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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나라 식규, 초 문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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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3.  채 애공이 신 莘 ( 하남성 여남현 汝南縣 ) 의 전쟁 때문에 식후에 앙심을 품고 초 문왕에게 식규의 미모를 칭찬했다 . ( ☞ 3.10.3.) 문왕이 식나라를 방문했는데 음식을 준비해 연회를 베푼다는 핑계로 가서 마침내 멸망시켰다 . 식규를 데리고 돌아왔고 그녀에게서 도오 堵敖 와 성왕 成王 을 얻었다 . 식규는 왕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 문왕이 그 이유를 물었다 . “제가 아녀자로서 두 지아비를 섬겼습니다 . 설령 죽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 말까지 걸겠습니까 ? ” 문왕은 채후의 농간으로 식나라를 멸망시켰기 때문에 결국 채나라를 정벌했다 . 가을 7 월 , 초나라는 채나라로 쳐들어갔다 .  군자가 말하였다 . “『상서』에 소위 ‘ 악이 만연하니 마치 들판에 불길이 치솟는 것과 같다 . 가까이 갈 수 없으니 불을 끌 수 있겠는가 ? ’하였는데 이는 채 애공을 두고 한 말과 같다 . ” 원문 蔡哀侯 爲 莘 故 , 繩 息 媯 以語 楚子 . 楚子 如 息 , 以食入享 , 遂滅 息 . 以 息 媯 歸 , 生 堵敖 及 成王 焉 . 未言 . 楚子 問之 . 對曰 : “ 吾一婦人 , 而事二夫 , 縱弗能死 , 其又奚言 ? ” 楚子 以 蔡侯 滅 息 , 遂伐 蔡 . 秋七月 , 楚 入 蔡 . 君子曰 : “『 商書 』 所謂 ‘ 惡之易也 , 如火之燎于原 , 不可 鄉 邇 , 其猶可撲滅 ’ 者 , 其如 蔡哀侯 乎 ! ” 춘추시대 지도 - 식나라 식규 👉 관련 주석과 춘추좌전 완역 포스트  

정 여공 복귀 - ‘요妖’ - 3.14.2.

3.14.2.  역 櫟 ( 하남성 우현 禹縣 ) 에 머물던 정 여공이 국도를 공격해 대릉 大陵 ( 밀현 密縣 과 신정 新鄭 의 사이 ) 에 이르렀고 부하 傅瑕 를 사로잡았다 . 부하가 말했다 . “저를 풀어주시면 군주의 복위를 돕겠습니다 . ” 그와 결맹한 후 사면했다 . 6 월 갑자일 (20 일 ), 부하가 정자 ( 자의 ) 와 두 아들을 죽이고 여공을 국도로 들였다 . 애초 , 궁 안의 뱀과 궁 밖의 뱀이 정나라 도성 남문에서 싸웠는데 궁 안의 뱀이 죽었다 . 그로부터 6 년 후 여공이 복위했다 . 노 장공이 뱀의 얘기를 듣고 신수에게 물었다 . “정말 ‘요 妖 ’라는 것이 존재하오 ? ” “사람이 꺼리는 바의 기운이 불같이 일어나 ‘ 요 ’ 가 발생합니다 . ‘ 요 ’ 는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일어납니다 . 사람에 틈이 없다면 ‘ 요 ’ 가 스스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 평상심을 잃으면 ‘ 요 ’ 가 일어나니 ‘ 요 ’ 의 발생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 ” 여공이 국도로 들어와 곧바로 부하를 죽였다 . 원번 原繁 에게 사람을 보내 말했다 . “부하는 두 마음을 지녔소 . 주나라에는 상형이 있으니 그는 그 죄를 치른 것이오 . 나를 인정하고 두 마음을 품지 않는 사람에겐 모두 상대부의 직무를 맡길 것이오 . 나는 백부와 함께 이 일을 의논하고 싶소 . 그런데 과인이 밖에 머물 때 백부는 내게 나라 안의 상황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소 . 복위한 후에도 과인을 염려해주지 않으니 매우 유감이오 . ” 원번이 대답했다 . “선군 환공께서 저의 선조를 전사종석 典司宗 祏 에 임명하여 종묘의 신주를 관리하게 하였습니다 . 사직에 주인이 있는데 밖으로 마음을 돌린다면 이보다 더 큰 두 마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 실로 사직을 주관하는 자가 있다면 이 나라의 어느 누가 그의 신하가 아니겠습니까 ? 신하로서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 하늘의 법도입니다 . 자의가 재위한 지 이미 14 년이니 군주의 복귀를 모의한 이들을 어찌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 아니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

