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손표의 음악과 외교 (춘추좌전.9.4.3.)



목숙穆叔(숙손표)이 진나라로 가서 지무자(순앵)의 빙문에 답례하였다. 도공이 목숙에게 연회를 베풀고, 종박과 경으로「사하」의 세 장을 연주했지만 그는 절하여 사례를 표하지 않았다. 악공이 「문왕」의 세 편을 노래했지만 역시 사례하지 않았다. 「녹명」의 세 편을 부르자 비로소 세 차례 절을 올렸다.

한헌자가 행인 자원子員을 시켜 목숙에게 물었다. “귀하가 군명을 받들어 폐읍을 예방했기에 선군의 예를 따라 음악을 헌상하여 그대의 노고를 치하했습니다. 귀하는 큰 음악에는 답례하지 않고 작은 음악에 거듭 절하니 감히 그것이 어떤 예인지 여쭙니다.” 

목숙이 대답했다. “「삼하」는 천자가 제후의 수장元侯에게 향례를 베풀 때 연주하는 음악이므로 감히 사신이 들을 수 없습니다. 「문왕」은 양국 군주가 상견할 때 노래하는 것이니 역시 사신이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녹명」은 군주께서 과군의 예를 기뻐하시는 음악이니 어찌 그 칭찬에 답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모」는 군주께서 사신의 노고를 위로하시는 것이니 어찌 거듭 절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황황자화」는 군주께서 사신에게 ‘반드시 두루 자문을 구하라.’고 훈계하신 것입니다. 신은 ‘선인을 찾아가 자문하는 것을 자라 하고, 친족의 도리를 자문하는 것을 순이라 하며, 예의 도리를 자문하는 것을 도라 하고, 국사를 자문하는 것을 취, 환란을 자문하는 일을 모라 한다.’고 들었습니다. 소신이 이렇듯 다섯 가지 선함을 얻었는데 어찌 거듭 사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원문

(9.4.3.) 穆叔知武子之聘也. 晉侯享之金奏肆夏之三不拜. 工歌文王之三又不拜. 鹿鳴之三三拜.

韓獻子使行人子員問之: 子以君命辱於敝邑先君之禮藉之以樂以辱吾子. 吾子舍其大, 而重拜其細. 敢問何禮也?對曰: “「三夏」,天子所以享元侯也使臣弗敢與聞. 文王」,兩君相見之樂也使(1)臣不敢及. 鹿鳴」,君所以嘉寡君也敢不拜嘉? 四牡」,君所以勞使臣也敢不重拜? 皇皇者華」,使臣曰: 必諮於周.臣聞之: 訪問於善爲咨咨親爲詢咨禮爲度咨事爲諏咨難爲謀.臣獲五善敢不重拜?


(1) “사使”자는 각본에는 모두 없다. 오직 『시』「대아」「소아」 『보』의 『정의』, 그리고 『태평어람』542에만 있는데 여기서는 왕인지의 『술문』의 주장을 따라서 보충했다.



주석

穆叔: 목숙은 숙손표이다.

知武子之聘也: 순앵은 양공 원년 노나라를 예방했다.

晉侯享之: 유문기의 『구주소증』: “현재 향례는 폐지됐고 향례 때 사용하던 음악은 『좌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金奏肆夏之三不拜: 진나라가 이 음악을 연주했지만 목숙은 그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 금주는 종박으로 연주하고 북으로 마디를 구분한다. 「사하肆夏」는 악장의 이름인데 현재 가사는 전해지지 않는다. 『주례·춘관·종사種師』에선 “종과 북으로 「구하九夏」를 연주한다.”고 쓰고 있다. 「사하」는 「구하」의 하나이다. 「노어하」에 근거하면, 「사하」의 세 장은 「사하」·「번알樊遏」·「거」이다. 「번알」과 「거」는 「종사種師」의 「소하韶夏」와 「납하納夏」로 생각된다. 공광삼의 『경학치언』은 『의례·연례』와 「대사례」에서 음악을 연주하여 손님을 맞이할 때 「사하」를 함께 연주하며, 본문의 목숙이 감히 화답하지 않은 까닭은 진나라가 「사하」만 연주해야 하는데, 세 장을 연주해서라고 주장한다.

工歌文王之三又不拜: 두예: “공은 악인이다. 「문왕」의 세 편은 「문왕」·「대명」·「면」이다.” 두예의 주석은 「노어하」에 근거한 것이다. 가는 노래뿐 아니라 연주가 포함되어 있다.

