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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목강의 것을 빼앗아 며느리 제강의 관을 짠 계문자 (춘추좌전.9.2.3.)

  ⊙ 기원전 571 년 . 진 도공 3 년 , 제 영공 11 년 , 초 공왕 20 년   여름 , 성공의 부인 제강 齊姜 이 서거했다 . 애초 , 선공의 부인 목강 穆姜 이 좋은 오동나무를 골라 자신이 쓸 관과 거문고를 제작하려고 했는데 계문자가 그것을 빼앗아 제강의 장례에 썼다 . 군자가 말한다 . “예가 아니다 . 예는 순리에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사람이다 . 시어머니의 것을 빼앗아 며느리의 장례에 사용했으니 이보다 더 큰 거스름이 없다 . 『시』 ( 『대아·억』 ) 에 ‘지혜로운 사람은 선한 말을 일러주면 덕을 따라 행한다 . ’라고 말한다 . 계손은 이때 현명하지 않았다 . 또 목강은 군주의 조모이다 . 『시』 ( 『주송·풍년』 ) 에 ‘술과 단술을 빚어 조부와 조모에게 올려 두루 예를 갖추니 모두에게 복을 내려 주시네 . ’라고 노래하지 않는가 . ” 원문 (9.2.3.)  夏 , 齊姜 薨 . 初 , 穆姜 使擇美檟 , 以自爲櫬與頌琴 , 季文子 取以葬 . 君子曰 : “ 非禮也 . 禮無所逆 . 婦 , 養姑者也 . 虧姑以成婦 , 逆莫大焉 . 『 詩 』 曰 : ‘ 其惟哲人 , 告之話言 , 順德之行 . ’ 季孫 於是爲不哲矣 . 且 姜氏 , 君之妣也 . 『 詩 』 曰 : ‘ 爲酒爲醴 , 烝 畀 祖妣 , 以洽百禮 , 降福孔偕 . ’” 주석 ⊙ 夏五月庚寅 : 경인일은 18 일이다 . ⊙ 夫人 姜氏 薨 : 성공의 부인 강씨이다 .   ▣ 夏 , 齊姜 薨 . 初 , 穆姜 使擇美檟 : 목강에 대해선 성공 9 년 , 11 년 그리고 16 년의 『좌전』의 주석에 상세하다 . 가 檟 의 음은 가 賈 이고 , 개오동나무 ( 楸 ) 이다 . 추 楸 의 음은 秋 이고 재질이 세밀하여 기구와 관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 미가는 개오동나무 중 좋은 것 . ▣ 以自爲櫬與頌琴 : 친 櫬 은 자신의 관을 말하는데 후대에 자신의 옷을 친의 襯衣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 송대 섭숭의 聶崇義 의 『삼례도』에 따르면 , 송금의

제나라의 침략을 받은 래萊나라가 숙사위夙沙衛에게 뇌물을 바치다 (춘추좌전.9.2.2.)

군주의 시호  제 영공이 래 萊 나라를 정벌하자 , 래나라는 정여자 正輿子 를 보내 숙사위 夙沙衛 에게 뇌물을 바쳤는데 좋은 말과 소를 선별했고 모두 백 필이었다 . 제나라 군대는 이내 돌아갔다 . 군자는 이 때문에 제 영공의 시호가 “영 靈 ”이 될 것임을 알았다 . 원문 (9.2.2.)  齊侯 伐 萊 , 萊 人使 正輿子 賂 夙沙衛 以索馬牛 , 皆百匹 , 齊 師乃還 . 君子是以知 齊靈公 之爲 “ 靈 ” 也 . 주석 ▣ 齊侯 伐 萊 , 萊 人使 正輿子 賂 夙沙衛 以索馬牛 , 皆百匹 : 정여자는 래나라의 현명한 대부이다 . 『순자·요문편』은 “래나라는 자마를 등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나라가 병탄할 수 있었다 . ”고 말하는데 , 양경은 “어떤 사람은 정여자의 자가 자마라고 설명한다 . ”고 설명했다 . 숙사위는 양공 17 년 , 18 년 그리고 19 년의 『좌전』에 여러 차례 보인다 . 일찍이 제나라의 소부였고 제 영공이 한때 그를 총애했다 . 색 索 은 선별하다 . 좋은 말과 소를 선별하였다는 의미 . 『예기·곡례하』의 “대부가 소를 선별하여 ( 大夫以索牛 ) ”에서 “색”자가 본문과 같다 . ▣ 齊 師乃還 : 숙사위가 뇌물을 받고 제 영공을 설득했다 . ▣ 君子是以知 齊靈公 之爲 ” 靈 ” 也 : 『좌전·양공 13 년』에서 초 공왕의 임종 당시의 유언에 대해 서술하는데 , 자신의 시호를 “영 靈 ” 혹은 “려 厲 ”로 하라고 말한 것으로써 충분히 “영”이 나쁜 시호임을 알 수 있다 . 제 영공은 “모든 것은 내게 달려 있을 뿐”이라는 권위로 태자 광을 폐하고 아 牙 를 세웠으며 숙사위를 그의 소부로 삼아 끝내 제나라를 혼란으로 밀어 넣었다 . 상세한 내용은 『좌전·양공 19 년』의 기사 참조 . 『중용』의 “문왕은 문을 시호로 삼았다 ( 文王 之所以爲文 ) ” , 『장자·칙양편』의 “위 영공은 영을 시호로 삼았다 ( 衛靈公 之爲靈 ) ” 등은 문구는 본문과 구법이 같다 . 다만 주 문왕은 생전의 시호인데 『중용』의 작자는 사후 시호로 착각했을 따름이

