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무신이 주선한 오나라와 중원의 교류 (춘추좌전.8.7.5.)
(과거의 일이다.) 초나라가 송나라를 포위해 항복을 얻고 퇴각한 후 (☞ 7.15.2.) 자중이 신申과 려呂(모두 하남성 남양시 부근) 일부 지역을 포상으로 줄 것을 요청했고, 장왕은 이를 허락했었다. 그때 신공申公 무신巫臣이 왕에게 아뢰었다. “안 됩니다. 이곳 신과 려를 읍으로 삼은 까닭은 부세를 거두는 자원으로 삼아 북방을 방어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자중이 그 일부를 취한다면 신과 려의 존재 이유가 없어지고, 필시 진나라와 정나라가 한수까지 진격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장왕이 중지했고, 자중은 무신을 원망했다. 자반子反은 하희를 첩으로 취하려 했지만 무신이 이를 가로막았고 결국엔 자신이 하희를 취해 도망쳤다. 자반 역시 이 때문에 무신을 원망했다.
공왕이 즉위하자 자중과 자반은 무신의 일족인 자염子閻, 자탕子蕩, 청윤清尹 불기弗忌, 양노襄老의 아들 흑요黑要를 살해하고 그들의 재산을 나눠 가졌다. 자중은 자염의 재산을 가로챘고, 침沈의 윤과 왕자파에게 자탕의 가산을 분할하여 가지게 했으며, 자반은 흑요와 청윤의 가산을 가졌다.
진나라에 머물던 무신이 자중과 자반에게 서찰을 보냈다. “그대들이 간사함과 탐욕으로 군주를 섬기고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으니 내 반드시 너희를 군명으로 분주히 전쟁터로 파견하여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 것이다.”
무신은 오나라 사행을 자청했고 진 경공이 이를 허락했다. 오왕 수몽은 그의 방문을 반겼다. 이때부터 오나라는 진나라와 사신을 교류했고 무신은 전차 30대를 오나라로 가지고 가서 그 절반을 두고 왔다. 오나라 군사들에게 사수와 마부를 내주고, 전차를 타는 법, 군진을 펼치는 법 등을 가르쳤고, 오나라가 초나라를 배신하게 이끌었다. 무신은 아들 호용狐庸을 오나라에 남겨 외교관이 되게 하였다.
오나라는 처음으로 초나라, 소나라 그리고 서나라를 공격했고, 자중은 군주의 명을 받아 전쟁터로 달려갔다. 마릉馬陵의 회맹 때 오나라가 주래州來로 쳐들어 가자 자중은 정나라 땅에 있다가 명을 받고 전쟁터로 달려갔다. 자중과 자반은 이 해에 7차례나 명을 받고 전쟁터로 달려갔다. 초나라에 속한 만이의 땅은 오나라가 다 취했으며 이때 비로소 오나라의 세력이 커졌고 이로 인해 중원의 나라들과 통교하게 되었다.
원문
巫臣請使於吳,晉侯許之. 吳子壽夢說之. 乃通吳于晉,以兩之一卒適吳,舍偏兩之一焉. 與其射御,教吳乘車,教之戰陳,教之叛楚. 寘其子狐庸焉,使爲行人於吳. 吳始伐楚·伐巢·伐徐,子重奔命. 馬陵之會,吳入州來,子重自鄭奔命. 子重·子反於是乎一歲七奔命. 蠻夷屬於楚者,吳盡取之,是以始大,通吳於上國.
관련 주석
▣楚圍宋之役: 선공 14년과 15년의 『좌전』기사 참조.
▣師還,子重請取於申·呂以爲賞田: 신申은 『좌전·은공원년』의 주석
참조. 려呂는 옛 나라 이름. 강성이며 주 목왕 때 봉건하였다. 『상서』의 「여형」편은 곧 여후가 쓴 것이다. 서주시대 이기에 呂
▣王許之. 申公巫臣曰: “不可. 此申·呂所以邑也,是以爲賦: 신과 려의 땅이 모두 공가의 소유이기 때문에
비로소 신과 려가 읍으로 존재할 수 있고, 군사에 필요한 부세가 여기에서 산출될 수 있다.
▣以御北方: “어御”는 “방어禦”와 같다.
