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21의 게시물 표시

담나라郯 (춘추좌전.8.8.10.)

이미지
진나라의 사섭 士燮 이 우리나라를 빙문하여 담나라를 정벌할 것을 명하였는데 저들이 오나라를 섬겼기 때문이다 . 성공이 사섭에게 뇌물을 주고 출병을 늦춰줄 것을 청하였다 . 문자 文子 ( 사섭 ) 는 거절했다 . “ 군명의 수행에 다른 마음을 품을 수 없습니다 . 신뢰를 잃고서 존립할 수 없습니다 . 예법에는 법도를 넘는 예물이 없고 , 일처리는 서로 다른 두 가지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 다른 제후보다 늦으시면 과군은 군주를 섬길 수 없을 것입니다 . 섭은 가서 말씀하신 대로 복명하겠습니다 .” 계손은 두려워 선백 宣伯 에게 군사를 인솔하여 함께 담나라를 정벌하게 하였다 . 원문 晉士燮 來聘 , 言伐 郯 也 , 以其事 吳 故 . 公賂之 , 請緩師 . 文子 不可 , 曰 : “ 君命無貳 , 失信不立 . 禮無加貨 , 事無二成 . 君後諸侯 , 是寡君不得事君也 . 燮 將復之 . ” 季孫 懼 , 使 宣伯 帥師會伐 郯 . 관련 주석 ▣ 晉士燮 來聘 , 言伐 郯 也 , 以其事 吳 故 : 성공 7 년의 일이다 . 춘추좌전 지도 - 담나라 ▣ 公賂之 , 請緩師 . 文子 不可 : 문자는 사섭이다 . ▣ 曰 : “ 君命無貳 , 失信不立 :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면 군신 간의 신의를 잃고 자립할 수 없게 된다 . ▣ 禮無加貨 : 예에 규정된 예물을 제외하고는 더 받지 않았다 . 뇌물을 거절한 것이다 . ▣ 事無二成 : 출병과 늦춤 , 두 가지 일 중 하나만 얻다 . 여기서는 늦춤을 거절하다 . ▣ 君後諸侯 , 是寡君不得事君也 : 두예 : “ 노나라와 국교를 단절하려고 하다 .” ▣ 燮 將復之 . ” : ‘ 복지 ’ 는 귀국하여 이 사실 ( 노나라가 출병을 늦추겠다는 사실 ) 을 진 경공에게 복명하다 . ▣ 季孫 懼 , 使 宣伯 帥師會伐 郯 .: 주석 없음 .

거구공渠丘公과 신공무신 (춘추좌전.8.8.8)

이미지
진 경공이 신공 무신을 사신으로 삼아 오나라로 파견할 때 거나라한테 길을 빌렸다 . 무신이 거구공 渠丘公 과 해자에 서서 말하였다 . “성이 매우 부실합니다 . ” 거구공이 대답했다 . “보잘것없는 나라가 이 夷 의 땅에 있는데 누가 우리를 염두에 두겠습니까 ? ” 무신이 대답했다 . “무릇 교활하게 영토를 넓혀 사직을 이롭게 하려는 자가 어느 나란들 없겠습니까 ? 그래서 세상에 대국이 많은 것입니다 . 혹자는 이를 대비하고 혹자는 태만할 뿐입니다 . 용맹한 사람도 안팎으로 문을 걸어 닫는데 하물며 나라이겠습니까 ? ” 원문 晉侯 使 申公巫臣 如 吳 , 假道于 莒 . 與 渠丘公 立於池上 , 曰 : “ 城已惡 . ” 莒子 曰 : “ 辟陋在夷 , 其孰以我爲虞 ? ” 對曰 : “ 夫狡焉思 啟 封疆以利社稷者 , 何國蔑有 ? 唯然 , 故多大國矣 . 唯或思或縱也 . 勇夫重閉 , 況國乎 ? ” 관련 주석 ▣ 晉侯 使 申公巫臣 如 吳 , 假道于 莒 . 與 渠丘公 立於池上 : 거구공 渠丘公 은 『춘추·성공 14 년』의 거자주 莒子朱 이다 . 거 莒 는 당시 이국 夷國 이었고 군주는 시호가 없었으며 지명으로 호를 삼았다 . 마치 양공 31 년의 리비공과 소공 4 년의 저구공 , 소공 14 년의 거교공 , 희공 26 년의 자평공과 같은 예다 . 소공 19 년의 거공공의 공 역시 시호가 아니라 지명이다 . 거구 渠丘 는 거 莒 나라 땅으로 『청일통지』에 따르면 , 현 산동성 거현 莒縣 의 북쪽이다 . 『후한서·군국지』에선 안구현에 거구정이 있는데 혹자는 이곳을 본문의 거구라고 주장하지만 옳지 않다 . 강영의 『고실』과 심흠한의 『지명보주』에 그 설명이 자세하다 . 소공 11 년까지 거구는 제나라 땅이었다 . 지는 성을 에워싼 해자이다 . 춘추좌전 지도 - 거나라 ▣ 曰 : “ 城已惡 . ” : 이 已 는 태 太 의 뜻 . ▣ 莒子 曰 : “ 辟陋在夷 , 其孰以我爲虞 ? ” : 우 虞 는 망 望 . 이 편벽한 곳에 있는 오랑캐의 땅을 누가 넘보겠는가라는 뜻 . 장병린의

