 웃었고 웃음소리가 사신들 귀에까지 들렸다.” 「진세가」: “극극을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제 경공의 모친이 루 위에서 그의 모습을 보고 웃었는데 극극이 곱추였기 때문이다. 노나라의 사신은 절름발이였고, 위나라 사신은 애꾸눈이었다. 제나라는 그들과 동일한 사람들을 보내어 길을 인도했다.

獻子出而誓曰: 所不此報無能涉!: 자는 맹세할 때 가설연사로 사용되어 '만약'과 같은 뜻이다. 사마천은 “출”을 제나라 국경을 벗어나서 라고 풀이했기 때문에 「진세가」는 “이 때문에 극극이 분노했고 귀국 길에 황하에 이르러서 ‘제나라에 복수할 것이다. 이는 황하의 신에게 맹세한다.’”고 적고 있다. 『공양전』: “극극과 장손허가 제나라 공궁을 나오면서 한 사람은 문 안에서 다른 한 사람은 문 밖에서 얘기를 나누고, 며칠이 지난 후에 헤어졌다. 제나라 사람들은 모두 ‘이 때문에 필시 근심거리가 생길 것'이라고 수군거렸다.(참고. 『공양전』과 『곡량전』모두 선공 17년 조에 이런 기사가 없다. 옮긴이) 『곡량』에서 서술한 것과 대략 비슷하고 『좌전』과는 모두 다르다.

獻子先歸使欒京廬待命于: 不得無復命矣.: 극극은 군주의 명을 완수하지 않고 먼저 귀국했기 때문에 “선귀”라고 썼다. 난경려는 그의 부사(고대에는 상개上介라고 불렀다)인데 제나라에 머물면서 반드시 제 경공으로 하여금 회합에 참석하게 한 후에 귀국하여 복명하게 한 것이다. 不得”란 제나라에 사신을 간 임무를 완성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두예는 “제나라의 죄를 묻게 하다”라고 해석했지만 옳지 않다.

: 진나라로 귀국하다.

請伐. 晉侯弗許. 請以其私屬: 두예: “사속이란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다.” 즉 자신의 사병을 이끌고 제나라를 정벌하려 했다.

又弗許: 「진세가」: “극극이 귀국하여 진 경공에게 제나라를 칠 것을 요구했다. 경공이 그 연유를 물었고 들은 후에 ‘그대의 사적인 원한으로 어떻게 나라를 번거롭게 하는가?’라고 답하며, 역시 허락하지 않았다.

齊侯使高固·晏弱·蔡朝·南郭偃: 고고는 고선자, 안약은 안환자로서 모두 『좌전·선공14년』의 주석에 보인다.

斂盂: 렴우斂盂는 하남성 복양현濮陽縣 동남쪽. 『좌전·희공28년』의 주석 참조.

춘추좌전 지도 - 단도斷道 회합


高固逃歸: 두예: “극극이 분노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會于斷道討貳也: 두 마음을 품었다는 나라에 대해 『좌전』에서 어느 나라인지 얘기하지 않았다. 이때 송나라는 이미 초나라와 강화를 맺었고, 정·진·채 역시 모두 초나라에 붙은 상태이기 때문에 혹 이들 여러 나라를 가리키는지도 모른다. 제나라를 회합에 소집한 것은 제나라가 이반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盟于卷楚: 두예: “권초卷楚는 곧 단도이다.” 진립의 『공양소』: “단도와 권초는 서로 다른 지역으로 보인다.” 서로 다른 지역이라도 상당히 가까운 곳이다.

: 제나라의 참여를 거절했다.

人執晏弱野王: 야왕野王은 현 하남성 심양현沁陽縣 경내이다.

蔡朝: 『좌전·은공11년』의 주석을 참조.

南郭偃: 역시 『좌전·은공11년』을 참조.

苗賁皇使: 묘분황苗賁皇「진어5」에서 “묘분황苗棼皇”으로 쓴다. 과 분은 고음이 같아 통가한다. 『좌전·양공26년』에서 묘분황은 초나라 투초의 아들인데 선공 4년 초나라에서 약오씨를 멸족할 때 진나라로 망명했고 진나라는 그에게 묘 땅을 하사했다. 묘는 현 하남성 제원현의 서남쪽이다. 이 문구는 묘분황이 이때 사신길에 야왕을 지나갈 때를 말한다.

晏桓子. , 言於晉侯: 晏子何罪? 昔者諸侯事吾先君: 금택문고 본엔 “諸侯” 다음에 “”자가 있다.

皆如不逮: 『논어·계씨편』에 “선한 것을 보면 그에 미치지 못할까(見善如不及)”란 문구가 있는데, 여불급과 여불체는 같은 뜻이다. 미치지 못할까 걱정하여 노력하다. 두예: “급급함을 말한 것이다.” 정확히 그 뜻을 파악한 것이다.

言群臣不信: 는 모두의 뜻.

諸侯皆有貳志: 즉 모든 제후들이 진나라의 신하들은 믿을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모두 두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흉본다는 뜻. 묘분황은 감히 군주를 직접 대놓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신하를 비유했다.

君恐不得禮: ‘부득례는 적절한 예로 대접받지 못함, 즉 모욕을 당하다.

故不出而使四子來. 左右或沮之: 는 제지하다. 제 경공의 측근 중에 그것을 제지하는 신하가 있었다.

: 君不出必執吾使.高子斂盂而逃. 夫三子者曰: 君好寧歸死焉.爲是犯難而來. 吾若善逆彼以懷來者: 응당(應該응해)의 뜻. 유월의 『평의』에 설명이 자세하다. 성대하고 따뜻하게 대접하여 진나라에 사신으로 온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 주어야 한다는 의미.

吾又執之: 이 문구에 생략된 말이 있다. 즉 우리가 그들을 잘못 대접하고 오히려 잡아 가둔다는 의미.

以信: 제나라에서 제 경공이 회합에 가지 못하게 가로막은 신하의 생각이 맞았음을 입증하게 하는 것.

吾不旣過矣乎?: 착오.

過而不改而又久之: 오래 잡아두고 석방하지 않다.

以成其悔何利之有焉? 使反者得辭: 반자는 도중에 귀국한 고고를 말한다. 득사得辭 도망친 것에 대한 변명거리를 얻다.

而害來者以懼諸侯: 제후들로 하여금 진나라를 두려워하게 만들다.

將焉用之?人緩之: 잡아들인 이들의 감시를 느슨하게 하다.

: 『좌전·선공18년』의 증에서의 맹약에서 “채조와 남곽언이 도망쳐 귀국했다.”라고 말하면서 안약을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면 이때 도망친 사람은 안약 한 사람뿐임을 알 수 있다. 무억의 『의증』을 참고하라.

秋八月師還: 혜동의 『보주』는 혜사기의 주장을 인용하여, “진나라가 군사를 낸 적이 없는데 ‘진의 군사가 돌아왔다’고 쓴 것을 보면, 어찌 단도에서 두 마음을 품은 나라를 토벌하려는 군사이겠는가? 궐문이 있는듯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좌전·정공4년』의 “군주가 행차할 때는 군사가 뒤를 따르고, 경이 행차할 때는 려가 그 뒤를 따른다.”고 한 것을 보면 회맹에 군대가 호위하고 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혹 회맹에 따라갔던 진의 군사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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