금복고金僕姑, 남궁장만南宮長萬 - 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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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4.  승구 乘丘 의 전쟁에서 노 장공이 금복고 金僕姑 라는 화살로 송나라의 남궁장만 南宮長萬 을 쏴 융우 천손이 그를 생포했다 . 송나라가 그의 석방을 청했다 . 송 민공이 남궁장만을 조롱했다 . “처음에 그대를 존경했으나 이제 노나라의 포로가 되었으니 더 이상 존경할 수 없소 . ” 장만은 이를 치욕스럽게 여겼다 . 원문 乘丘 之役 , 公以金僕姑射 南宮長萬 , 公右 歂 孫 生搏之 . 宋 人請之 . 宋公 靳之 , 曰 : “ 始吾敬子 ; 今子 , 魯 囚也 , 吾弗敬子矣 . ” 病之 . 👉 관련 주석과 춘추좌전 완역 포스트  

승구乘丘전쟁 - 전戰’, 패적敗績’, ‘극克’, ‘취모사取某師’, ‘왕사패적우모王師敗績于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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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1.  장공 11 년 여름 , 송나라가 승구 乘丘 ( 산동성 연주현 兗州縣 ) 의 전쟁 ( ☞ 3.1.2.) 에서 패배한 까닭에 우리를 침략했고 장공은 이를 방어했다 . 송나라 군사가 미처 진용을 갖추기 전에 압박해 자 鄑 ( 노 · 송의 경계 ) 에서 물리쳤다 . 군의 범례에 따르면 , 적이 미처 진용을 갖추기 전에 승리하면 ‘패모사 敗某師 ’ , 양쪽이 진용을 갖춘 후의 싸움은 ‘전 戰 ’ , 대패는 ‘패적 敗績 ’ , 장수를 사로잡으면 ‘극 克 ’으로 쓴다 . 또 매복하여 물리친 것은 ‘취모사 取某師 ’라 하고 , 주나라 왕의 군사가 패한 것은 ‘왕사패적우모 王師敗績于某 ’라고 쓴다 . 원문 十一年夏 , 宋 爲 乘丘 之役故 , 侵我 . 公禦之 . 宋 師未陳而薄之 , 敗諸 鄑 .  凡師 , 敵未陳曰敗某師 , 皆陳曰戰 , 大崩曰敗績 , 得雋曰克 , 覆而敗之曰取某師 , 京師敗曰王師敗績于某 . 춘추좌전 지도 - 승구 👉 관련 주석과 춘추좌전 완역 포스트  

장작전투(長勺) - 육식자肉食者

본문 3.10.1.  장공 10 년 봄 , 제나라 군이 우리나라를 정벌했다 . 장공은 맞아 싸우려 했다 . 조계 曹 劌 가 알현을 청했다 . 그의 이웃이 말했다 . “높은 사람들 ( 肉食者 ) 이 도모하는 일에 왜 간섭하려 하는가 ? ”  “높은 사람들은 생각이 고루하여 멀리 보지 못하네 . ” 조계가 이내 입궁하여 장공을 알현하고 , 무엇에 의지해 전쟁을 하려는 지 여쭈었다 . 장공이 말했다 . “좋은 옷과 음식을 독차지하지 않았고 반드시 나누었다 . ” “작은 은혜는 두루 미치지 못하니 백성들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 ” “희생과 옥백 등의 제물을 섣불리 더하지 않았으며 신께 반드시 사실대로 고하였다 . ” “작은 믿음은 나라를 두루 덮지 못하므로 신이 복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 ” “크고 작은 송사에 비록 다 살펴보지 못했지만 반드시 그 실정을 살폈다 . ” “그것은 충 에 속하므로 일전을 벌일 만합니다 . 제가 군주를 시종할 수 있게 청합니다 . ” 장공이 조계를 융거에 태웠다 . 장작 長勺 ( 곡부현 曲阜縣 북쪽 ) 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 공이 싸움을 개시하는 북을 치려는 찰나 조계가 말렸다 . “아직 이릅니다 . ” 제나라쪽에서 북을 세 번 치자 조계가 말했다 . “지금입니다 ! ” 제나라 군사가 크게 패배했다 . 장공이 적을 추격하려 하자 조계가 말했다 . “아직 안 됩니다 . ” 전차에서 내려 적의 수레바퀴 자국을 살펴보고 횡목에 올라 내다보며 말했다 . “추격해도 되겠습니다 . ” 이어 제나라 군사를 추격했다 .  승리를 거둔 후 , 장공이 조계에게 그의 행위에 대한 까닭을 물었다 . 조계가 대답했다 . “무릇 전투는 군의 사기에 달려 있습니다 . 한 번 북을 치면 사기가 진작되고 두 번 북을 울리면 사기가 가라앉습니다 . 세 번 치면 이미 사기는 고갈됩니다 . 적의 사기는 고갈되고 아군의 사기는 넘치므로 적을 이길 수 있습니다 . 또한 대국의 전술은 예측이 어렵습니다 . 매복을 조심해야 합니다 . 적의 바퀴자국이 어지러운 것을 확인

