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공왕, 수적 우위 (춘추좌전.8.2.8)

(기원전 591) 노 선공이 초나라에 사자를 파견해 우호를 추진했지만 장왕이 타계하고 선공도 서거하여 일이 성사되지 못했다. 성공이 즉위하고 진과의 동맹을 받아들이고 함께 제나라를 정벌했다. 위나라는 초나라에 사신을 보내지도 않았고 또 진과의 동맹을 수용하고 제나라 정벌에 따라나섰다. 이런 까닭에 초 영윤 자중은 양교陽橋의 전쟁을 일으켜 제나라를 구원했다. 군을 동원할 때 자중이 말했다. “군주께서 연소하고 신하들은 선대부들만 못하니 수가 많아야 승리할 수 있다. 『시』(『대아·문왕』)에 ‘인재가 많으니 문왕이 편안하셨다.’라고 말한다. 무릇 문왕조차 사람이 많았는데 하물며 우리 같은 사람들이랴? 또 선군 장왕께서 군주를 부탁하시며 ‘덕으로 멀리 감화시킬 수 없다면 백성에 은혜를 베풀어 잘 활용하는 것이 최상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곧이어 대대적으로 가구를 조사하고, 부채를 탕감했으며, 독거자에 은혜를 베풀고, 궁핍한 자를 구제하고, 죄인을 사면했다. 전군을 동원하고 왕의 근위대 역시 모두 출정했다. 팽명彭名이 어융이었고, 채 경공이 거좌가 되고, 허 영공이 거우가 되었다. 두 나라의 군주는 연소했지만 모두 강제로 관례를 치르게 했다

겨울, 초군이 위나라를 침략하고 이어 촉(산동성 태안현)에서 우리 군을 침략했다. 장손臧孫을 적진으로 보내려 하자, 그가 사양했다. “초군은 먼 길을 왔고 출정한 지 오래라 틀림없이 곧 퇴각할 것입니다. 공적도 없이 명예를 얻는 일은 감히 신이 할 수 없습니다.” 초나라가 양교陽橋까지 쳐들어오자 맹손孟孫(맹헌자)이 사자로 가길 청했고 목수, 여자 바느질공, 직공 등 모두 백여 명을 데리고 가서 뇌물로 바쳤으며, 공형公衡을 인질로 주고 결맹을 청하였다. 초나라는 강화를 수락했다

11, 성공이 초의 공자영제公子嬰齊, 채 경공, 허 영공, 우대부 열, 송 화원, 공손녕, 위 손량부, 정 공자거질 그리고 제나라의 대부와 촉에서 결맹했다. 『춘추』에 결맹에 참석한 경들의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은 거짓 동맹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진나라를 두려워해 초나라와 몰래 결맹했기 때문에 ‘거짓 결맹匱盟’이라 말한 것이다. 채 경공과 허 영공을 『춘추』에 쓰지 않은 까닭은 초왕의 전차에 함께 탔기 때문인데, 이를 지위를 잃었다라고 말한다

군자가 말한다. “지위란 삼가지 않을 수 없다! 채나라와 허나라의 군주가 한 번 그의 지위를 잃자 제후의 반열에 서지 못했으니 하물며 군주보다 낮은 지위의 사람들이랴! 『시』(『대아·가락』)에 ‘지위에 태만하지 않으니 백성들이 쉴 수 있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초군이 송나라에 이르렀을 때 인질로 갔던 공형이 도망쳐 돌아왔다. 장선숙이 말했다. “형보(공형)는 겨우 몇 년의 불편을 감내하지 못하고 노나라를 버렸으니 나라가 장차 어찌될 것인가? 화를 입을 자 누구인가? 후대에 필경 이 화를 당할 자 있으리라! 나라를 버렸기 때문이다.” 이번 정벌에 진나라는 초나라와 전쟁을 회피했다. 초의 대군을 두려워한 것이다

군자는 말한다. “‘수의 우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부가 원수를 맡았지만 오히려 숫자로 승리를 거뒀다. 하물며 명철한 군주가 이를 잘 활용한다면 말할 나위가 없다. 「대서」의 이른바 상나라의 억조창생은 각각 다른 마음이었지만 주나라는 열 사람이 한 마음이었다. 이것이 바로 ‘수의 우위’다.”  


