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상투의 유래 (춘추좌전.9.4.8.)



겨울 10, 나라와 거나라가 증나라를 정벌하자, 장흘臧紇이 증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주나라를 침략했지만 호태狐駘(산동성 등현滕縣 동남쪽)에서 패배했다. 전사자를 맞이하러 간 국인들이 모두 상투를 했는데 이때 처음으로 상투를 했다. 국인들이 풍자하여 노래했다. “장흘이 여우가죽 옷을 차려 입고 호태에서 패전했네. 우리 군주 왜소한 그를 장수로 삼았다네. 난쟁이, 난쟁이 때문에 주나라에게 패배하였네.


원문

(9.4.8.) 冬十月·人伐臧紇敗于狐駘. 國人逆喪者皆髽於是乎始髽. 國人誦之曰: 之狐裘敗我於狐駘. 我君小子朱儒是使. 朱儒朱儒使我敗於.



주석

冬十月·人伐, 臧紇: 장흘은 장손흘무중臧孫紇武仲이다.

: 증나라를 구하기 위해 주나라를 침략했다.

敗于狐駘: 이해 노나라는 진나라의 동의를 얻어 증나라를 부용국으로 삼았다. 그래서 주나라와 거나라가 치면 노나라가 반드시 구원해야 했다. 호태는 현 산동성 등현滕縣 동남쪽 20리 떨어진 곳에 호태산이 있는데, 1933년 고고발굴을 하여 『연경학보』14기 학술계 소식에 그 결과가 있다. 노나라 병사는 이미 주나라 국경으로 깊숙하게 쳐들어갔다. 『예기·단궁상』에서 “호태”를 “대태臺駘”로 쓰는데, 정현은 “대는 호 써야 옳다. 글자의 오류이다.”라고 말한다. 호태는 곧 본문의 호태이다. 호와 호는 음이 비슷하여 통용된다.


춘추시대 지도. 주나라


國人逆喪者皆髽: 은 맞이하다. 노나라 군사가 패전하여 귀국했고 전사자 역시 시체로 돌아왔다. 친속들로부터 관리까지 모두 전사자를 맞이하였다. 『예기·상복소기』의 공영달의 『소』에 따르면, 본래는 부인들의 상복인데 세 종류가 있다. 하나는 마좌麻髽인데 마와 머리카락을 합쳐서 절반씩 묶는다. 다른 하나는 포좌布髽로서 고대에는 4촌 넓이의 베를 사용하여 두발을 감싸 이마에 둘러 맨다. 마지막으로 노계좌가 있는데 머리카락을 묶는 어떤 것이나 비녀도 쓰지 않고 다만 마로 머리카락을 묶는다. 이 세 종류의 좌는 각각 하는 때가 구분되어 있다. 본문의 좌는 대체로 마를 사용하여 머리카락을 묶은 상투이다. 부인들만 사용한 것은 아니고 시신을 맞는 사람이면 누구나 사용했다. 그 재료를 얻기 쉽고 풀기가 용이한 것으로서 시신을 맞이한 사람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노나라의 전사자가 매우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참고. 두예: “상을 당한 자가 많았기 때문에 상복을 갖출 수가 없어서 복머리만 한 것이다.)

於是乎始髽: 『예기·단궁상』에 “노나라의 부인들이 상투를 틀고 조문하는 관습은 호태에서의 패전 이후부터이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본문의 문구를 해석한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國人逆喪者”는 “부인”만을 가리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상逆喪”과 “조상弔喪”은 같지 않고 별개의 일이다. 부인들이 상투를 트는 것은 상례였지만 이때 남자 역시 상투를 틀었다. 그후 문헌에 노나라 남자의 상투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혹 「단궁」의 설명은 노나라 부인들이 상투를 틀고 서로 조문하는 일이 호태의 패전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뜻일 수 있다. (조문과 역상이 별개의 일임을 상기. 옮긴이)

國人誦之曰: 『설문』: “송은 풍자이다(, 諷也).” 『정자통正字通: “송은 원망하는 말이다(, 怨辭也).

之狐裘: 호구는 귀한 가죽옷이다. 장손은 대부이기 때문에 입을 수는 있다. 이 전투는 노나라 달력으로 10월이니 하력 8월로써 가죽옷을 입을 때는 아니다. 호구로써 호태의 싸움을 흥기하였는데 이것은 고대 시가의 비유수법이다.

敗我於狐駘: 패는 동사사동용법이다. 구와 태는 고음에서 모두 해부咍部 평성에 속하여 압운을 이룬다.

我君小子: 당시 양공은 생모 정사의 상중이었기 때문에 옛 사람들은 군주를 그런 상황에서 소자라고 부를 수 있다. 『시·대아·억』의 “實虹小子, 於乎小子 등의 소자는 주나라 여왕을 가리킨다. 심흠한의 『좌전보주』에 상세하다. 두예는 “양공이 어려서 소자라고 말했다.”라고 풀이했지만 억설이다.

朱儒是使: 주유는 주유侏儒 쓸 수도 있는데 두 가지 뜻이 있다. 「진어4」의 “주유는 돕게 할 수 없다(侏儒, 不可使援)”에 대해 위소는 “주유는 키가 작은 사람이다.”라고 풀이했다. 장흘은 체격이 왜소하여 사람들에게 주유라고 불렸다. 또 하나 「정어」의 “주유는 곱사등이인데 군주의 곁에 머물렀다(侏儒, 戚施寔御在側)”에 대해 위소는 “주유는 군주 곁의 어릿광대(侏儒, 優笑之人)”라고 풀이했다. 『관자·입정』의 “나라에 우환이 생기면 어릿광대가 일어나 나랏일에 간여한다., 『한비자·팔간』역시 “어릿광대는 군주 곁의 근신이다.”라는 문구가 있다. 즉 주유는 군주의 곁에 있는 어릿광대로서 사람들에게 천시받는 사람이다. 이뜻은 본문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장씨는 대대로 노나라의 경으로서 이런 광대에 비유될 수는 없다. 와 사使는 운을 이룬다. 고음에서 모두 해부 상성이다.

朱儒朱儒使我敗於.: 주나라는 소국인데 노나라가 크게 패했으니 노나라 사람들이 수치스럽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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