▣若取之,是無申·呂也: 만약 두 읍의 일부를 상으로 개인에게 하사하면
신과 려는 읍을 이룰 수 없다.
▣晉·鄭必至于漢.”: 신과
려가 읍을 이룰 수 없게 되면 북방을 방어할 수 없게 되며 진과 정이 한수에까지 진격할 수 있게 된다.
▣王乃止. 子重是以怨巫臣. 子反欲取夏姬,巫臣止之,遂取以行: 취는 처로 삼다(娶). 무신이 하희를 처로 삼아 진나라로 망명한 일은 『좌전·성공2년』의 기사에 보인다.
▣子反亦怨之. 及共王卽位,子重·子反,殺巫臣之族子閻·子蕩及清尹弗忌及襄老之子黑要: 자염子閻과 자탕,
불기는 두예의 주석에 따르면 모두 “무신의 일족”이다. 청윤靑尹은 장병린의 『독』에 따르면, 지방관이 아닌 조정의 관리이다. 『오이吳彝』에 “청윤이 보내로운 준이를 만들었다(用作靑尹寶尊彝)”라는 문구가 있는데, 본문의 “청윤”과 같은지는 알 수
없다. 이 사건은 초 공왕 즉위 2년 이후에 벌어진 일이므로
『좌전』의 “공왕이 즉위하자”는 공왕이 즉위한 이후라는 뜻이다.
▣而分其室: 실室은 일족의 재산家産이다.
▣子重取子閻之室,使沈尹與王子罷分子蕩之室,子反取黑要與清尹之室. 巫臣自晉遺二子書: 이자는 자중과 자반이다. 「진세가」는 “무신이 분노하여 자반에게 서찰을
보냈다”고 적는다. 자중을 생략했다.
▣曰: “爾以讒慝貪惏事君: 참讒과 특慝은 같은 뜻이다. 『좌전·환공6년』의
주석 참조. 람惏은 람婪과 같고 탐함의 뜻.
▣而多殺不辜,余必使爾罷於奔命以死.”: 주석
없음.
춘추좌전 지도 - 중원과 오나라의 통교 |
▣巫臣請使於吳,晉侯許之. 吳子壽夢說之: 「오세가」는 무신이 오나라 수몽 2년에 진의 사신으로 갔다고
하는데, 바로 이 해이다. 그런데 이 해에 오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전차전술을 가리치고, 바로 그 해에 초나라 정벌에 나서 주래로 쳐들어가 초나라를 7차례 패퇴시킨 셈이 되는데 그의 군사훈련 효과가 이처럼 빠르게 나타날 수 있을까? 혹 무신은 지난해에 오나라로 갔는데, 사마천은 『좌전』의 문장에
근거해서 대략적으로 기술한 것일 지도 모른다.
▣乃通吳于晉,以兩之一卒適吳,舍偏兩之一焉: “兩之一卒”은 양편의 군사를 합해 전차병으로 했다는
뜻이므로 전차 30대를 말한다. “舍偏兩之一”은 그 병력의 반절 즉 15대의 전차를 오나라에 남겨 두었다는 의미이다. 강영의 『보의』에 설명이 자세하다. 『좌전·선공12년』의 주석을 함께 참조하라.
▣與其射御: 오나라에 활쏘는 사수와 전차를 모는 병사를
지원했다는 뜻. “其”는 “之”의 용법으로 쓰였다.
▣教吳乘車,教之戰陳,教之叛楚. 寘其子狐庸焉,使爲行人於吳: 행인行人에 대해선 환공 9년과 선공 12년의 『좌전』주석을 참조.
▣吳始伐楚·伐巢·伐徐: 소는 『춘추·문공12년』의 주석을, 서는 『춘추·장공26년』의 주석을 참조.
▣子重奔命: 소와 서를 구원하러 갔다. 이 일은 올해에 있었다. 마릉의 회합 이전의 일이다.
▣馬陵之會,吳入州來,子重自鄭奔命. 子重·子反於是乎一歲七奔命: 7차례에 걸쳐 명령을 받고 오나라 군사를
방어하러 갔다.
▣蠻夷屬於楚者,吳盡取之,是以始大,通吳於上國: 상국은 중원의 여러 나라를 가리킨다. 「오세가」는 “오나라는 이때 비로소 중원의 여러
나라와 통교했다.”고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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