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뢰에 성을 쌓아 정나라를 압박하다 (춘추좌전.9.2.5.)


호뢰에 성을 쌓아 정나라를 압박하다


정 성공이 병환에 들자 자사子駟는 진나라에 복종하여 민의 부담을 덜 수 있게 청하였다. 성공이 말했다. “초나라 군주가 우리 때문에 눈에 화살을 맞았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과인을 위해서였다. 초나라를 배신한다면 이는 초나라의 노력과 우리의 맹세를 저버리는 것이니 누가 우리와 친하게 지내려 하겠는가? 과인을 그런 불명예에서 벗어나게 할 사람들은 오직 그대들뿐이다.” (8.16.6.)

가을 7월 경진일(7), 정백 곤이 타계했다. 이때 자한子罕이 당국이었고, 자사가 집정이었으며, 자국은 사마였다. 진군이 정나라를 침략했다. 여러 대부들은 진나라에 복종하려 했다. 자사가 말했다. “군명이 아직 바뀌지 않았다.”

(노나라의 맹헌자가 진나라의 순앵荀罃, 송나라의 화원華元, 위나라의 손림보孫林父, 나라 그리고 주나라와) (하남성 복양현濮陽縣 북쪽)에서 회합했는데 정나라 때문이었다. 맹헌자가 말하였다. “호뢰虎牢에 성을 쌓아 정나라를 압박해야 합니다.”

지무자(순앵)가 말했다. “좋은 생각이오. 의 회합에서 최자가 한 말을 그대도 들었을 것이오. 오늘 제나라가 이 자리에 오지 않았고, 등나라, 설나라 그리고 소주 역시 참석하지 않았는데 모두 제나라 때문이오. 과군의 근심이 어찌 정나라 하나뿐이겠소? 앵이 제나라에 과군께 복명하고 축성에 참여토록 요청하겠소. 만약 제나라의 찬성을 얻어 제후들에게 통보할 수 있다면 이는 그대의 공로요. 만약 제나라의 수락을 얻지 못하면 제나라 땅에서 전쟁이 벌어질 것이오. 그대의 제안은 모든 제후들에게 이로운 일이지 어찌 과군께만 이로운 일이겠소?”



원문 

(9.2.5.) 鄭成公子駟請息肩於. 公曰: 楚君親集矢於其目非異人任寡人也. 若背之是棄力與言其誰暱我? 免寡人唯二三子.
秋七月庚辰鄭伯. 於是子罕當國子駟爲政子國爲司馬. 師侵. 諸大夫欲從. 子駟: 官命未改.
會于故也. 孟獻子: 請城虎牢以偪.知武子: . 之會吾子聞崔子之言今不來矣. ··之不至故也. 寡君之憂不唯. 將復於寡君而請於. 得請而告吾子之功也. 若不得請事將在. 吾子之請諸侯之福也. 豈唯寡君賴之.


주석

六月庚辰: 경인일은 경진일로부터 50일 후이다. 두예: “경진일은 7 7일이다.” 옳다.

鄭伯: 의 음은 곤이다. 성공의 이름이다. 

鄭成公子駟請息肩於: 자사는 공자비公子騑이고 『좌전·성공10년』의 주석에 상세한 설명이 있다. 『회남자·범론편』의 고유의 주석: “견은 부담할 일이다.” 두예의 주석에 근거하면, 정나라가 초나라에 복종했지만 초나라가 요구하는 일이 너무 과도하여 감당할 수 없었다. 자사는 이 때문에 다시 진나라에 복종하여 그 부역과 과도한 요구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의 해석은 상황에 부합한다.

公曰: 楚君親集矢於其目: 성공 16년 진나라와 초나라 간의 언릉의 전쟁에서 초 공왕은 진나라의 여기가 쏜 화살에 눈을 맞았다.

非異人任寡人也: 정 성공은 초 공왕이 눈을 상한 까닭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하였다. 임은 보호의 뜻. 非異人任非保異人의 도치문이다.

若背之是棄力與言: 『석문』에 근거하면, “기력”의 “력”자는 복건의 본엔 “”으로 쓰여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진어2」의 “공적을 세워 널리 베푸는 것에만 힘쓰고 덕을 쌓는 데는 관심이 없다(務施與力而不務德).”에 대해 위소는 “력은 공의 뜻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의 “력” 또한 통한다. “언”은 정나라와 초나라 사이의 맹세다.

其誰暱我? 免寡人: 은 사동용법이다. 나로 하여금 초나라의 공로와 맹세를 져버렸다는 책임을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대들뿐이라는 의미.