송나라를 침략하는 정나라 (춘추좌전.9.2.1.)

양공 2 년 봄 , 정나라 군대가 송나라를 침략했다 . 초나라의 명령이었다 . 원문 (9.2.1.)  二年春 , 鄭 師侵 宋 , 楚 令也 . 주석 ▣ 二年春 , 鄭 師侵 宋 , 楚 令也 : 두예 : “팽성의 싸움 때문이다 . ” 팽성은 본래 송나라 땅인데 초나라가 빼앗아 어석 등에게 주었다 . 작년 진 · 송 · 노 · 위 · 조 · 거 · 주 · 등 · 설 등의 나라가 팽성을 항복시켰기 때문에 이해 초나라가 정나라를 시켜 송나라를 침략하게 했다 . 

제후의 즉위와 빙문 (춘추좌전.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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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72년. (진 도공 2년, 위 헌공 5년, 초 공왕 19년) 겨울 , 위나라의 자숙 子叔 과 진나라의 지무자 知武子 ( 순앵 ) 가 와서 빙문했으니 예에 맞다 . 범례에 따르면 , 제후가 즉위하면 소국은 군주가 조견하고 대국은 경이 빙문하여 , 이전의 우호를 계승하고 신의를 결속하며 양국의 업무를 상의하고 상호간에 과오를 보완하는 것이 예의 큰 줄기이다 . 원문 (9.1.5.)  冬 , 衛子叔 · 晉知武子 來聘 , 禮也 . 凡諸侯卽位 , 小國朝之 , 大國聘焉 , 以繼好 · 結信 · 謀事 · 補闕 , 禮之大者也 . 주석 ⊙ 冬 , 衛侯 使 公孫剽 來聘 : 공손표는 자숙흑배의 아들이다 . 현재 전해지는 기에 위자숙무부고 ( 衛子叔 旡父 ) 가 있는데 , 『적미거금문설』에선 즉 공손표가 군주에 오르기 이전에 제작한 기라고 설명한다 . 표는 목공의 손자이며 정공의 아우의 아들이다 . 흑배에 대해서는 『좌전·성공 10 년』의 주석을 참조 . ( 참고 . 성공좌전 .10.2.: 衛子叔黑背 侵 鄭 , 晉 命也 .) ⊙ 晉侯 使 荀罃 來聘 : 당시 천자 간왕은 이미 서거했다 . 고대의 예에 근거하면 제후간에 예방을 한다 . 두예는 비록 왕이 사망은 했지만 부고가 아직 각 나라에 도착하지 않아 제후가 소식을 전해 듣지 못했고 사신은 이미 길을 떠난 상태였는데 대략 그 시간을 따져보면 건자를 기준으로 10 월 초라고 설명하고 있다 . ▣ 冬 , 衛子叔 · 晉知武子 來聘 : 자숙은 공손표이다 . 지무자는 순앵으로 『춘추』의 주석에 상세하다 . ▣ 禮也 . 凡諸侯卽位 , 小國朝之 : 주 선공이 노나라 양공을 예방한 일을 가리킨다 . ▣ 大國聘焉 : 위나라는 비록 대국은 아니지만 노나라와 비교하여 필적한다고 말할 수 있다 . 진나라는 이 당시 패자를 칭하고 있었지만 역시 제후국이다 . ▣ 以繼好 · 結信 · 謀事 · 補闕 : 두예 : “궐은 과실 過 과 같다 . ” ▣ 禮之大者也 :