원문

宣公使求好于莊王宣公不克作好. 公卽位受盟于. 人不行使于而亦受盟于從於伐. 令尹子重陽橋之役以救. 將起師子重: 君弱群臣不如先大夫師衆而後可. : 濟濟多士文王以寧.文王猶用衆況吾儕乎? 且先君莊王屬之曰: 無德以及遠方莫如惠恤其民, 而善用之.’” 乃大戶已責逮鰥救乏赦罪. 悉師王卒盡行. 彭名御戎蔡景公爲左許靈公爲右. 二君弱冠之.

師侵遂侵我師于. 使臧孫. 辭曰: 遠而久固將退矣. 無功而受名臣不敢.侵及陽橋孟孫請往賂之以執斲·執鍼·皆百人公衡爲質以請盟. 人許平.

十一月公及楚公子嬰齊·蔡侯·許男·右大夫·宋華元·陳公孫寧·衛孫良夫·鄭公子去疾齊國之大夫盟于. 卿不書, 匱盟也. 於是乎畏而竊與故曰匱盟. 蔡侯·許男不書車也謂之失位.

君子曰: 位其不可不也乎! ·之君一失其位不得列於諸侯況其下乎! : 不解于位民之攸.其是之謂矣.

師及公衡逃歸. 臧宣叔: 衡父不忍數年之不宴以棄魯國國將若之何? 誰居? 後之人必有任是夫! 國棄矣.

是行也畏其衆也. 君子曰: 衆之不可以[1]已也. 大夫爲政猶以衆克況明君而善用其衆乎? 大誓所謂兆民離十人同者衆也.



[1] 완각본에는 “이”자가 없다. 여기선 『석경』과 송본 그리고 금택문고본을 따라 덧붙였다.


관련 주석

宣公使求好于: 선공이 일찍이 초나라에 사신을 파견한 일이 『좌전·선공18년』에 보인다.

莊王宣公不克作好: 두 “호”자는 모두 거성으로 읽는다.

公卽位受盟于: 전년 진나라와 적극의 결맹이 있었다.

: 안의 전쟁이다.

人不行使于: 초나라를 예방하지 않았다.

而亦受盟于從於伐: 안의 전쟁에 위나라 군사가 참전했다.

令尹子重陽橋之役以救: 자중에 대해선 『좌전·선공11년』의 주석 참고.

將起師子重: 君弱: 『좌전·양공13년』에 따르면, 초 공왕이 10세일 때 장왕이 죽었으므로 현재 공왕은 12,3세 정도이다.

群臣不如先大夫師衆而後可. : 濟濟多士文王以寧.: 『대아·문왕』의 시구이다. “제제”는 행동거지가 위엄이 있는 모습이다. 인재가 많은 모양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 편안하다.

文王猶用衆況吾儕乎? 且先君莊王屬之曰: 위탁하다()과 같다. 공왕을 우리들에게 부탁했다는 말이다.

無德以及遠方莫如惠恤其民, 而善用之.’” 乃大戶: 호구를 정리하다.

已責: , 그치다(). 채무()와 같다. 국가에 대한 인민들의 부채를 면제하다.

逮鰥: 미치다. 연로하고 독거하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다.

救乏: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다.

赦罪: 이상 조치했던 것들이 “은혜를 베풀어 사람들을 구휼하다”.

悉師: 나라의 군사를 모두 동원하니 “用之”이다.

王卒盡行: 초왕의 호위 군사 역시 모두 출동했다.

彭名御戎蔡景公爲左許靈公爲右: 비록 공왕은 출정하지 않았지만 “왕의 호위군사 역시 모두 출동했다”는 것을 보면 왕의 전차 부대 역시 동행했다. 공왕이 전차에 탔다면 중간에 자리하고 마부가 좌측, 거우가 우측에 섰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공왕이 출정하지 않았으므로 마부가 중간에 서고 나머지 두 사람이 좌우에 섰다.

二君弱冠之: 성년이 되지 않아 오히려 관례를 거행하는데 신경써야 했다. 거좌와 거우가 되는 것은 필시 관례를 거행한 후의 일이다.

춘추좌전 지도 - 공왕의 위나라 노나라 정벌 


師侵遂侵我師于: , 『좌전·선공18년』에 보인다.

使臧孫: 장손은 장선숙臧宣叔 장손허臧孫許이다.

辭曰: 遠而久: 초의 출동한 군대는 본국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이미 출동한 지 오래 되었다.

固將退矣. 無功而受名臣不敢.: 장손허는 초군이 곧 스스로 철군할 것으로 여겼으므로 만약 교섭하러 가면 필경 초나라 군사를 물러가게 한 헛된 명예를 얻을까싶어 사명을 거절한 것이다.