唯二三子.: 주석 없음.

秋七月庚辰鄭伯. 於是子罕當國: 자한은 『좌전·성공10년』의 주석 참조. 당국에 대해 두예는 “군주의 일을 섭정하다라고 설명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공양전·은공원년』의 “단은 누구인가? 정 장공의 동생이다. 그런데 왜 동생이라 부르지 않았는가? 그가 당국當國이기 때문이다. 땅은 왜 언급했는가? 단이 언 땅의 당국이었기 때문이다.”에 대해 하휴는 “국정을 섭정하여 군주가 되려 했다. 그의 의도가 이와 같았기 때문에 마치 그를 군주처럼 본 것이다(欲當國爲之君, 故如其意, 使如國君氏).”라고 주석했다. 두예의 해석은 하휴의 영향을 받았다. 『공양』에서 모두 9차례 “당국”을 언급하는데 모두 군주가 되려고 하거나 아니면 군주의 지위를 찬탈하려 할 때 쓰고 있다. 『좌씨전』의 뜻이 꼭 『공양전』과 같지는 않다. 『좌전』에선 본문의 “자한당국”, 양공 10년의 “子駟當國”과 “子孔當國, 양공 19년의 “子展當國” 등이 있는데 모두 정나라와 관련된 기사이다. 양공 27년의 “慶封當國”은 제나라의 일이다. 두예는 해당 기사에 대해 “당국이란 정치를 장악함(秉政)의 뜻”이라고 풀이했는데 그 실체를 잘 얻은 해석이다.

子駟爲政子國爲司馬: 자국은 『좌전·성공5년』참조.

師侵. 諸大夫欲從. 子駟: 官命未改.: 『좌전』에서 모두 두 차례 “관명”을 사용한다. 다른 한 곳은 양공 4년에 있다. 자사는 본래 다시 진나라에 복종하자고 건의했던 인물이지만 성공의 말로 인해 그만두었다. 이 관명이란 바로 정 성공의 명령을 말한다. 춘추시대의 제도에 보면 옛 군주가 죽으면 새 군주는 2년차에 비로소 개원한다. 당시 성공이 비록 죽었지만 아직 장례를 마치지 않았기 때문에 새 군주는 새로운 명령을 선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관명이 아직 바뀌지 않았다”라고 말한 것이다.

會于故也: 정나라를 진나라에 복종시킬 방법을 논의했다.

孟獻子: 맹헌자는 노나라의 경 중손멸이다.


춘추시대 지도. 정나라의 호뢰


請城虎牢以偪.: 호뢰는 북제北制이다. 『좌전·은공5년』의 기사와 주석 참조.

知武子: . 之會吾子聞崔子之言今不來矣: 증의 회합은 양공 원년에 있었다. 지앵은 비록 그 회합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진나라의 한궐과 순언이 참석했기 때문에 그 회의에서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중손멸은 몸소 그 회합에 참석했고 제나라는 최저가 대표였다. 혹 당시 최저가 진나라에 대한 불만을 얘기했을 수 있었기 때문에 지앵이 이런 말을 한 것이다.

··之不至故也: 이들 작은 세 나라들은 제나라와 가깝고 진나라와 멀기 때문에 제나라의 명령을 듣는다.

寡君之憂不唯: 정나라 문제에 대한 근심보다 제나라에 대한 우려가 더욱 크다. 만약 제나라와 정나라 그리고 초나라가 서로 연합한다면 진나라는 패자라 칭하기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전력을 다해 정나라를 굴복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맹헌자의 의견에 찬성했다.

將復於寡君而請於: 진 도공에게 그렇게 보고하고 아울러 제나라에게 함께 참여할 것을 요청하여 그들의 진심을 떠 보았다.

得請而告: 제나라가 진나라의 요구에 응하면 제후들에게 호뢰에 함께 성을 쌓자고 말할 것.

吾子之功也. 若不得請: 제나라가 성을 쌓는 일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事將在: [나라의] 대사大事이고, 군사軍事이다. 두예는 “제나라를 정벌할 것”이라고 풀이했다.

吾子之請: “호뢰에 성을 쌓자는” 청을 말한다.

諸侯之福也: 호뢰에 성을 쌓으면 충분히 정나라를 굴복시킬 수 있고 초나라는 섣불리 전쟁을 할 수 없으므로 전쟁에 휘말리는 일을 피할 수 있게 된다.

豈唯寡君賴之.: 뢰는 의지함仗恃, 좋음, 이로움 등의 뜻이고 세 가지 뜻이 모두 통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