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自棄 (춘추좌전.8.6.1.)

성공 6년 봄, 정 도공이 진나라로 가서 결맹에 사례했다. 자유子游가 도공을 보필했는데 대청의 동쪽 기둥에 치우친 자리에서 옥을 전하는 예를 거행했다. 사정백이 말한다. “정백은 아마도 죽을 것이다! 스스로 지위를 버렸다. 시선은 단정치 못하고 걸음은 지나치게 빨라 자신의 자리에 편안히 여기지 못하니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원문

六年春鄭伯拜成子游授玉于東楹之東. 士貞伯: 鄭伯其死乎! 自棄也已. 視流而行速不安其位宜不能久.


관련 주석

六年春鄭伯拜成: 지난해 수극과 충뢰의 두 차례의 맹약에 대한 감사였다.

子游: 자유子游는 공자언의 자이다. 옛 사람들은 이름 “언”에 대해 “유”자를 다수 자로써 사용했다. 예를 들면, 정나라 사언의 자가 자유(『좌전·소공16년』의 주석)이고, 진의 순언의 자가 백유(『좌전·양공13년』)이며, 적언 역시 자가 자유(「진어7)였다. 오나라의 언언 역시 자가 자유(『사기·중니제자열전』)이다. 상은 정 도공이 예를 집행할 때 돕는 사람이다.




授玉于東楹之東: 고대의 대청에는 동서 양쪽에 큰 기둥이 서 있었는데 이를 동영과 서영이라 한다. 양 기둥의 중앙이 “중당”이다. 주인과 손님의 신분이 같으면 옥을 주고받는 예를 중당에서 거행한다. 손님의 신분이 주인보다 낮으면 중당과 동영의 사이에서 예를 거행한다. 동영의 서쪽이 된다. 진 경공과 정 도공은 모두 일국의 제후로서 당시의 상례에 따르면 당연히 양 기둥의 사이(중당)에서 예를 행한다. 정 도공은 진 경공을 맹주로 여기고 감히 동등한 신분의 예로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경공은 발걸음을 편안하고 천천히 걷는데 반해 도공은 빠른 발걸음으로 그리고 법도를 넘어섰는데 이는 동영의 동쪽에서 옥을 드리고자 함이었다. 그러므로 더욱 그 행동이 신분이 낮아 보였다. 심흠한의 『보주』와 도홍경의 『별소』를 참고한 설명이다.

士貞伯: 鄭伯其死乎! 自棄也已: 스스로 존중하지 않는 것을 “자기”라고 한다.

視流而行速: 『가자·용경』에 “조정에서 상견할 때, 단정함이 균형을 이룬다(朝廷之見, 端若平衡)”라는 문구가 있다. 류는 흐르는 물처럼 단정하지 못하고 균형을 이루지 못하여 동쪽으로 길게 늘어져 서쪽을 바라봄같다. 장병린의 『독』에 근거한 설명이다. 행속은 앞의 주석을 참조.

不安其位宜不能久: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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