주邾 선공의 내조 (춘추좌전.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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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선공의 내조 9 월 , 주 邾 선공이 우리나라를 예방했으니 예에 맞다 . 원문 (9.1.4.)  九月 , 邾 子 來朝 , 禮也 . 주석 ⊙ 邾 子 來朝 : 주자는 주나라 선공 宣公 이다 . 춘추시대 지도. 주 邾 나라

초나라의 자신이 정나라를 구원하다 (춘추좌전.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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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572 년 . 진 도공 2 년 , 초 공왕 19 년 , 송 평공 4 년.

진나라, 정나라를 정벌하고 연합군을 이끌고 초나라를 침략하다 (춘추좌전.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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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성彭城을 포위한 송나라 (춘추좌전.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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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장례 (춘추좌전.8.18.15.)

성공의 장례 『춘추』에 “ 정미일 (26 일 ), 우리 군주 성공의 장례를 치렀다 .” 고 적은 것은 절차가 순리에 맞았기 때문이다 . 원문  (8.18.15.) 丁未 , 葬我君 成公 , 書 , 順也 . 주석 ▣ 丁未 , 葬我君 成公 , 書 , 順也 : 두예의 주석에 따르면 , 노침에서 사망했고 5 개월 만에 장례를 치렀으며 나라가 안정된 상태에서 태자가 뒤를 이었기 때문에 “순조로왔다”고 말한 것이라 한다 . 과거 장공은 비록 노침에서 죽었지만 자반이 피살되었고 ; 선공도 노침에서 사망했지만 귀보가 망명하였기 때문에 성공의 사후의 상황처럼 순조롭지는 않았었다 . 

허정에서 회합하고 송나라를 구원하다. (춘추좌전.8.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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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에서 회합하고 송나라를 구원하다 12 월 , 맹헌자가 ( 진 도공 , 송 평공 , 위 헌공 , 주나라의 군주 , 제나라의 최저 와 ) 허정 虛 朾 ( 하남성 연진현 延津縣 의 동쪽 ) 에서 회합하고 송나라의 구원 문제를 논의했다 . 송나라는 제후들의 참전은 사양하고 군사만 요청하여 팽성을 포위했다 . 맹헌자는 제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귀국하여 성공의 장례에 참석했다 . 원문 (8.18.14)  十二月 , 孟獻子 會于 虛 朾 , 謀救 宋 也 . 宋 人辭諸侯而請師以圍 彭城 . 孟獻子 請于諸侯而先歸會葬 . 주석 ⊙ 十有二月 , 仲孫蔑 會 晉侯 · 宋公 · 衛侯 · 邾 子 · 齊崔杼 同盟于 虛 朾 : 심흠한의 『지명보주』에선 허정 虛 朾 은 현 산동성 사수현 泗水縣 이라고 한다 . 즉 노나라 땅으로 본 것이다 . 그러나 원유고 元兪皋 의 『춘추집전석의대성』에선 허정은 곧 허 虛 라고 주장한다 . 허는 『춘추·환공 12 년』의 주석을 참조하라 . 즉 송나라 땅이다 . 송나라 땅으로 보는 것이 비교적 정확하다 . 진의 군주는 아직 멀리 노나라 땅까지 올 수는 없었다 . 춘추시대 지도. 허정虛 朾 ▣ 十二月 , 孟獻子 會于 虛 朾 , 謀救 宋 也 . 宋 人辭諸侯而請師以圍 彭城 . 孟獻子 請于諸侯而先歸會葬 : 주석 없음 .

노나라에 출병을 요청한 진나라 (춘추좌전.8.18.13.)