조무趙武 (춘추좌전.8.8.6)

진의 조장희 趙莊姬 는 ( 조동과 조괄에 의해 ) 조영이 축출된 일로 ( ☞ 8.5.1. ) 경공에게 두 사람을 참소하여 말했다 . “원 ( 조동 ) 과 병 ( 조괄 ) 이 반란을 일으키려 합니다 . ” 난씨와 극씨가 증인이 되었다 .  6 월 , 진나라는 조동과 조괄을 토벌했다 . 조무 趙武 는 조장희를 따라 궁에서 자랐기 때문에 화를 면했다 . 조씨의 재산을 기해 祁奚 에게 하사했다 . 한궐이 경공에게 아뢰었다 . “성계 成季 ( 조최 ) 의 공로와 선맹 宣孟 ( 조돈 ) 의 충성에도 조씨에 후사가 없게 된다면 선을 행하는 신하들이 두려워할 것입니다 . 삼대의 영명한 왕들은 모두 수백 년간 하늘의 복을 받았습니다 . 허나 어찌 그 후손들 중에 포악한 군주가 없었겠습니까 ? 모두 선대의 영명한 덕에 의지하여 화를 면한 것입니다 . 『주서』에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을 함부로 하지 말라 . ’고 하였으니 이는 덕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 ” 이에 조무를 조씨의 후계로 세우고 조씨의 재산을 그에게 돌려주었다 . 원문 晉趙莊姬 爲 趙嬰 之亡故 , 譖之于 晉侯 , 曰 : “ 原 · 屏 將爲亂 . ” 欒 · 郤 爲徵 . 六月 , 晉 討 趙同 · 趙括 . 武 從 姬氏 畜于公宮 . 以其田與 祁奚 . 韓厥 言於 晉侯 曰 : “ 成季 之勳 , 宣孟 之忠 , 而無後 , 爲善者其懼矣 . 三代之令王皆數百年保天之祿 . 夫豈無辟王 ? 賴前哲以免也 . 『 周書 』 曰 : ‘ 不敢侮鰥寡 ’, 所以明德也 . ” 乃立 武 , 而反其田焉 . 관련 주석 ▣ 晉趙莊姬 爲 趙嬰 之亡故 : 장희는 진 성공의 여식이다 . 조영은 성공 5 년에 축출되었다 . ▣ 譖之于 晉侯 : 지 之 는 문맥을 보면 원동과 병괄을 가리킨다 . ▣ 曰 : “ 原 · 屏 將爲亂 . ” 欒 · 郤 爲徵 : 난씨와 극씨는 장희의 참소에 대해 증인이 되었다 . ▣ 六月 , 晉 討 趙同 · 趙括 : 「진세가」 : “조동과 조괄을 주살하고 일족을 멸했다 . ” ▣ 武 從 姬氏 畜于公宮 : 금택문고본엔 “무 武 ”자

종선여류從善如流 (춘추좌전.8.8.2)

