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갑丘甲 (춘추좌전.8.1.2.)

제나라의 침략에 대비하여 구갑丘甲을 제정했다.


원문

難故作丘甲.


관련 주석

難故: 선공이 즉위한 이래로 제나라를 매우 공경하며 섬겼다. 그러나 17년 단도의 맹약에서 노나라와 진나라는 기타 제후와 함께 제나라를 적으로 삼았다. 18년 노나라는 다시 초나라에 군사를 요청하여 제나라를 치려고 했지만 초나라가 군사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제나라의 침략에 대비했다.

作丘甲: 『주례·소사도』와 복건이 『사마법』을 인용한 주석에서 모두 “구부九夫를 한 정으로 하고 4정을 1으로 삼고, 4읍을 1라 하고, 4구를 1이라고 명명했다.”고 설명한다

는 지방의 기층조직과 관련된 명칭이다. 소공 4년에 “구부丘賦”가 언급되고, 『손자·작전편』엔 “구역丘役”이, 『장자·칙양편』에는 “구리丘里, 『맹자·진심하』에는 “구민丘民”이 보이는데 이들 의 뜻은 다 동일하다. 은 고대에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갑옷, 다른 하나는 갑사(병사)의 뜻이다. 『곡량전』은 본문의 갑을 갑옷이라고 분명히 한다. “작구갑”이란 한 구에 속한 갑사들에게 모두 갑옷을 입힌 것이라고 말하는데, 『공양』과 『좌전』에는 이런 뜻이 없다. 하휴는 이런 『곡량』의 해석으로 『공양』을 해석했지만 그것은 『공양』의 본 뜻이 아닐 수 있다. 『곡량』의 해석은 통하기가 어렵다

모기령의 『춘추전』과 『경문』은 “각 구로 하여금 약간의 갑옷을 낼 것으로 명하다”로 해석했지만 이 역시 장비를 약간 증가시키고 군사의 수는 그대로 두는 것이 제나라의 침략에 대비하는 방법이라고 보긴 어렵다. 본분의 “갑”자는 폭넓게 갑사로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다. 갑사는 병사 및 갑옷이란 뜻이 다 있다

“작구갑”의 내용에는 이설이 더욱 분분하다. 두예에 따르면, 본래 한 구 16인데, 전투마 1필과 소 3마리를 내고, 각 전 64정이고 전차 1대와 전투마 4필 그리고 소 12마리, 갑사 3, 보졸 72명을 부담했었다. 그런데 이제 노나라는 각 구마다 한 전에 해당하는 부세를 내도록 명령한 것으로서 갑자기 4배의 부담을 지운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주장은 매우 불합리하다. 일단 백성들이 그 부담을 질 수 있느냐의 문제를 떠나 사실 관계로서 말한다면, 노나라는 본래 2군 체제이므로 만약 이때 네 배로 군부를 증가시켰다면 이것은 8군 체제로 확충한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애공 11년에 가서야 “3군을 만들었다”고 쓰고 있으므로 가능한 해석이 아니다

그후 호안국의 『춘추전』, 손관의 『춘추경해』, 만사대의 『학춘추수필』, 공원개의 『춘추객난』, 심흠한의 『보주』 등도 이 주장을 바로잡은 바가 있는데, 어떤 이는 부세를 1/3증가한 것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1/4, 또 어떤 이는 “다만 갑사만을 증가시키고 보졸은 이전과 같았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모두 추측일 뿐 어떤 근거는 없다. 현재도 이에 대해선 학자들이 각각의 의견이 있을 뿐이다

범문란의 『중국통사간편』은 “구갑은 각 구에서 일정한 군부를 부담하는데 각 구에 속한 사람들이 각자 경작하는 토지를 기준으로 나누어 부담한 것으로서 공전제 농부에 대해 동일한 군역을 내린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즉 그는 이를 일종의 군부軍賦 개혁으로 보았고, 또 선공 15년의 “처음으로 토지에 부세를 부과했다”는 내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파악했는데 비교적 합리적인 설명이다

(선공 대의 세제 개편인 초무공전에 제공하는 노동력 대신 보유한 토지의 다소에 따라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므로 초무를 도입하는 효과는 경작지 보유 규모가 클수록 부과되는 세금이 증가하고 현존하는 자원의 변경 없이도 토지조사를 통해 징수 규모도 증가한다. ‘구갑은 그 명칭에서 보듯 국방 예산에 관련된 것인데 축소가 아닌 확대를 목적으로 개편한 것으로 봐야 하므로 최소한 기존에 이상의 행정 구역(즉 『사마법』에 따르면 에 해당)에서 징수하던 규모를 로 하향하여 전차와 전투마의 증가를 목적으로 한 개편으로 봐야 한다. 4배 이상의 국방 예산 확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2군 체제, 3군 체제 등의 명칭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애초 진나라의 1개 군단과 노나라의 1개 군단의 규모가 동일하다고 추정하는 것 역시 입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필의대전에서 초나라의 무력을 확인했고, 대국에 속하는 송나라 역시 장왕에게 굴욕적으로 항복한 지 몇 년이 채 안지난 상황이다. 제나라에 빈번하게 침략당하고 이 때문에 초에게 출병까지 요청한 노나라 입장에서 4배 정도의 국방예산 증가 도모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또 이미 선제적으로 토지토사를 통해 증세 가능성을 확인한 이후다.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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