노나라에 출병을 요청한 진나라 진나라의 사방 士魴 이 우리나라로 와서 출병을 요청했다 . 계문자가 장무중에게 동원할 군의 규모를 물었다 . 장무중이 대답했다 . “정나라를 정벌할 때 실로 지백 知伯 ( 순앵 ) 이 왔었는데 그는 하군의 보좌였습니다 . 지금 체계 彘季 ( 사방 ) 역시 하군의 보좌이므로 당시 출병시켰던 군사의 수와 동일하면 되겠습니다 . 대국을 섬길 때 , 사신의 지위에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고 좀더 더하여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 예입니다 . ” 계문자는 그의 의견을 따랐다 . 원문 (8.18.13.)  晉士魴 來乞師 . 季文子 問師數於 臧武仲 , 對曰 : “ 伐 鄭 之役 , 知伯 實來 , 下軍之佐也 . 今 彘季 亦佐下軍 , 如伐 鄭 可也 . 事大國 , 無失班爵而加敬焉 , 禮也 . ” 從之 . 주석 ⊙ 晉侯 使 士魴 來乞師 : “방 魴 ”은 『공양』에선 “ 彭 ”으로 쓴다 . 두 글자는 고음에서 유사하기 때문에 통가한다 . ▣ 晉士魴 來乞師 . 季文子 問師數於 臧武仲 : 장무중은 장손흘 臧孫紇 로서 장선숙 臧宣叔 , 장손허 臧孫許 의 아들이다 . 군사를 얼마나 낼지를 물어본 것 . ▣ 對曰 : “ 伐 鄭 之役 , 知伯 實來 : 지백은 순앵이다 . 지난해의 경문을 참조 . ▣ 下軍之佐也 . 今 彘季 亦佐下軍 , 如伐 鄭 可也 . 事大國 , 無失班爵而加敬焉 : 반작에 대해서는 『좌전·장공 23 년』을 참조 . 즉 사신으로 온 사람의 작위의 고하에 따라 출병의 수를 결정해야 하고 또 더 많을 수는 있지만 적게할 수는 없음을 말한 것 . ▣ 禮也 . ” 從之 : 주석 없음 .

팽성을 구하기 위해 송나라를 정벌한 초나라 자중 (춘추좌전.8.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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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성을 구하기 위해 송나라를 정벌한 초나라 자중 겨울 11 월 , 초나라의 자중이 팽성 彭城 ( 강소성 서주시 徐州市 ) 을 구원하기 위해 송나라를 정벌했다 . 송의 화원이 진나라로 가서 위급을 알렸다 .  한헌자가 집정이었고 , 말했다 . “사람을 얻으려면 반드시 먼저 그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 패업을 이루고 , 변경을 안정시키는 일은 송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 ” 여공은 태곡 台谷 ( 미상 ) 에 군사를 주둔시켜 송나라를 구원했다 . 미각지곡 靡角之谷 ( 팽성 부근 ) 에서 초군과 마주치자 초군이 퇴각했다 . 원문 (8.18.12.)  冬十一月 , 楚子重 救 彭城 , 伐 宋 . 宋華元 如 晉 告急 . 韓獻子 爲政 , 曰 : “ 欲求得人 , 必先勤之 . 成霸 · 安彊 [1] , 自 宋 始矣 . ” 晉侯 師于 台谷 以救 宋 . 遇 楚師 于 靡角之谷 , 楚 師還 . (1)   『석경』과 송본 , 금택문고본에는 모두 “강 疆 ”자로 쓴다 . 안강은 강역을 안정시킴의 뜻이다 . 그러나 초나라는 단지 송나라를 정벌하는 것이지 진나라를 정벌하는 것이 아니므로 진의 강역을 안정시킨다는 뜻으로 보기엔 무리다 . 그러므로 “강 彊 ”으로 쓰는 것이 옳다 . 주석 ▣ 冬十一月 , 楚子重 救 彭城 , 伐 宋 . 宋華元 如 晉 告急 . 韓獻子 爲政 : 당시 난서가 만약 많은 나이로 인해 은퇴를 요청한 것이 아니라면 사망한 것 같다 . 그래서 한궐이 그를 대신해 중군의 장수로 있었다 . 춘추시대 지도. 팽성 ▣ 曰 : “ 欲求得人 : 득인은 得諸侯 와 같다 . ▣ 必先勤之 : 근은 로 勞 . 그를 위해 힘쓰는 일이 있어야 한다 . 「진어 2 」의 “ 秦 人勤我矣 . ”에 대해 위소는 “근아 勤我 는 우리를 돕다 ( 助 ) 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 근과 조 역시 통한다 . ▣ 成霸 · 安彊 : “강”자는 『석경』과 송본 , 금택문고본에는 모두 “강 疆 ”자로 쓴다 . 안강은 강역을 안정시킴의 뜻이다 .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