진의 난서 欒書 가 채나라를 침략하고 이어 초나라를 침략해 신려 申驪 를 사로잡았다 . (3 년 전 ) 초군이 회군할 때 진나라는 침 沈 나라를 침략하여 군주 읍초 揖初 를 사로잡았는데 지장자 ( 순수 ), 범문자 ( 사섭 ), 한헌자 ( 한궐 ) 의 계략을 따른 것이었다 . ( ☞ 8.6.11.)  군자가 말한다 . “좋은 의견을 따름이 물 흐르듯 하구나 , 공적을 이룬 것이 당연하다 ! 『시』 ( 『대아·한록 旱麓 』 ) 에 ‘훌륭한 군자가 어찌 인재를 등용하지 않을까 ? ’라고 말하는데 , 좋은 인재를 구함이다 ! 인재를 등용했기에 이런 공적이 있었다 . ” 이번 싸움에 정 성공이 진의 군사와 합류하여 허나라의 동문을 공격해 많은 포로들을 사로잡았다 . 원문 晉欒書 侵 蔡 , 遂侵 楚 , 獲 申驪 . 楚 師之還也 , 晉 侵 沈 , 獲 沈子揖初 , 從 知 · 范 · 韓 也 . 君子曰 : “ 從善如流 , 宜哉 ! 『 詩 』 曰 : ‘ 愷悌君子 , 遐不作人 ? ’ 求善也夫 ! 作人 , 斯有功績矣 . ” 是行也 , 鄭伯 將會 晉 師 , 門于 許 東門 , 大獲焉 . 관련 주석 ▣ 晉欒書 侵 蔡 : 두예는 성공 6 년의 채나라 침략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던 까닭이라고 설명한다 . ▣ 遂侵 楚 , 獲 申驪 : 두예는 “신려 申驪 는 초나라 대부”라고 설명한다 . ▣ 楚 師之還也 : 두예는 “성공 6 년 요각에서 마주쳤던 일이다”라고 말한다 . ▣ 晉 侵 沈 , 獲 沈子揖初 : 두예는 “이때부터 ( 自是 ) ”로 “초”자를 해석했다 . 즉 “침자읍”을 한 구로 보고 , “초”자는 다음 문구에 이어진다고 본 것인데 문맥이 통하기 어렵다 . 여기서는 죽첨광홍의 『회전』에서 “ 沈子揖初 ”로 끊어 읽은 것을 따른다 . ▣ 從 知 · 范 · 韓 也 : 진이 침의 군주를 사로잡은 것은 모두 난서가 순수 등의 계책을 따른 것이라는 뜻 . ▣ 君子曰 : “ 從善如流 : 『좌전·소공 13 년』에도 이 말이 있다 . 당시의 상투어임을 알 수 있다 .

계문자, 문양汶陽 (춘추좌전.8.8.1.)

이미지
성공 8 년 봄 , 진 경공이 한천 韓穿 을 우리나라로 보내 문양 汶陽 을 제나라에 돌려주라고 말했다 .  춘추좌전 지도 - 문양汶陽 계문자가 한천을 전송하며 개인적으로 말했다 . “대국은 정의를 제정하여 맹주가 됩니다 . 이 때문에 제후들은 그의 덕을 사모하고 그의 토벌을 두려워하여 두 마음을 가지지 않습니다 . 귀국은 문양은 폐읍의 옛 땅이라고 말하며 제나라에 군사를 동원하여 그 땅을 폐읍에 귀속시키게 했습니다 . 이제와 또다른 명을 내려 ‘제나라에 돌려주라 . ’고 합니다 . 신의로 의를 행하고 , 의로써 명을 성취하는 것이 소국이 소망하고 사모하는 것인데 신의를 알 수 없고 의가 설 곳이 없다면 사방의 제후들 중 누군들 와해되지 않겠습니까 ? 『시』 ( 『위풍·맹 氓 』 ) 에 ‘여인은 변함없는데 장부의 마음이 변했구나 . 장부가 줏대 없이 두 갈래 세 갈래 마음이네 . ’라고 말합니다 . 7 년 간 한 번 주고 한 번 빼앗으니 줏대 없는 마음이 이보다 더 클 수 있습니까 ? 장부도 줏대가 없으면 훌륭한 배필을 잃는데 하물며 패주는 어떻겠습니까 ? 패주는 덕으로 일처리를 해야 하는데 오락가락하면 무슨 수로 오랫동안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 ? 『시』 ( 『대아·판 』 ) 는 ‘꾀가 원대하지 못하여 이처럼 크게 간언한다 . ’고 말합니다 . 저 , 행보는 귀국이 원대한 지략을 가지지 못하고 제후의 신망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 그래서 감히 이렇게 사적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 ”    원문 八年春 , 晉侯 使 韓穿 來言 汶陽 之田 , 歸之于 齊 . 季文子 餞之 , 私焉 , 曰 : “ 大國制義 , 以爲盟主 , 是以諸侯懷德畏討 , 無有貳心 . 謂 汶陽 之田 , 敝邑之舊也 , 而用師於 齊 , 使歸諸敝邑 . 今有二命 , 曰 : ‘ 歸諸 齊 ’, 信以行義 , 義以成命 , 小國所望而懷也 . 信不可知 , 義無所立 , 四方諸侯 , 其誰不解體 ? 『 詩 』 曰 : ‘ 女也不爽 , 士貳其行 . 士也罔極 , 二三其德 . ’ 七年之中 , 一與一奪 , 二三孰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