鹿鳴之三三拜: 두예는 “「소아」의 음악은 「록명」·「사두」·「황황자화」이다.”라고 말한다. 이 역시 「노어하」에 근거했다. 삼배는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목숙이 한 번씩 절하여 답례한 것이다.

韓獻子使行人子員問之: 행인에 대해서는 환공 9년과 선공 12년의 『좌전』과 주석을 참조. 『좌전·양공26년』에 근거하면, 진나라는 여러 명의 행인이 있다. 자원은 그들 중 가장 재능과 덕이 높았다.

: 子以君命辱於敝邑先君之禮藉之以樂: 두예: “자는 올리다 뜻이다.『좌전·소공15년』의 “보배로운 기를 왕에게 헌상했다(薦彛器於王)”에 대해 두예는 “천 헌상하다()”라고 풀이했다. 『예기·제의』의 “경대부는 좋은 것을 제후에게 바친다(善薦於諸侯)”에 대해 정현은 “천은 진상하다()”라고 풀이했다.

以辱吾子. 吾子舍其大: 대란 「사하」세 장과 「문왕」세 장을 말한다.

而重拜其細: 평성이다. 중배란 세 번 거듭 절하다. 「녹명」의 세 장이다.

敢問何禮也?對曰: “「三夏」,天子所以享元侯也: 「사하」는 천자가 원후를 초대하여 성대하게 연회를 베풀 때 연주하는 음악이다. 두예: “원후란 목백이다.” 제후의 우두머리를 원후라고 한다.

使臣弗敢與聞. 文王」,兩君相見之樂也使臣不敢及: “사使”자는 각본에는 모두 없다. 오직 『시』「대아」「소아」 『보』의 『정의』, 그리고 『태평어람』542에만 있는데 여기서는 왕인지의 『술문』의 주장을 따라서 보충했다.

鹿鳴」,君所以嘉寡君也: 「녹명」에는 “내게 훌륭한 손님 오셨으니(我有嘉賓), “내게 큰 길을 보여주시니(示我周行)” 등의 시구가 있다.

敢不拜嘉?: 진나라 군주가 노나라 군주의 방문을 기뻐하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 답례하다.

四牡」,君所以勞使臣也: 「사목서」: “「사목」은 사신의 노고를 위로하는 시다. 공로가 있고 그와 안면이 있기 때문에 기뻐한다.” 시구에 “어찌 돌아가고 싶지 않겠느냐마는 나랏일로 쉴 새가 없어(豈不懷歸, 王事靡監)” 등이 있다.

敢不重拜?: 진나라 군주가 자신의 노고를 치하하니 다시 절한 것이다.

皇皇者華」,使臣曰: 必諮於周.: 「황황자화」에는 “周爰咨諏, 周爰咨謀, 周爰咨度, 周爰詢 등의 구절이 있다. 『시』는 “자”로 쓰고 『좌전』에선 “자”로 쓴다. 두 글자는 통용된다. 「노어하」는 “충신한 사람을 주라 한다(忠信爲周)”로 쓰는데 모『전』에선 이를 채용했다. 대체로 옛 뜻은 이와 같다. 必諮於周”는 소위 충신한 신하에게 일을 논의함이다.

臣聞之: 訪問於善爲咨: 선은 선인이다. 주는 충신한 사람이다.

咨親爲詢: 앞의 “訪問於善”은 자문을 구하는 대상이고, 그 이하는 문의하는 내용이다. 친은 친척이다.

咨禮爲度: 두예: “예의 마땅한 도리(禮宜)를 묻다.

咨事爲諏: 「황황자화」의 “周爰咨諏”에 대해 모『전』은 “咨事爲諏”라고 풀이했는데 『좌전』의 뜻을 채용한 것이다. “사”는 「노어하」에서 “재”로 쓰는데, “재”와 “사”는 고음에서 같은 부에 속한다. 두예는 “정치에 관해 묻다”라고 풀이한다.

咨難爲謀.: 「노어하」는 “咨事爲謀”로 쓴다. 그러나 『설문』은 “어려운 일을 고민하는 것을 모라 한다(慮難曰謀)”라고 설명하여 『좌전』의 뜻을 그대로 채용했다. 여기서 난자는 곤란함의 뜻이나 어려움의 뜻으로도 모두 해석할 수 있다.

臣獲五善敢不重拜?: 삼배를 한 까닭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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