侵及陽橋孟孫請往賂之以執斲·執鍼·: 맹손은 맹헌자孟獻子 중손멸仲孫蔑이다. 두예의 주석에 따르면 집착執斲 목공이고, 집침執鍼은 여자 바늘질공, 직임은 베와 비단을 짜는 공인이다.

皆百人公衡爲質: 두예: “공형은 성공의 아들이다.” 그러나 성공은 당시 아직 자식이 없었다. 혹 선공의 아들이나 성공의 아우일 수 있다. 두예의 주석은 믿기 어렵다. 심흠한의 『보주』의 설명을 참고했다.

以請盟. 人許平: 주석 없음.

十一月公及楚公子嬰齊·蔡侯·許男·右大夫·宋華元·陳公孫寧·衛孫良夫·鄭公子去疾齊國之大夫盟于: 음은 열이다. “우대부”는 진나라의 관명으로 생각된다. 양공 11년에도 “우대부 첨”이 있다. 심숙의 『춘추경완』에 그에 대한 설명이 있다. 장자초의 『춘추송주변의』: 12개 나라가 촉에서 결맹했고 진나라의 대부도 참석했다. 진과 노의 거리는 매우 멀다. 회맹을 약속하고 진나라가 도착하려면 이렇게 먼 거리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는 필경 진의 대부가 초나라를 따라서 종군한 것이다.” 그의 주장은 무리가 없다. 두예: “제나라의 대부는 그의 성명을 기록하지 않았는데 그가 경의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춘추』에선 조나라·주나라·설나라 그리고 증나라 등 네 나라가 맹회에 참석했다. 『좌전』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은 생략한 것일뿐이다.

卿不書, 匱盟也: 두예: “궤 결핍이다.「진어5: “그의 말이 궤한 까닭은 신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소의 주석: “궤는 결핍이다.” 이 맹회는 진심이 결여된 회맹이다. 그래서 다음해 노나라, 송나라 그리고 위나라 등의 나라가 다시 진나라 군사와 함께 정나라를 공격했다. 심흠한의 『보주』: “궤는 빔이다. 즉 이 맹회는 공허하다는 뜻이다.” 유월의 『평의』는 “궤”를 “회”로 읽고, “속이다”로 풀이했다. 장병린의 『독』은 “궤”를 “궤”로 읽고 “도망치다()”로 해석했는데 모두 견강부회한 설명이다.

於是乎畏而竊與故曰匱盟. 蔡侯·許男不書車也謂之失位: 『춘추』에서 채나라와 허나라를 쓰지 않았다. 한 나라의 군주가 초왕의 전차를 타고 그의 좌우가 되었으므로 “지위를 잃었다”라고 쓴 것이다.

君子曰: 位其不可不也乎! ·之君一失其位不得列於諸侯況其下乎! : 不解于位民之攸.: 『대아·가락』의 시구이다. 는 태만하다()와 같다. 의 음은 기이고 휴식이다. 즉 지위에 있는 사람은 태만해서는 안되며 그래야 백성이 편히 쉴 수 있다는 뜻이다.

其是之謂矣.: 주석 없음.

師及公衡逃歸. 臧宣叔: 衡父不忍數年之不宴: 형보는 곧 공형이다. 편안함.

以棄魯國國將若之何? 誰居?: ”거”는 어말조사. 의문을 표시하다. 『사전』에 용례가 보인다.

後之人必有任是夫! 國棄矣.: 공형은 나라를 저버렸다. 그의 후인 중에 필경 이로 인해 화를 입는 자가 있을 것이다.

是行也: 피하다()와 같다.

畏其衆也. 君子曰: 衆之不可以已也: 완각본에는 “이”자가 없다. 여기선 『석경』과 송본 그리고 금택문고본을 따라 덧붙였다.

大夫爲政: 대부는 광의의 뜻으로 쓰여 경을 포괄한다. 실제로는 초나라의 주장인 자장을 가리킨다.

猶以衆克況明君而善用其衆乎? 大誓所謂兆民離十人同者: 「대서」는 「진서」이고, 『상서』의 편명이다. 현재의 「진서」는 위중의 위다. 염약거의 『상서고문소증』권1에 설명이 있다. 『좌전·소공24년』에서도 「대서」를 인용하여, “주 임금에게는 억조 창생이 있었지만 각각 다른 마음을 가졌고, 나에게는 현명한 신하 열이 있고 우리는 한 마음, 한 뜻을 가지고 있다.” 혹 이것이 원문일 수 있고, 兆民離十人同 8글자는 인용한 이가 뜻을 개괄한 것일 수 있다.

衆也.: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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