관중과 포숙 - 재상이 된 관중

본문 3.9.5.  포숙 鮑叔 이 군사를 거느리고 노나라로 와서 말하였다 . “자규는 환공의 혈육이니 군주께서 그를 처벌해 주길 청합니다 . 관중과 소홀은 환공의 원수이니 그들을 넘겨받아 복수할 수 있도록 청합니다 . ” 이에 자규를 생두 生竇 ( 산동성 하택현 荷澤縣 의 북쪽 ) 에서 죽였고 소홀은 그를 따라 죽었다 . 관중은 죄인이 되기를 청하여 포숙이 인계 받아 당고 堂阜 ( 산동성 몽음현 蒙陰縣 의 서북쪽 ) 에 이르러서 그의 포박을 풀어주었다 . 포숙이 귀국하여 환공에게 아뢰었다 . “관이오는 고혜 高傒 보다 국정 운영이 뛰어나니 그를 재상으로 삼는 것이 좋습니다 . ” 환공은 그의 말을 따랐다 . 원문 鮑叔 帥師來言曰 : “ 子糾 , 親也 , 請君討之 . 管 · 召 , 讎也 , 請受而甘心焉 . ” 乃殺 子糾 于 生竇 . 召忽 死之 . 管仲 請囚 , 鮑叔 受之 , 及 堂阜 而稅之 . 歸而以告曰 : “ 管夷吾 治於 高傒 , 使相可也 . ” 公從之 . 👉 관련 주석과 춘추좌전 포스트 

간시乾時 전투

본문 3.9.4.  가을 , 노나라 군이 제나라 군과 간시 乾時 에서 싸워 노나라가 대패했다 . 장공은 병거를 잃고 다른 병거를 타고 귀국했다 . 진자 秦子 와 양자 梁子 가 장공의 깃발을 들고 곁길로 도망치며 적을 유인했다 . 이 때문에 그들은 모두 포로가 되었다 . 원문 秋 , 師及 齊 師戰于 乾時 , 我師敗績 . 公喪戎路 , 傳乘而歸 . 秦子 · 梁子 以公旗辟于下道 , 是以皆止 . 👉 관련 주석과 춘추좌전 완역 포스트  

제환공 등장 - 공손무지

본문 3.8.3.  제 양공이 연칭 連稱 과 관지보 管至父 를 시켜 규구 葵丘 ( 산동성 치박시 淄博市 서쪽 ) 를 수비하게 하였다 . 두 사람은 오이가 익을 즈음 떠났고 , 양공이 말했다 . “내년 오이가 익을 때 교대하라 . ” 수비를 맡은 지 일 년이 다 되었지만 양공의 명은 하달되지 않았다 . 교대를 청했지만 허락하지 않자 두 사람은 반란을 모의했다 .  제 희공의 친아우 이중년 夷仲年 이 아들 공손무지 公孫無知 를 두었는데 희공의 총애를 받아 의복 등에서 적자 ( 양공 ) 와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 양공이 즉위하여 그의 대우를 강등했다 . 연지보와 관칭은 이 때문에 무지의 지원을 받아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  연칭에겐 사촌누이가 있었는데 양공의 첩이었다 . 그녀는 총애를 받지 못했다 . 무지가 그녀에게 양공의 동정을 살피게 하고 약속했다 . “이번 일이 성사되면 너를 부인으로 삼을 것이다 . ”  겨울 12 월 , 제 양공이 고분 姑棼 ( 산동성 박흥현 博興縣 동북쪽 ) 으로 놀러 갔고 , 이어 패구 貝丘 ( 박흥현 남쪽 패중취 ) 로 사냥을 나갔다가 커다란 돼지와 마주쳤다 . 시종이 외쳤다 . “저 돼지는 공자팽생입니다 ! ” ( ☞ 2.18.1. ) 양공이 불같이 화를 냈다 . “감히 팽생이 나타나다니 ! ” 활을 쏘자 돼지가 마치 사람처럼 두 발로 서서 울부짖었다 . 양공이 겁에 질려 수레에서 떨어졌고 다리를 다쳤으며 신발을 잃어버렸다 .  돌아와 환관 비 費 에게 신발을 찾아오게 했지만 빈 손으로 돌아오자 채찍질을 했고 피가 흘러내렸다 . 비가 도망쳐 나오다가 반란군과 문에서 마주쳤다 . 그들이 협박하며 포박하자 비가 말했다 . “내가 이처럼 매를 맞고 군주를 위해 저항하겠는가 ? ” 웃옷을 벗어 등을 보여주었더니 그를 믿었다 . 비가 자신이 먼저 들어갈 것을 요청하여 양공을 숨긴 후 나와 반란군과 싸우다 문 사이에서 죽었다 . 시종 석지분여 역시 계단 아래에서 싸우다가 죽었다 . 마침내 반란군이 방 안으로 들어가 양공으로 위장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